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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명예·권력의 삼권분립

등록 2011-01-12 10:28 수정 2020-05-03 04:26

1.
부·명예·권력 가운데 당신은 뭘 원하는지?
세 가지 모두 각각의 매력이 있으니 답은 각자 다를 게 분명하다. 무엇을 갖고 싶은지에 따라 쫓아가야 할 인생 경로도 물론 다를 것이다. 법대 시절엔 그 경로가 단순명확했다. ‘부=변호사, 명예=판사, 권력=검사’라는 등식이 별다른 이의 없이 받아들여졌다. 지금도 그럴 것이다. 판사는 명예를 먹고 산다고 하고, 검사는 명예를 말하기도 하지만 대개는 권력에 취한 모습이고, 변호사는 말은 안 하지만 돈 버는 일에 관심이 많아 보인다.
그런데 순수한 청년 시절엔 또 다른 답이 있다는 걸 미처 생각하지 못했다. 세 가지 다 가지면 되지. 법조인의 길을 걷는 선배들은 이미 몸으로 이를 실천하고 있었으니, 이후 귀에 못이 박히도록 듣는 ‘전관예우’다. 판검사를 하고 난 뒤 변호사가 되면 그만이었다. 지금 인사청문회를 앞두고 ‘월급 1억원’의 전관예우로 도마 위에 오른 대검찰청 차장검사 출신의 정동기 감사원장 후보자는 한 경지 더 높은 인생 경로를 택한 셈인데, 권력을 해바라기하는 검사를 거쳐 변호사로 돈을 벌고 감사원장이라는 명예스러운 자리에까지 나아가려는 참이다. 그리고 감사원장에서 물러나면 또 변호사로 돈을 벌 것이다.
누구의 인생관을 탓하는 게 언론의 일은 아니다. 다만, 모두를 가지겠다는 욕망이 제어된다면 각자의 자리에서 그 자리에 더 맞게 처신하지 않겠느냐고 묻고 싶을 뿐이다. 부정·비리를 처단할 권력을 가진 검사가 더 큰 권력에 아부하지 않고 퇴임 뒤 핥게 될 단물에 연연하지 않는다면 아마 우리나라의 청정도는 지금보다 몇 배 높은 수준이 돼 있을 것이라고 확신한다. 명예를 먹고 사는 법관이 그 명예를 더럽히지 않을 만큼, 자신에게 권한을 위임한 시민의 입장에 서서 고뇌 어린 판결을 한다면 이 나라는 대통령이 수십 번 바뀐 것 이상으로 큰 걸음을 내디뎠을 것이라고 확신한다.





2.
부·명예·권력 가운데 당신은 뭘 원하는지?
어린 시절, 교회 주일학교에서는 더 멋진 대답이 있었다. 세 가지 모두 싫어요. ‘부’ ‘명예’ ‘권력’이란 탈을 쓴(실제로 분장을 그렇게 했다) 사탄들이 등장하고, 그들의 유혹을 뿌리치고 ‘착하게’ 사는 주인공의 승리를 그린 연극을 했다. 그게 신의 뜻이라고 배웠다.
이명박 대통령이 장로로 있는 서울 강남의 소망교회에서 최근 벌어진 난투극 소식을 들으며, 너무 많은 것을 가지려는 고질이 종교의 성스러운 영역까지 이미 장악했음을 새삼 깨달았다. 종교는, 적어도 내가 아는 기독교는, 무릇 현생의 간난신고를 감내하면서 신의 영원을 지향하라고 가르치지 않았나. 살아서도 돈·명예·권력을 누리고 떠나서도 감미로운 천국의 삶을 누리려 한다면 결국 종착점은 난투극일 뿐이라는 걸 요즘 주일학교 연극 각본에 새삼 넣어줘야겠다.
누구의 종교관을 탓하는 게 언론의 일은 아니지만, 종교가 본연의 모습을 보여준다면 쓰디쓴 이 땅의 삶에도 신의 은총이 내리지 않겠느냐는 희망을 말하고 싶을 뿐이다. 돈·명예·권력을 좇느라 지친 우리에게 “왜 애초에 무언가가 존재하게 되었는지”처럼 초현실적인 질문을 진지하게 던지는 종교가 있다면 그래도 왜 살아야 하는지 1분 정도는 더 생각하며 살 수 있겠다는 기대를 전하고 싶을 뿐이다.

한겨레21 편집장 박용현 piao@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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