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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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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로섬 복지를 끝내자

등록 2011-01-19 01:41 수정 2020-05-02 19:26

몇 년 전 일이다. 휴대전화 너머 아내의 목소리가 몹시 떨렸다. 아이가 머리를 크게 다쳤다는 요지를 겨우 알아챌 수 있었다. 응급실로 달려가 마구 구토를 하는 아이를 붙들고 검사를 받았다. 머리뼈에 골절이 있다는 잠정적인 진단을 받았다. 뇌출혈이 있는지는 더 지켜봐야 한다는 의사의 말을 들은 뒤, 아이를 안고 복도로 나왔다. 아이를 안고, 예쁜 그림이 전시돼 있는 복도를 걸으며 한 가지 생각밖에 들지 않았다. 아이에게 평생 안고 가야 할 장애가 생긴다면….
그 서늘했던 복도에서 내 머리를 짓누른 건 오로지 아이에게 닥칠지도 모를 고통에 대한 상상이었다. 나와 아내가 나눠져야 할 고통의 몫이나 경제적 어려움 따위는 그 흙빛 상상의 한구석도 차지하지 못했다. 장애아를 둔 모든 부모의 심정도 같을 것이다. 아이가 안쓰러울 뿐, 자신의 고통에 마음 두지 않는 부정과 모정.
지극한 부정과 모정이 삿된 기운을 걷어낸 것일까. 취재를 하며 만났던 장애아 부모들은 한결같이 맑은 얼굴을 하고 있었다. 며칠 전 텔레비전 뉴스에 나온 중증장애아 부모들도 그랬다. 하지만 그들을 대하는 세상의 표정은 결코 맑지 않다. 잠시도 눈을 떼지 못하고 아이를 돌봐야 하는 탓에 근무시간이 긴 직업을 가질 수 없는 문제는 일단 제쳐두자. 그런 직업으로 아이를 돌보는 데 드는 비용을 감당하기란 쉽지 않은데, 정부 지원을 받으려면 더 벌이가 적은 직업을 가져야 한단다. 가계소득을 따져 지원 여부를 결정하는 제도 탓이다. 아내가 휴직하면 남편이 돈을 벌고, 아내가 복직하면 남편이 사표를 내야 한다.
이런 현실이야말로 요즘 보편적 복지를 둘러싸고 벌이는 논쟁의 명쾌한 해답을 담고 있다. 어느 선을 정해두고 그 이상과 이하를 갈라 정부 지원을 달리한다면, 그 선을 훌쩍 뛰어넘어 정부 지원이 아쉽지 않은 계층을 제외하고는 저 중증장애아 부모처럼 세상에 둘도 없는 비합리적인 선택으로 내몰리게 된다. 그것은 비합리적일 뿐 아니라 비인간적이다. 더 땀 흘려 일해서 아이에게 조금이라도 더 많은 것을 해주고 싶은 부모의 마음을 꺾어버리기 때문이다. 적어도 아이들을 먹이는 일, 치료해주는 일, 장애가 있으면 돌봐주는 일 등에선 계층을 가리지 않아야 하는 이유다.
그래서 더 열심히 일할 기회를 얻은 얼굴 맑은 부모들은 더 많은 세금도 꼬박꼬박 낼 것이고, 또 자신의 아이만큼 다른 아이도 걱정해서 기부에도 나설 것이다. 얼마 전 이 칼럼에서 제안한 것처럼 보편적 복지를 시행하되 그런 지원이 굳이 필요 없는 계층은 지원금을 스스로 반납하게 하는 제도를 만든다면, 아마 가장 먼저 반납 창구를 찾는 것도 그들이 될 것이다.
그러나 세상은 선한 이들의 마음대로 움직이지 않는다. 국회의원의 절반이라도 빈곤층의 삶을 산다면 이런 글을 쓸 일도 없을 것이다. 공무원 자녀 가운데 절반만 열악한 환경에서 일하는 노동자라면 한 해 1400명이 숨져나가는 산업재해의 끔찍한 현실이 이대로 방치되진 않았을 것이다. 번듯한 자리에 앉아 상대적인 풍족을 절대적인 풍족으로 채워나가려는 욕망에 찌든 이들의 마음대로 세상은 조종되고 있다. 지금까지는 그렇다.
아이의 머리뼈 골절은 오진이었고 결과적으로 큰 탈은 없었다는 사실을 밝혀두려니, 저 가슴 아픈 부모들의 얼굴이 눈에 밟힌다. 그 서늘했던 복도에서 직면했던 전율을 결코 잊지 않겠다는 약속을 전하고 싶다. 부모의 마음을 배신하지 않는 세상을 만들기 위해 굳게 연대하겠다는 약속과 함께.
한겨레21 편집장 박용현 piao@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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