폭력 추방을 모토로 삼는 의 첫 회 아이템을 장식한 사람은 엄마를 때리는 패륜아였다. 엄마에게 ‘시옷자’ ‘지읒자’ 욕설을 퍼붓고 주먹질·발길질도 사양하지 않는 그의 모습은 시청자의 격분을 자아내기에 충분했다. 징역 1년가량을 선고받았는데, 사람들은 그 형량이 터무니없다고 분통을 터뜨렸고, 후일담 방송에서 아들이 엄마에게 보낸 사죄 편지 가운데 출옥 뒤 장사 밑천을 대달라고 요구한 구절이 발견됐을 때에는 어떻게 그런 작자가 반성을 했답시고 방송에 소개할 수 있느냐는 항의가 게시판을 뒤덮었다.
나는 그 의로운 분노를 수긍한다. 병역 이행 기간보다도 짧은 징역 1년으로 어미를 쥐 잡듯이 잡은 죄악이 어찌 사해질 수 있으며, 그 죄에 값할 수 있겠는가. 그런데 4년이 흐른 요즘, 우리 팀에서는 “자식이 부모를 두들겨 패는” 케이스를 굳이 다루려 하지 않는다. 솔직히 말하면 너무나 흔하기 때문이다. 그리고 더 진솔해지자면 시청자에게 더 이상 ‘쇼킹’하지 않기 때문이다.
직업상 부모에게 폭력을 휘두르는 아이들을 무시로 만난다. 방송을 통해 소개하지 않은 케이스를 합하면 열 손가락을 서너 번 구부려야 셈할 수 있을 정도다. 그들은 대개 학교에서는 문제아로 찍혀서 쫓겨난 이들이기 일쑤였고, 그 성장 환경에 가정폭력이나 아동학대의 시커먼 그늘이 드리워지지 않은 경우가 드물었다. 덩치는 커져가지만 정신세계는 황폐해져갈 뿐인 아이들의 위안은 골방 속 컴퓨터였고, 가장 만만한 상대는 부모였다.
그 아이들도 언젠가는 그나마 그들을 품고 있는 부모의 울타리를 넘어 밖으로 나와야 할 때가 올 것이다. 사회로부터 격리되고 스스로도 사회를 외면한 채, 사람 죽이고 피가 튀기는 폭력적 게임으로 밤을 지새우는 아이들이, 부모를 두들겨 패기도 하고 심지어 장바닥에서 사온 병아리나 강아지의 목숨을 심심파적으로 거두던 아이들이 사회에 나올 제 어떤 일이 벌어질까? 사회적·제도적인 도움과 거리가 멀었던 그들의 과거는 돌아볼 필요 없이, 그들이 저지른 행동을 준엄하게 꾸짖고 엄벌에 처하면 끝나는 것일까?
이른바 ‘나영이 사건’으로 온 나라가 떠들썩했다. 나 자신이 그런 일을 당했다면 무슨 수를 쓰든 사적인 복수를 감행했을 것이다. 범인은 그의 행동을 통해 나영이를 한 인간으로, 인격체로, 자신만큼이나 소중한 생명으로 전혀 보지 않았음을 처절하게 증명했다. 이른바 ‘사이코패스’처럼 그는 어린아이의 육신과 정신을 장난감처럼 유린했다. 그런데 그는 원래부터 범죄 유전자를 지녔으며, 그런 이들을 영원히 사회에서 격리한다면 유사한 일이 줄어들 수 있을까? 사이코패스를 평생 연구해온 로버트 드 헤어 교수의 말을 들어보면 그렇지도 않은 것 같다. “상대방을 이해하는 마음 없이 경쟁만 강조하는 사회, 이기는 자만이 추앙받는 사회에서 사이코패스는 필연적이다.”
그 청년은 지금 무엇을 하고 있을까분노의 화살을 시위에 메기는 것은 좋다. 뻔뻔하고 잔악한 범죄를 저지른 이의 심장에 과녁판을 그려놓고 그곳을 겨냥하는 것까지도 좋다. 그런데 과녁이 고슴도치가 된 뒤, 우리의 화살은 어디로 향해야 할까? 분노해야 할 때 분노하는 것은 정당하다. 하지만 무엇이 문제인지에 대한 진지하고도 실질적인 관심으로 승화되지 못하는 분노는 급속히 그 영양가가 떨어질 것이다. 아무리 의롭고 마땅한 분노라고 하더라도 말이다.
4년 전, 어머니의 사정을 돌보지 않고 폭행하던 스무 살 청년은 지금 무엇을 하고 있을까? 그 청년의 행동에 치를 떨던 사람들의 분노는 어디로 갔을까? 인두겁을 쓰고는 도저히 저지를 수 없는 범죄를 저지른 짐승 같은 범죄자들을 대통령 말씀대로 “사회에서 격리”하면 분노의 근원 역시 우리로부터 분리될까? 우리가 할 일이란 우리의 분노를 고스란히 퍼부을 수 있는 괴물의 등장을 기다리는 것뿐일까?
김형민 SBS PD
한겨레21 인기기사
한겨레 인기기사
고물상 아버지가 주운 끔찍한 그림이 88억 피카소 작품?
‘김건희 특검법’ 국민의힘 4명 이탈표…단일대오 ‘균열’
사라진 ‘필리핀 가사관리사’ 2명 부산서 검거
문 전 대통령, 경기도청 ‘깜짝 방문’ 왜?
‘회칼 테러’ 황상무 KBS 계열사 프로그램 진행자로 발탁
헤즈볼라 수장 후계자, 이스라엘 공습에 ‘사망 추정’ 보도
대통령 국외 순방에 또 예비비 편성…순방 연기로 6억원 날리기도
“올해 주꾸미는 공쳤어요”...소래포구 어민 화재에 망연자실
지상전서 허찔린 이스라엘, 2006년 침공 실패 되풀이하나
이란 ‘호르무즈 해협 봉쇄’하면 최악…유가 101달러 급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