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족의 첫 번째 기능은 성적 욕구의 충족과 규제다. 인간이 가지는 성적 욕구를 자유롭게 충족시키도록 개인에게 맡겨둔다면 사회 구성원 사이에 성적 갈등이 끊임없이 일어나게 된다. 사회질서를 유지하려면 성적 욕구를 체계적으로 규제할 수 있는 일정한 틀이 필요하다.
또 하나 재생산 기능. 사회 구성원이 충원되지 않으면 사회는 존속할 수 없다. 새로운 성원이 충원되려면 출산이 이루어져야 한다. 출산은 사회 성원을 재생산하는 일로, 대부분 가족 안에서 이루어진다.
국가의 방치, 불행한 부모들
고등학교 교과서에 서술된 가족과 결혼에 대한 내용이다. 가족은 이 밖에도 양육, 사회화, 경제적 기능을 담당한다고 돼 있다. 우리나라가 세계 최저의 출산율을 이대로 지속한다면 많은 문제에 봉착한다는 위협의 목소리가 크다. 생산인구 대비 노인인구 수치나 사회적 노년부양비 등의 예측을 보면 심각한 수준임이 분명하다. 이미 고령화 사회에 진입한 현실에서 출산율 저하는 생산인구의 감소로 이어져, 지금 아이들이 청장년이 되어 감당할 부담과 국가 경쟁력을 걱정하기에 충분한 이유가 된다. 결혼과 출산, 양육과 교육으로 이어지는 지난한 과정을 속성으로 뻥튀기하듯 키워낼 수도 없는 일이고 즉흥적인 대체도 근본적으로 불가능하다. 미리 준비하는 것 외에는 방법이 없으므로 발등에 떨어진 불이다.
언젠가 중·고등학생을 대상으로 ‘되고 싶지 않은 것’이 뭐냐고 물은 설문조사에서 남학생들이 ‘아버지’를 꼽은 적이 있다. 아버지가 되는 것을 망설이거나 거부하고 싶다는 표현이다. 흥미로운 질문에 있음직한 답이라는 생각을 했다. 지금의 청소년은 행복하지 않다. 더 나은 미래를 위해, 경쟁사회니까 어쩔 수 없이 등 여러 이유를 들어도, 가엾다 여겨질 만큼 행복하지 못한 아이들의 현실을 합리화하기는 어렵다. 자신들의 미래 모습인 부모의 삶 역시 그리 행복해 보이거나 희망적이지 않기에 아버지가 되고 싶지 않다고 답했을 것이다.
결혼을 하고 가정을 이뤄 자녀를 낳아 기른다는 것은 개인의 자족만이 아니라 사회에 반드시 필요한 행위이며, 사회가 꾸준히 유지되기 위해 가족의 기능은 무엇보다 중요하다고 아이들은 배운다. 아이를 낳아 키우는 것이 부모 개인의 사랑과 능력에 따른 것만이 아니라 지극히 사회적 행위라는 이치를 알고 있다. 그런데 우리 현실은 출산부터 양육, 교육에 이르기까지 모두를 부모가 온갖 경쟁 속에서 죽기 살기로 감당한다. 대학 진학률 80%가 넘는 총기 있는 대한민국의 아이들은 자연스럽게 그다음을 질문하는 것이다. 낳는 일, 키우는 일, 교육하는 일, 자녀의 결혼까지 평생을 바쳐 부모가 해결한다면, 국가와 사회는 가족과 나와, 내 부모에게 무엇을 해주느냐고 말이다.
출산장려책이 쓸모 있을까아이들이 자라면서 보는 가족과 부모의 삶은 녹록지 않다. 자신들의 일상도 꽤 힘겹다. 가족과 부모가 허리가 휘도록 자기 몫을 해내는 동안, 사회는 그 과정을 얼마나 함께 수행해주고 있는지 교과서에서 배운 대로 의문을 품고 아이들은 아버지가 되기를 주저한다. 아이들의 의문에 비한다면 지금까지의 출산장려책은 초라하기 짝이 없다.
기독교계를 중심으로 한 ‘출산장려 국민운동본부’ 발족을 알리는 보도가 있었다. 지난해 이맘때도 민관 합동으로 ‘아이낳기 좋은세상 운동본부’라는 단체가 생겼던 기억이 있다. 현재를 사는 아이와 부모가 행복하지 않다면 아무리 좋은 출산장려책도 쓸모가 없다. 아이들의 대답이 출산 장려의 현주소일 수 있다. 중·고등학생 자녀나 조카가 있다면 쑥스러우나마 넌지시 해볼 질문, 과연 아버지가 되고 싶은지(만약 여학생이라면 엄마가 되고 싶은 것은 고사하고 결혼 자체를 하지 않겠다고 답하더라도 당황하지 마라).
신수원 ‘손바닥 문학상’ 수상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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