봄 산행을 했다. 여행 끄트머리 오후 자투리 시간을 써서 간단하게 생각하고 오른 산이었다. 봄은 눈부신 햇살과 화사한 기운으로 대표되는 계절이건만 올봄은 유례없이 볕이 적고 높은 강수량을 보인다고 한다. 폭설이 3월과 4월까지 이어졌고 잦은 비에 강풍이 불기도 했다. 날씨가 조금은 변덕스러워도 꽃을 먼저 피우고 돋아난 연두색 새순의 어여쁨에 제멋대로 머리카락을 헝클어뜨리고 옷깃을 제치는 산란한 바람조차 기꺼운 봄은 옛말이 되었나 싶다.
살필 일 많아 마음이 바쁜 달5월은 안팎으로 살필 일이 많아 어느 만큼씩은 마음이 바쁜 달이다. 어쩌면 5·1절, 5·18 등을 빼고는 개인의 성장을 말할 수 없고, 자의든 타의든 아이와 어버이와 은사를 떠올리지 않을 수 없는 세대의 익숙한 부산스러움일지도 모른다. 무거운 의미 부여를 잠시 뒤로하고 보면 대학에 입학한 새내기에게는 마냥 기대를 품고 들뜨게 하는 축제의 달이고, 누군가에게는 가족의 소중함을 새기며 나들이라도 계획하는 가정의 달 5월이다.
그럼에도 제 몸을 바람에 맡기고 지는 여린 꽃잎마저 고운 5월에 묵직한 체증을 느끼는 건 사나운 이상기후 탓만은 아니다. 가깝게는 영문도 모른 채 죽어갔을 천안함의 안타까운 죽음들, 그 가족들의 5월을 생각하지 않을 수 없기 때문이다. 갑작스레 사라진 아빠의 빈자리를 실감하며 어린이날을 보낼 희생 장병들의 자녀와 그것을 감싸고 지켜봐야 하는 아내의 부대낌과 고통이 얼마일지 짐작하기 어렵다. 펄펄 날던 생때같은 젊은 자식의 초상을 치른 지 이레 남짓에 어버이날을 맞아야 하는 부모의 심정은 누구도 감히 헤아리지 못한다. 애국이라는 대의에 눌려 억울하다는 말도 꺼내지 못하고 견뎌야 하는 그들의 5월이다.
또 세계 노동절을 기념일로 정하고 공식 명칭은 ‘근로자의 날’인 절묘한 기형적 퓨전, 부르는 이의 세계관과 가치관을 고스란히 드러내며 노동절과 근로자의 날로 고집스레 나눠 호명되는 5월1일은 어떤가. 세계적인 경쟁력과 경제력을 내놓고 자랑하면서도 노동환경은 최저임금과 노동기본권조차 제대로 지켜지지 않아 참담하고 비참한 경우가 허다하다. 온갖 굴레를 씌우고 다종다양한 방법으로 양산되는 비정규직은 오늘도 착취의 진화를 거듭하고 있다. 해고는 죽음이라 외치며 지난여름을 아프게 달구었던 쌍용자동차 노동자들의 처절함과, 시간을 잊은 듯 이어져오는 기륭전자 노동자들의 긴 싸움에 대한 관심은 이미 희미해졌다. 죽어가는 노동자가 속출해도 눈도 꿈쩍하지 않는 거대기업 삼성은 두려울 것도 거칠 것도 없이 사상 최대 매출 기록을 경신하며 승승장구하고 그것을 무감하게 묵인하는 우리의 포용이 여전한 5월이다.
어디에도 붉은 꽃을 심지 마라공전의 히트를 한 독립영화에서 노부부가 굽은 허리로 오르던 그 사찰을 돌아 산을 내려오는 길은 한적했다. 발 아래 피어난 작은 들꽃과 가파른 바위 사이로 아스라이 가지를 뻗은 꽃들이 그제야 눈에 들었다.
내려갈 때 보았네
올라갈 때 못 본
그 꽃
까닭도 모른 채 불현듯 고은 시인의 ‘그 꽃’을 중얼거렸다. ‘어디에도 붉은 꽃을 심지 마라’고 섧게 노래한 5월이 있었다. 그리고 멀리 되짚고 내다볼 겨를도 없이 당장의 것만으로도 가쁜 숨을 고르기 힘든 2010년 5월이다. 갈피를 잡을 수 없는 이상기후 속에서도 산에, 노래에, 희생 수병들의 무덤에 꽃이 지천이다.
신수원 ‘손바닥 문학상’ 수상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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