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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글부글] <조선일보>의 성감대를 찾았다

등록 2009-06-16 11:46 수정 2020-05-03 04:25

의 ‘성감대’를 찾았다. 의 성감대를 설명하기 위해서는 먼저 ‘불감증’을 설명해야 한다. 불감증은 무엇인가? 불감증이란 단어 자체는 원래 ‘느끼지 못한다’는 뜻이니, 요즘 하는 말로 ‘필이 꽂히지 않는다’는 말과 같다 하겠다. 촛불집회와 노무현 전 대통령 서거를 추모하는 시민분향소, 6·10 범국민대회 등을 찾는 기자를 보면 사람들은 물음표를 던진다. “기사도 안 쓸 거면서 뭐하러 온 걸까?” 하지만 그건 를 아직도 모르는 사람이나 하는 소리다. 는 열심히 쓰고 있다. 시각도 참신하고 독특하다. 노 전 대통령을 추모하기 위한 대한문 앞 시민분향소를 취재했던 허아무개 기자는 6월2일치 에 ‘숭례문 교훈 잊은 대한문의 촛불’이란 기자 칼럼을 남겼다. 칼럼은 화재로 국보 1호인 숭례문을 잃고 격앙됐던 국민들이 대한문 처마 밑의 촛불에는 왜 관대한지 묻고 있다. 덕수궁 담벼락에 추모사 쪽지를 붙이는 것이 문화재보호법 위반이란 지적도 곁들였다. 6·10 범국민대회를 취재한 조아무개 기자는 어떤가? 그는 6월10일치 취재수첩 ‘시위대의 불법 불감증’을 통해 범국민대회가 “불법으로 얼룩졌다”고 비판했다. 근거는 일부 참가자가 도로에 모여앉아 햄버거와 컵라면을 먹었다는 것 등이다. 이쯤되면 눈치 빠른 독자는 의 ‘성감대’를 짐작했을 거다. 의 성감대는 바로 뒤통수라는 거 아닌가. 시민분향소나 범국민대회에 참가한 시민이 느끼는 분노와 슬픔에는 ‘필이 꽂히지 않는’ 지만, 이들의 사소한 ‘불법’에는 ‘필히 꽂힌다’. 시민의 분노와 슬픔에 ‘공감’하지 못하는 대신, 이들의 뒤통수를 치며 ‘쾌감’을 찾는 의 ‘욕망’은 그래서 차라리 눈물겹다. 하지만 앞으로도 계속 이상한 ‘쾌감’을 고집하면, ‘(기사) 마감’을 ‘마감’하게 되는 수가 있으니 조심할 것!

사진 YTN 제공

사진 YTN 제공

“찍지 마 씨ㅂ! 성질이 뻗쳐서 정말.”(언론은 흔히 ‘찍지 마 씨×’로 인용하지만, 동영상에 집중하면 분명 ㅂ까지 들린다.) 2008년 국정감사 때 이렇게 말했던 유인촌 문화체육관광부 장관은 분명 ‘싸움닭’의 모습이었다. 아름다운 농촌 양촌리 청년회장 시절 전원일기를 쓰던 그가 느닷없이 성질을 드러냈을 때 말들이 많았다. 하지만 시간이 흘렀고, 그는 다시 우리 곁으로 돌아왔다. 농촌 총각 ‘용식이’의 모습으로 말이다. 한국예술종합학교 앞에서 1인 시위를 하고 있던 학부모 앞에 등산모를 쓰고 자전거를 탄 서민적 모습의 그가 나타났다. “누가 당신을 세뇌시켰냐”며 정겹게 말을 건넸다. 학부모가 “세뇌라니, 내가 나이가 몇 살인데…”라고 하자 그는 “세뇌가 되신 거지. 절대 그런 일이 없다고 이야기했고, 학교 전체가 지금 다 알고 있는데 왜 그렇게…”라고 ‘쪼다’가 사라졌다(‘쪼다’는 ‘닭이 모이를 쪼다’의 ‘쪼다’와 같은 말로, 언론사에서는 흔히 ‘우리 편집장이 어김없이 마감을 쪼았다’의 방식으로 쓴다). 이 장면이 담긴 동영상이 공개되자 시민 일부는 “학부모에게 ‘세뇌’라니, 유인촌은 ‘새뇌’인가 ‘닭의 머리’인가”라며 분노했지만, 자타가 공인하는 서울 공덕동 제일의 ‘닭광’인 나는 새로운 가능성을 봤다. 양촌리 청년회장 시절의 그를 앞세운 통닭 사업 말이다. 체인점 이름은 ‘촌닭’이 딱이다. ‘촌닭’에 필이 꽂히지 않는다면 ‘인촌치킨’은 어떤가. ‘사람 사는 세상에 닭 한 마리가 찾아왔다’는 뜻이다.

최성진 기자 csj@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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