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젠가 후배의 말을 듣고 흠칫 놀랐다. “원리주의자군….” 내게 하는 말 같았다. 후배가 누군가에 대해 물었고, 나름대로 아는 대로 누군가에 대해 설명한 다음이었다. 그런데 그가 ‘원리주의자’라고 표현한 사람이 평소 흠모해 마지않던 ‘마음의 동지’였다. 차마 “아니…”라고 말하지 못하고 돌아서 자리에 앉았다. 인터넷을 떠돌다보니 ‘진보 원리주의 사도’라는 말이 있었다.
원래는 개량주의자였다. 어언 스무 해 전, 젊디젊은 스무 살에도 무장혁명 한번 꿈꾼 적 없고 전민항쟁이 가능하다고 생각하지도 않은 ‘국가보안법 모범생’이었다. 다만 (요즘 이름으로) 한나라당뿐만 아니라 민주당도 넘어서는 진보정당 하나는 있어야 이 사회가 좀 바뀐단 소박한 바람은 있었다. 하여튼 지금도 그런데, 진보정당을 개량주의라 딱지 붙이던 이들도 민주당과 연합을 말하는 시절에 졸지에 원리주의자 아닌가 스스로 의심하는 지경이 된 것이다.
문자주의의 두 가지 사례
여기 문자의 세계가 성큼 다가와 있다. 성경의 문자를 원리로 여기는 이들이 갈수록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 성경에 동성애를 금하는 구절이 두어 군데 있단다. 구약 레위기에 ‘너희는 여자와 잠자리에 들듯이 남자와 잠자리에 들지 마라…’라고 나온다. 이렇게 2천여 년 전의 기록인 성경을 오늘에 맞게 해석하지 않고 문자 그대로 되살리려는 분들이 한국에도 마침내 나타났다. 지금 여기서 그렇듯, 오래된 문자를 자신의 율법으로 섬기길 넘어 타인의 계율로 확장하면 문제가 생긴다. 어떤 기독교인은 “성경엔 생리 중인 여성과 관계하지 말란 말도 나와”라고 그들의 논리를 반박한다. 이렇게 그들의 문자주의는 ‘다수’의 문제는 피하는 선택적 문자주의다.
여기 문자의 세계를 지키는 소수가 있다. 수혈을 거부하는 이른바 ‘특정 종교’ 신자다. 그들이 믿는 성경에 ‘피를 멀리하라’는 구절이 나온단다. 최근 특정 종교 신자인 한 부모는 어린 자식이 수혈을 받으며 심장수술을 받는 것을 거부했다. 그리고 아이가 숨졌다. 이들은 ‘잔인한 부모’로 지탄을 받았다. 그런데 아이는 정작 심장병이 아니라 다른 장기의 문제로 숨졌다고 한다. 아이는 무수혈 심장수술 경험이 있는 병원으로 옮겨져 수술을 기다리는 중이었다.
부모의 믿음은 나의 믿음과 다르다. 나의 선택도 달랐을 것이다. 언젠가 병역거부를 취재하며 ‘다음엔 수혈 문제 한번 다뤄보면 어떠냐’는 얘기를 듣지 않은 것은 아니다. 그러나 자신이 없었다.
하지만 이렇게 사건이 불거진 마당에 환자의 자기결정권과 생명권 사이의 충돌에 대해 토론할 여지는 없었을까, 아쉽다. 기사에 바탕하면 지난 6월 유럽인권재판소는 “여호와의 증인과 같이 치료를 완전히 거부하는 게 아니라 치료 방법을 선택하는 것은 자기결정권의 행사로 봐야 한다”고 판결했다. 이렇게 인권의 역사는 ‘논란의 권리’가 확대돼온 역사이기도 하다. 덧붙여 이윤의 문제도 있다. 우리가 속한 ‘세계’는 핵기술 발전엔 진력을 쏟지만, 무수혈 수술 발전엔 전력을 다하지 않는다. 그것을 원하는 사람의 ‘시장’이 핵개발 수요보다 작기 때문이다. 미국을 비롯한 서구에 무수혈 수술 기술이 발달했지만, 그것을 배워오는 데 적극적이지 않다. 한국에서 여호와의 증인은 작은 집단이고, 환자의 선택적 진료권을 보장하란 사회적 압력도 거의 없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현실적으로 무수혈 수술을 하는 병원이 희박한 상황에서 자신도 아닌 아이의 무수혈 수술을 고집한 부모의 선택도 이해하기 어렵긴 마찬가지다. 아이의 생명권과 배치되는 결정이기 때문이다.
글로 배운 것의 결과그 ‘특정 종교’는 성경에 바탕해 병역을 거부한다. 그러나 이들은 자신이 속한 나라의 법을 따르라고 성경이 가르친다고 해석한다. 그래서 감옥행의 처벌을 감수한다. 이렇게 최소한 이들은 자신의 율법을 타인에게 강요하지 않는다. 오히려 이들은 혐오하는 자가 아니라 혐오당하는 자가 된다. 이슬람 율법을 세속의 법으로 ‘직역한’ 샤리아처럼, 문제는 오래된 문자를 세속의 원리로 강요하면 발생한다. 알카에다는 물론 하마스 같은 이슬람 원리주의 집단도 여성을 검은 옷에 가두고 동성애자에게 돌을 던지긴 마찬가지다. 종교를 막론하고 지금 세계에서 문자가 문제다. 의 현경은 화장도, 연애도 글로 배웠다. 글로 배운 키스는 애인 보석을 까무러치게 했다. 기호 2번 안에는 투표하지 않는다, 나의 원리도 세상을 글로 배워서 그럴까.
신윤동욱 기자 syuk@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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