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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턴이냐 미야자키 하야오냐

등록 2009-06-16 17:10 수정 2020-05-03 04:25

모기가 사람을 물었다고, 모기를 잡아다 훈계를 하는 사람이 있을까. 그런데, 사람의 경우에는, 화가 나서 사람을 때렸는데 왜 벌을 받아야 할까? 그것은 사람에게는 화가 나도 참을 수 있는 능력이 있다고 믿기 때문이다. 꽤 쉬워 보이는 이 문제는, (늘 그렇지만) 사실 철학자들에겐 그리 자명한 것이 아니어서, 철학에서는 오랫동안 골치 아픈 문제였다. 어떤 원인 때문에 자연스럽게 화가 나는 것과 그럼에도 그것을 억누르고 다른 선택을 할 수 있다는 것이 어떻게 공존할 수 있는가? 인간은 자연 안에서 그 필연적 법칙의 영향에 따라 행동하는가, 아니면 자연 밖에서 또 하나의 세계를 구성하는가? 간단히 말해, 필연과 의지, 인과율과 도덕성, 자연과 자유는 어떻게 서로 얽혀 있는가?

뉴턴이냐 미야자키 하야오냐. 일러스트레이션 김대중

뉴턴이냐 미야자키 하야오냐. 일러스트레이션 김대중

압도적 이미지로 떠오르는 원자들의 충돌

문제는 복잡해진다. 일단 인과율, 즉 원인과 결과의 관계라는 것이 무엇인지 우리는 쉽게 확정하지 못한다. 나뭇잎은 왜 녹색인가? 햇빛이라는 외부 물체의 자극 때문인가, 아니면 광합성 작용을 하는 분자들의 물질적인 내부 구성 때문인가, 아니면 그런 유리한 물질적인 구성을 갖도록 진화를 추동해가는 나무들의 생명력 때문인가? 합리적이고 가능한 대답 중에서, 원자들의 충돌이라는 인과관계가 압도적인 이미지로 떠오르게 된 것은 우리가 뉴턴 이후에 살고 있기 때문이다.

뉴턴의 법칙에 포위된 상태에서, 자유와 윤리의 여지를 확보하기 위해 철학자들은 점점 더 정신적인 요소에 호소했다. 그리고 당연히 그것은 물질의 학문, 자연과학에 적대적이었다. 그 적대감은 그저 말하기 좋아하는 몇몇 사람들만이 느끼는 추상적인 것만은 아니다. 정신과 물질의 간극이 벌어질수록, 우리 삶을 이루는 영역들 간의 괴리도 따라서 커지기 때문이다. 자연과학과 공학에는, 연습문제를 푸는 데 어떤 도움도 안 되기 때문에, 영화나 연극과 관련된 교양은 허용되지 않는데다 급기야 그것들을 비웃는 데까지 이른다. 반면 인문학은 물질 운동의 소용돌이에 무관심으로 일관하다, 동시대의 경제와 기술에 한참 뒤처지기도 한다.

일리야 프리고진(Ilya Prigogine)이라는 학자는 바로 그 지점, 괴리의 한복판에서 법칙과 자유에 대해 새롭게 사유했다(여담이지만, ‘일리야’는 프랑스어로 ‘~이 있다’라는 뜻인데, 그러니까 그는 1차 세계대전 이후 러시아에서 벨기에로 이주하면서, 가장 철학적인 이름을 얻게 된 셈이다). 그의 연구는 과학과 철학, 두 가지 측면에서 높은 성취를 보여준다. 우선, 그는 자신의 비평형 열역학 연구의 탁월한 성과로부터 과학의 새로운 시대가 시작되었다고 선언하는 데에까지 나아간다. 다른 한편, 자신의 연구에 담긴 사상적 함의를 설명하는 철학적 능력과 소양이 놀랍다. 그가 에피쿠로스부터 화이트헤드까지 인용할 때, 그 방대함과 정확성은 과학자의 저서로서는 좀처럼 보기 드문 것이다.

혁명의 시간마다 공명이 있었다

그의 저서 에 따르면, 원리상 입자의 다음 궤적은 확률로만 알 수 있을 뿐이며, 여기에서 우연은 일차적인 역할을 수행한다. 그리고 더 근본적으로, 입자 궤적의 예측을 불가능하게 하는 것은 바로 입자들 간의 공명(共鳴)이다. 그러니까 뉴턴 역학은 입자들의 공명이 존재하지 않는 가정된 상황에서만 성립하는 근사치다. 그 경우 입자의 궤적은 정확히 결정론에 종속된다. 물론 우리의 실제 자연계는 수없이 많은 공명들로 가득 차 있다. 그러므로 말하자면 뉴턴 역학보다는 미야자키 하야오의 애니메이션이 우리의 세계에 더 가깝다. 그의 작품엔 바다에, 하늘에, 산에, 골짜기에, 골동품 가게에 감춰진 공명들로, 혹은 그것들을 보존하려는 전투로 가득하다. 그리고 여기에서 자연과학과 역사는 하나로 통합된다. 말 그대로 함께 노래하고 소리치는 것, 그것이야말로 역사의 궤적을 바꾸었던 혁명의 시간마다 등장한 것이 아닌가.

이찬웅 프랑스 리옹고등사범학교 철학박사과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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