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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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르완다 탈출

등록 2010-09-16 13:32 수정 2020-05-03 04:26

20세기 인류사의 비극으로 새겨진 아프리카 르완다 사태를 기록한 필름을 본 적이 있다. 종족 간 분쟁으로 수십만 명이 학살됐고, 국제사회는 멍하니 바라만 볼 뿐 별다른 조처도 하지 못했던 그 사건의 일단을 보여주는 영상이었다.
사태가 불붙던 시기, 그러니까 르완다에 소요가 일고 걷잡을 수 없는 살기가 고조되던 때, 과거 르완다를 식민지로 지배하기도 했던 벨기에 대사관에 군용 헬기가 내려앉는다. 르완다에 거주하던 외국인들(물론 대부분은 서구 국가 사람들이었다)을 피신시키기 위해서다. 살상의 위협을 피해 쫓겨온 군중이 대사관 문 앞에까지 이르고, 흉기를 들고 이들을 뒤쫓는 또 다른 군중이 다가들고 있다. 사태의 험악한 전개를 예측하지 못한 탓에 자위 수단이 충분히 마련돼 있지 않던 외국인들이 긴급 피신에 나선 참이다. 허겁지겁 헬기에 올라타는 이들의 모습에는 공포가 서려 있다. 그리고 이 필름의 압권. 마지막에 누군가의 애견들이 헬기에 뛰어오른다. 대사관 문 밖에서 죽음의 막다른 골목에 내몰린 이들이 “우리도 데려가달라”고 울부짖는데, 헬기는 그 개들을 마지막 손님으로 태우고는 육중하게 이륙한다.
나라면 어떻게 했을까? 나라도 그랬을 것 같다. 생명의 위협을 느끼는 순간이라면, 내 가족부터 어떻게든 부여잡고 다음으로 동료나 친구를 건사했을 것이다(아무리 그래도 사람보다 개를 우선순위로 챙기지는 않았겠지만). 그것은 벨기에 대사관의 외교관이나 다른 민간인이나 다 똑같은 인지상정이라고 하겠다.
물론 이것은 극단적인 상황이다. 평시에 일상적으로 일을 처리하는 경우라면, 개인적인 사랑과 아낌의 정도보다 더 공정한 기준을 적용하게 될 터다. 그런 태도 역시 외교관이나 민간인이나 마찬가지일 것이다.
지금 르완다의 영상을 다시 떠올리는 것은 최근 드러나고 있는 일부 외교관들의 행태 때문이다. 평시의 공정한 기준을 버리고 자기 자녀에게 특단의 기회를 우선 부여하고자 양심까지 저버리는 모습에서 왠지 저 군용 헬기에 오르는 사람들의 표정에 깃들었던 공포심이 보인다. 삐끗 잘못하면 생계조차 잇기 어려운 비정규·저임금의 나락으로 떨어져야 하는 이 사회가 저 학살의 르완다처럼 살벌한 곳임을 그들은 알았던 것이다. 평시처럼 공정한 게임이라고 믿고 자녀를 내버려뒀다가는 언제 어떻게 절망의 골목으로 내몰릴지 알 수 없었던 것이다. 건전한 상식을 지닌 외교관들이 상식을 저버린 행동을 했다는 사실을 그것 말고는 설명할 도리가 없다. 외교통상부의 특혜 채용 논란은 직장을 구하는 젊은이들에게 대한민국이 이미 전쟁터임을 고위 공직자들이 솔직히 인정한 사건으로 해석할 수밖에 없다.
그리고 그들의 두드러진 행태 덕분에 다른 분야에서도 치열한 헬기 타기의 혼란상이 빚어지고 있다는 사실도 알게 됐다. 대기업 임원 자제들이 부모가 다니는 회사에 남들보다 원활하게 입사하는 일은 아마도 그 실상의 일부일 뿐이리라. 어디선가, 외교관이든 민간인이든, 문 밖에서 울부짖는 소녀와 청년 대신 자기 집 개를 먼저 끌어안고 헬기에 오르는 이들도 있으리라는 끔찍한 추정이 전혀 헛된 것은 아니리라.
르완다 사태는 인류에게 인간성을 지킬 지혜가 부족함을 보여줬다. 끔찍한 학살을 저지른 자들에게나, 학살을 막을 힘이 있으면서도 서둘러 개까지 끌고 도망치는 것 외에 아무런 일도 하지 않은 자들에게나.
한겨레21 편집장 박용현 piao@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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