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호 표지이야기는 바이러스에 대해 한번 공부해보자고 제안한다. 바이러스는 참 기묘한 존재다. 생물도 아닌 것이 생물이 아닌 것도 아니다. 생물이 기본적으로 갖추고 있는 대사 기능이 없다. 숙주의 세포에 침투해서만 살아갈 수 있다. 혼자서는 먹고 살지 못한다. 그러면서도 자기 보존과 전파의 이기심은 강하다.
이런 바이러스의 ‘성질’을 시장경제적 사회의 삶에 비유해보면 어떨까? 대뜸 머릿속에 떠오르는 건 공직자와 조폭이다. 대부분의 사회 구성원은 시장이 요구하는 재화나 서비스를 스스로 생산해 그 교환가치로 먹고사는데, 유독 강제력(합법적이든 불법적이든)을 동원해 다른 사회 구성원한테 신세(세금이나 ‘삥’이란 이름으로)를 져야만 살아갈 수 있는 게 그들이다. 이상적인 시장경제에서는 공직자도 조폭도 필요로 하지 않을 것이다. 비유하자면 그렇다는 것이다.
내친김에 비유를 좀더 끌고 가자면, 바이러스의 ‘작용’ 측면에서는 공직자와 조폭을 비유 대상에 같이 놓을 수 없다. 현실의 시장경제는 이상적이지 않으므로, 시장의 실패를 막고 사회적 정의를 실현할 공적 조직이 필요하다. 바로 공직자다. 동시에 그 사회적 정의의 빈틈을 파고들어 해악질을 하는 어둠의 조직도 늘 있어왔다. 조폭이다. 바이러스 중에는 숙주에 해를 끼치지 않고 공존하는 경우도 예외적으로 있다고 하는데, 공직자는 그보다 더 나아가 숙주의 건강에 기여하는 작용을 하는 존재다(물론 세금 폭탄을 싫어하는 이들은 이런 평가에 치를 떨 것이다). 물론 때로는 숙주에게 해를 끼치는 독성 강한 유형이 출몰하기도 한다. 반면 조폭의 경우 보통의 바이러스처럼 숙주를 괴롭히고 심지어 죽이기까지 하는 게 통례다.
그런데 바이러스에게도 기본적인 생존 전략이 있어, 정상적인 상황에서는 숙주를 죽음에 이르게 하지 않는다고 한다. 숙주가 죽으면 자신도 더 이상 생존할 근거가 없어지기 때문이다. 극악하게 숙주를 공격하는 건 바이러스 간 교잡을 통해 출현한 신종 바이러스라고 한다. 새로운 종류의 바이러스에 미처 면역력을 갖추지 못한 숙주는 쉽게 죽게 되는 것이다.
이 비유를 끝까지 끌고 갈 생각은 없다. 비유는 진실의 일단을 도드라지게 보여줄 뿐 진실의 전체를 대변할 수는 없음을 잘 알기 때문이다. 특히나 공직자를 바이러스에 비유하는 건 예의도 아니다. 결정적으로 이 비유가 놓치는 또 한 가지 진실은 인간이 바이러스나 다른 생물체와 달리, 현재까지의 과학적 발견으로 미뤄볼 때, 유일하게 영혼을 가졌다는 점이다. 인간은 먹고사는 문제, 자손을 퍼뜨리는 문제 못지않게 인간답게 사는 문제를 중시하는 존재라는 점이다.
다만 한 가지, 생존의 ‘성질’ 측면에서 공직자는 시민을 숙주로 하고 있다는 사실만 유효한 비유로 남겨두기로 하자. 공직자가 받는 임금이 시민의 세금에서 나오고 공직자가 행사하는 권한이 시민의 위임에서 나온다는 사실만큼은 분명하므로, 숙주 없이는 생존할 수 없는 존재임이 틀림없다는 뜻이다.
종합하면, 인간은 자신의 존재를 떠받치고 있는 다른 존재에 대해 바이러스와는 비교가 불가능한 고결한 태도를 지닌 존재다. 그래서 인간의 사회적 삶을 조타하는 유전자와 진화의 법칙은 대한민국 헌법에 수놓인 원칙, 바로 인간의 존엄성과 민주주의다. 다른 모든 제도와 법리와 지침은 이를 실현하는 도구일 뿐이다.
이제 표지이야기를 읽고 나서 다른 기사들로 눈길을 돌려보자. 용산 참사 재판에서 철거민 피고인들에게 징역 5~6년의 중형을 선고한 재판부, 언론관련법 날치기 통과의 위법성을 인정하면서도 법 자체는 유효하다고 결정한 헌법재판소, 자국민이 해외에서 체포·구금됐을 때 적절한 보호를 못한 외교통상부, 막장 빈곤노동의 현실에 여전히 눈감고 있는 노동부…. 진실을 찾아보자.
신종 바이러스는 이 순간에도 새로운 모습으로 진화 중이라고 한다.
편집장 박용현 piao@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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