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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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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람에서 방과후까지

등록 2009-12-09 06:56 수정 2020-05-02 19:25
요람에서 방과후까지. 일러스트레이션 김대중

요람에서 방과후까지. 일러스트레이션 김대중

처음으로 ‘키즈카페’에 갔다. 나처럼 ‘밥상’과 ‘책상’ 사이에서 낑낑대는 여자를 위한 아주 기특한 공간이었다. 노트북으로 일하고 있으면 밥도 주고, 커피도 주고, 선생님이 아이와 놀아주기까지 한다. 물론 돈이 든다. 엄마와 아기가 환대를 받으려면 으레 돈을 내야 한다. 결혼부터 출산, 육아에 이르기까지 ‘신부님’에서 ‘산모님’, ‘어머님’까지 나는 전에 못 듣던 여러 칭호를 들으며 가격을 지급했다. 아마 ‘학부모님’이 되는 순간 그 금액은 고공비행을 시작할 것이다.

“중학교 가기 전 친자확인해야 한다”

임신 뒤 과연 아이와 관련된 산업은 불황이 없다는 말을 실감할 수 있었다. 정보 수집을 위해 들어간 인터넷 카페는 유아용 신제품의 열띤 홍보의 장이었고 엄마들의 열렬한 지지를 받은 물품들은 ‘국민 유모차’니 하는 소리를 들으며 베스트셀러가 되고 있었다. 한동안 구경하는 재미에 들락거렸지만 어쩐지 과열된 분위기와 결국 수많은 정보가 소비로 연결된다는 사실에 진이 빠져 흥미를 잃었다. 시어머니가 해주던 산후조리도 전문 도우미가 와서 배마사지까지 해줄 정도로 세분화된 요즘, 돈이 있으면 확실히 육아가 편하다! 누누이 말하지만 앤절리나 졸리가 자기 깡다구만 하나 믿고 입양을 계속 하는 게 아니다.

근래 들었던 가장 험악한 농담은 아이들 중학교 가기 전에 친자확인을 해야 한다는 어느 아주머니의 말이었다. 그만큼 돈이 들기 때문이란 것인데 ‘자식=돈’으로 연결짓는 세태가 씁쓸해 “그래도 다들 자기 밥그릇은 갖고 나온다”고 주장하고 싶지만 밥만으로는 못 사는 세상이란 걸 안다. 정부가 출산율을 걱정한다는 기사 아래 달린 댓글에서 “우리 자식들의 값싼 노동력이 필요한 것 아니냐”고 사자후를 토해내던 싱글도 이해가 간다. 무슨 에르메스 버킨백도 아닌데 구립 어린이집 대기자 명단에 몇 년째 줄 서 있는 처지로서 이 땅의 출산 기피자들의 심정을 알고도 남는다. ‘요람에서 무덤까지’도 아닌 그저 ‘요람에서 방과후까지’도 책임지지 못하면서 왜 정부는 자꾸 아이를 낳으라고 하는지. 이렇게 무턱대고 강요하다 “홀로 있는 자에게는 화가 있으리라”는 전도서의 말처럼 저주를 내리지나 않을지, 스파르타처럼 노골적으로 국방의 의무를 다할 군인을 낳지 않았다고 독신자들을 구박하지 않을지, 아예 로마처럼 혼자 살다 늙은 사람에게 벌금을 때리지나 않을지 걱정된다.

아이를 키우면서 가슴이 아팠던 기사가 있다. 미혼모로 아들을 낳아 키우던 젊은 엄마가 출근 전에 밥을 안 먹는다는 이유로 아이를 혼내다 벽에 머리를 부딪히게 해 죽인 사건이다. 물론 극단적인 경우로, 정신 나간 엄마를 탓하면 그만일 수 있으나 그 젊은 엄마가 혼자 아이를 낳기로 결심한 뒤 그래도 열심히 키워보려 아등바등 노력했을 시간들을 생각하니 마음이 저려왔다. 육아에서 가족과 주변의 도움이 얼마나 절실한지 알기에 그 손길을 못 받는 사각지대의 가정들은 어떤 상황일지 짐작이 되고도 남았다. 아이는 엄마 혼자 키우는 게 아니다. 공동체가 함께 키우는 것이다. 이러한 인식이 사회 전반에 싹트기 시작한 건 반가운 일이나 이를 정책적으로 실현한다는 쪽과의 온도차가 왜 이렇게 큰지 모르겠다.

공익광고처럼 말하려니 쑥스럽지만

때 되면 받는 보조금이나 장려금으로 깊은 박탈감과 불안까지 메울 수는 없다. 자녀의 학력은 부모의 정보력과 조부모의 재력이란 말이 더 이상 농담이 아닌 걸 아신다면 젊은 층의 출산 기피 현상을 이제 자연스러운 생물의 사생활로 받아들였으면 한다. 개체가 종족 보존 본능까지 미루는 데에는 다 이유가 있지 않겠는가. 강대국 되는 데 머릿수 모자란다고 섭섭해하지도 말라. 미래의 독거노인 혹은 빈곤노인이 될지 모를 젊은이들도 꿋꿋이 참고 있으니까. 아이를 사랑하기 때문에 아이를 낳지 않는다는 어느 가난한 부부를, 출산 장려 공익광고에서처럼 마냥 웃으며 격려해줄 수는 없지만 그래도 희망은 품어본다. 나 하나 먹고살기 힘들어, 아니, 나 하나 힘든 건 괜찮은데 자식한테 미안할까봐 주저주저하는 이 애처로운 젊은 층의 혼인 출산 파업 사태가 하루속히 정리되기를. 공익광고처럼 말하려니 쑥스럽긴 하나, 아이가 희망인 건 사실이므로.

이지민 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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