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 내가 다른 해보다 많이 본 것이 있다면 바로 무덤이다. 뉴스를 통해 본 것이긴 해도 볼 때마다 주인들에 대한 감상이 안 떠오를 수 없었다. 특히 주인의 운명을 따라 괜한 고생을 하는 무덤들을 보면 안쓰러웠다. 그곳에 묻힌 이들은 모두 스타였고 어떤 상징 같은 존재였다. 비범한 그들에게 무덤은 ‘영혼의 안식처’라는 평범한 기능도 할 수 없었다.
먼로의 옆자리
이베이에서 메릴린 먼로의 납골묘 윗자리를 경매 중이라는 소식은 흥미롭고도 씁쓸했다. 세 번이나 결혼을 하고 많은 남자들의 사랑을 받은 그녀이나 결국 함께 묻힐 동반자는 갖지 못했다. 그녀가 잠든 옆자리는 이미 의 창간자이자 그 방면의 신적 존재인 휴 헤프너가 소유하고 있다고 해서 안 그래도 마음이 불편했기에 (정말로 그가 거기에 묻힌다면 ‘섹스 심벌’이기보다 한 명의 예술가로 남길 희망한 메릴린 먼로의 평생의 꿈은 뭐가 되겠는가) 이번에는 그녀의 영혼을 편안히 해줄 인물에게 그 행운이 돌아가기를 바랐다.
어쨌든 메릴린 먼로의 경우는 애교일지 모르겠다. 고 최진실씨의 유골함 도난 사건은 그야말로 충격이었다. 유골함을 훔치는 범인의 모습이 찍힌 폐쇄회로 텔레비전(CCTV) 화면을 보는데 등골이 오싹해지고 화가 치밀었다. 공개수배 뒤 체포된 범인이 범행 동기에 대해 횡설수설해대는데 어처구니없을 뿐이었다. ‘만인의 연인’이란 여배우를 향한 가장 그럴싸한 오해 속에서 그저 고독했을 그녀의 시간을 느낄 수 있었고, 왜 그녀가 죽어서도 이런 모독까지 감당해야 하는지 안타까웠다.
묘를 판다. 이것은 과연 한 인간을 모욕 주는 데 최고로 몹쓸 유서 깊은 방법이다. 웨난이 쓴 를 읽으면 스펙터클한 중국 도굴의 역사를 접할 수 있다. ‘예로부터 지금까지 망하지 않은 나라 없고 도굴되지 않은 무덤 없다’고 중국 황제들은 사후에 있을 도굴과 시체 훼손을 막기 위해 지대한 노력을 퍼부었다. 그중에 으뜸은 역시 ‘생전에는 하늘을 속이고 죽어서는 사람을 속인’ 조조다. 조조의 주검이 안장되던 날, 동서남북에서 72개 관이 동시에 성문 안으로 들어왔다고 한다. 철두철미한 조조는 72개 의총을 만들어 도굴꾼들을 깊은 좌절에 빠뜨렸고 결국 2천 년이 다 돼가는 현재까지 조조의 진짜 무덤은 발견되지 않고 있다. 신비스러운 면에서는 역시 칭기즈칸을 따를 자가 없는데, 칭기즈칸의 영구를 사막으로 호송하던 군대는 비밀을 유지하기 위해 사람이든 짐승이든 가던 길에 만나는 모든 생명을 그 자리에서 죽였다고 한다. 그렇게 어렵게 도착한 장지에서 몽골인의 전통인 ‘비장’의 풍습대로 봉분 없이 영구를 땅속 깊이 묻은 뒤 1만 마리의 말들로 하여금 평평하게 땅을 다지게 했다. 영혼불멸의 꿈만큼 빛나는 문화유산을 대량 매장했기에 중국 황제들의 도굴 방지를 위한 노력은 당연한 것이었다. 그러나 단지 재물이 도굴의 목적이 아닌 경우도 있었다. 가문의 원수를 갚기 위해, 또는 그야말로 고인에게 모욕을 주겠다는 순수한(?) 의도하에 무덤을 파헤치는 일도 많았다.
보수 단체의 디테일한 퍼포먼스얼마 전 현충원 앞에서 보수 단체 어르신들이 ‘김대중 전 대통령 묘 파기 퍼포먼스’를 벌인 것도 그런 의도를 명확히 세상에 표명하기 위해서였지 않나 싶다. 그분들이 준비한 제법 디테일한 퍼포먼스 도구들을 보고서 오히려 나는 ‘정말 퍼포먼스 아트만 하시려 했던 거구나’ 하고 안심을 했다. 설령 행동으로 옮긴다 해도 우리는 이미 생중계를 통해서 그 안에는 가져갈 게 아무것도 없다는 걸 잘 알고 있지 않은가. 단지 훼손을 목적으로 한다 해도 그 뜻 또한 이루지 못하리란 것 역시 알고 있다. 이미 훼손할 수 없는 ‘그 무엇’은 결코 무덤 속에 잠들어 있지 않으니까.
내가 올해 유독 많이 본 유명 인사들의 마지막 의식은 서글펐다. 무언가의 상징이 된 존재들은 상징 외에는 아무것도 되지 못한다는 비극을 품고 있다. 그래도 내가 그들을 기억하고 좋아하는 이유는 바로 그들과 함께 묻힌 그 비극 때문이 아닐는지. 물론 이름 없는 길가의 무덤에도 조용한 슬픔과 추억, 꽃다발을 가질 자격은 충분하겠다.
이지민 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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