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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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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족들을 부축하라

등록 2010-04-14 10:11 수정 2020-05-03 04:26

20여 년 전 외사촌 형이 세상을 떠났다. 암세포의 공격 때문이었다. 서울의 한 병원에서 사그라져가는 촛불처럼 야윈 형의 얼굴을 본 지 며칠 만에 부음을 들었다. 형수와 어린 딸이 남았다. 영안실에서 영정 앞에 절을 한 뒤 정체가 잡히지 않는 감정에 취해 병원 앞 포장마차에서 술을 마셨다. 자식을 두고 떠나는 이의 마음을 알 수는 없던 20대 시절이었다. 물론 지금이라고 해도 그 마음을 죄 헤아리기는 힘들다. 다만, 남겨진 아이의 까만 눈동자가 슬펐다.
침몰한 천안함 함미에서 주검으로 발견된 고 김태석 상사의 유족을 TV에서 바라봤다. 6살·7살·8살 연년생 딸들이 보였다. 엄마는 딸에게 “아빠 어디 갔어?”라고 물었다. 딸은 말이 없었다. 엄마는 “아빠 보고 싶지?”라고 또 물었다. 아이는 고개를 겨우 끄덕이는 것 같았다. 자식을 두고 떠나는 이의 마음이 얼마나 칠흑 같은지 나는 지금도 죄 헤아리기 힘들다. 다만, 길게 펼쳐진 아이들의 내일이 서럽다.

그렇게 남겨진 이들의 마음도 알 길이 없다. 20여 년 전 술에 취해 고꾸라지게 만든, 정체 모를 감정이 스칠 뿐이다. 다만 가늠할 만한 것은 남겨진 이들이 살아가야 할 앞날의 객관적 현실이다. 그들은 이른바 ‘한부모 가정’에 편입된다. 신문 사회면에 밝지 않은 사연들과 함께 곧잘 등장하는 그 한부모 가정이다. 세상은 그들에게 끊임없이 손을 벌릴 것이다. 생활비며, 주거비며, 양육비며, 교육비며, 뻔한 사정엔 아랑곳없이 가장의 빈자리를 굳이 떠올리게 하며 인정사정없이 그들을 코너로 몰아갈 것이다. 아이는 아빠의 체온을 그리워하기에 앞서 엄마의 시름을 먼저 체감할지도 모를 일이다.
보상금과 연금이 계산돼 우리 앞에 제시된다. 그것이 1억원이든 2억원이든, 다달이 100만원이든 200만원이든, 그것은 그저 숫자에 불과하다. 길게 펼쳐진 내일을 감당하기엔 턱없이 모자란 체면치레일 뿐이다. 그들이 위로받고 또 남은 희망을 그러모아 삶을 견뎌내도록 우리 사회가 해야 할 일은 보상금이나 연금뿐일 수는 없다. 더더군다나 일회성 성금으로 우리의 책임을 덜려 해서는 안 될 일이다.
갑작스러운 불행으로 생계의 한 축이 무너져내린 이들이 슬픔은 오롯이 간직하되 공포에 떨지는 않도록 사회가 팔을 내밀어 부축할 일이다. 그건 나라를 위해 군 복무를 하다 원인 모를 사고로 목숨을 잃은 장병들이나, 직장에서 일하다 사고를 당해 운명을 달리한 산업역군들이나, 심지어 잔인한 운명의 시샘으로 이유 없이 죽음을 맞이한 그 누구나, 자식을 남겨두고 떠나는 이라면 필시 마지막 순간 손을 모았을 바람일 것이다.

대한민국은 그런 준비가 된 나라인가? 학교에서 아이들에게 조건 없이 밥을 먹여주자는 제안에도 브레이크를 거는 세력이 지배하는 나라, 막대한 사교육비를 들이지 않고도 아이들이 평등하게 잘 커나갈 수 있는 방안에 눈먼 나라, 생계가 다급한 이들에게 인간적 생활을 보장하는 일에 인색한 나라, 일자리를 얻기 힘든 처지의 국민에게 직장을 마련해주는 노력이 더딘 나라, 다른 건 제쳐두고라도 한 식구 먹고사는 일만큼은 걱정하지 않게 팔 걷고 보살필 줄 모르는 나라….

천안함 사고 희생자의 유족 가운데 저런 처지에 내몰릴 이들은 없을까? 보상금과 연금이면 손을 털어도 될 일인가? 희생자들의 주검에 태극기를 덮어주기 전, 우리는 대한민국이 그 유족에게 무얼 해줄 수 있는지 생각해보자. 천안함이 우리에게 남긴 또 하나의 미스터리. 국가는 국민을 어떻게 보살펴야 하는가? 김 상사는 어떤 모습의 대한민국을 지키기 위해 천안함에 올랐는가?
자식을 두고 떠나는 이의 마음을 죄 헤아리긴 힘들다. 다만, 남겨진 이들 앞에 길게 펼쳐진 내일이 출렁이는 백령도 앞바다 파도처럼 위태로워 서러울 뿐이다.

편집장 박용현 piao@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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