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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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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상급식 논의의 한 대안

등록 2010-03-17 11:38 수정 2020-05-03 04:26

요즘 논란이 한창인 무상급식 문제에 대해 한 가지 대안을 제시하고 싶다.
무상급식 반대론의 최신판은 “경제적으로 여유가 있는 사람의 자녀 점심값까지 정부가 다 내줄 만큼 우리 정부가 한가하지 않다”(정몽준 한나라당 대표)거나 “도움이 필요한 서민들이 더 많은 혜택을 받게 하고 국민의 혈세를 부자 급식에 써서는 안 된다”(안상수 한나라당 원내대표)는 논리다. 한나라당이 부자들에게 등을 돌리기 시작한 건가. 이명박 정부의 감세정책으로 소득수준이 높은 상위 20%는 혜택을 받고 나머지 80%는 오히려 부담이 늘었다는 최근의 통계청 자료를 떠올리면, 여당이 그동안 부자들만 너무 챙겨온 데 대한 자격지심이 발동한 것은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든다. 세제를 고쳐서 부유층의 세금 혜택을 좀 줄이고 그 대신 무상급식으로 그 자제들의 급식비를 지원해주면 안 될까.

어쨌든 무상급식을 전면 실시하자면 예산이 너무 많이 들고, 그 많은 예산을 들여 굳이 부유층까지 지원할 필요가 있냐는 게 반대론의 핵심이라 하겠다.
그렇다면 제안하건대, 급식을 모든 어린이·청소년에게 무상으로 제공하되 무상급식을 받지 않아도 될 만한 부유층은 정부가 개설한 계좌에 자발적으로 임의의 급식비를 입금하도록 하는 제도는 어떻겠는가. 예상되는 세 가지 장점이 있다.

첫째, 현재와 같은 선별적 무상급식 제도로 인한 저소득층 아이들의 아픔을 치유할 수 있다. 아이들에게 자신이 무상급식 대상이 된다는 사실, 즉 자기가 가난하다는 사실을 증명하도록 하는 지금의 제도는 야당이 주장하는 “차별급식”이나 “왕따급식”이란 단어로는 다 표현할 수 없는 야만성을 지녔다. 윤증현 기획재정부 장관은 “경제하는 사람 입장에서는 (무상급식은) 납득이 안 된다. 사회주의국가로 가는 것도 아니고 재원은 뭘로 하느냐”고 말했다는데, ‘경제하는 사람 입장’이 아니라 ‘손자가 그런 처지에 있는 할아버지 입장’에서도 그런 생각을 할지 물어보고 싶다. 경제가 인간성보다 우선적인 가치를 지닌다고 믿는다면 더 이상 할 말은 없다.

둘째, 우리나라 부유층의 ‘노블레스 오블리주’를 만천하에 입증할 수 있다. 정부가 개설한 계좌로 자발적으로 쏟아져 들어오는, 실제 급식비와 관계없이 그 이상도 쾌척하는 입금 행렬을 목도한다면, 우리는 우리 사회에 아직 희망이 있다는 기쁨에 들뜨게 될 것이다. 그 명단에서 정몽준 대표나 안상수 원내대표, 윤증현 장관 등의 이름을 볼 수 있다면 더욱 반갑지 아니하랴.

셋째, 위의 장점과 연관된 것으로, 무상급식 예산을 절약할 수 있다. 노블레스 오블리주의 꽃이 화려하게 필수록 국가 재정도 튼튼해지는, 아름다운 선순환의 고리가 완성되는 것이다. 자발적 입금이 전혀 없거나 매우 저조하다면 예산 타령이 다시 흘러나올 수 있다. 물론 그 예산 타령은 지금처럼 가난한 아이들에게 저주나 마찬가지인 차별의 노래는 아닐 터. 부유층의 이타심과 사회적 책임을 촉구하는 긍정의 예산 타령에, 우리는 덩실 춤까지 추지는 않아도 가슴을 쥐어뜯는 참담함에서는 해방될 수 있을 것이다. 가르치며 또한 기른다는 뜻의 ‘교육’(敎育), 헌법에 명시된 아이들의 권리가 제자리를 찾을 수 있을 것이다.
이상의 제안에 반론은 얼마든지 있을 수 있다. “무상급식을 하면 극단적으로 옷도 사주고 집도 사줄 것이냐”(윤 장관)는 따위의 돼먹지 않은 주장이 아니라면, 얼마든지 환영한다. 나아가 이 제안을 깡그리 짓뭉개도 좋으니, 제발 아이들에게 상처 주지 않는 급식제도를 실현할 수만 있다면 좋겠다.


편집장 박용현 piao@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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