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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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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개의 자존심

등록 2009-05-13 10:25 수정 2020-05-03 04:25

전에도 이 칼럼에서 말했듯, 대법관은 누가 뭐래도 법조계의 최정점이자 법률가적 자존심의 화신 같은 존재다. 그런데 신영철 대법관은 자존심을 접은 채 아직도 그 어떤 미련의 끈을 끊어버리지 못하고 있다. 대법관이 ‘그만 물러나라’는 언론의 평가를 받는다는 것 자체로 법원, 나아가 법조계 전체는 붉은 얼굴을 감싸쥐어야 할 판이다. 그런데 신 대법관은 여태 미적거린다. 그의 ‘촛불 재판’ 관여 의혹을 조사한 대법원 공직자윤리위원회가 5월8일 신 대법관에게 경고 또는 주의촉구 조처를 하라고 대법원장에게 권고했으니, 이제 가벼운 징계 정도로 사태를 마무리하자는 심산인지도 모른다.
검사 또한 법률가적 자존심에선 처지지 않는다. 수사 과정에서 법원보다 능동적인 구실을 하는 검찰은 전직 대통령까지 불러 조사할 권한을 가지고 있으며, 구속 여부에 대해서도 법원보다 앞서 결정권을 가진다(구속영장을 청구하지 않으면 구속될 일이 없다). 그런데 이 모든 과정을 독립적으로 엄정한 기준에 따라 수행하지 않는 순간, 그러니까 예전처럼 정치권력에 고개 숙이고 눈치를 보기 시작하는 순간, 자존심과 더불어 권위마저 봄날 벚꽃잎처럼 떨어져버린다. 외부의 입김이 살랑살랑 불어오기 때문이다. 국정원이 노무현 전 대통령의 불구속 기소 의견을 검찰 고위층에 전달했다는 의혹 보도는 검찰, 나아가 법조계 전체가 옷을 찢으며 부끄러워해야 할 일이다. 오죽 만만하게 굴었으면 그런 일이 벌어졌을까.
이제 부끄러움을 자초한 두 집단이 목불인견의 자존심 싸움을 벌인다. 용산 참사 재판에서다. 검찰은 피고인들에게 유리한 대목이 들어있을 수사 기록 일부를 공개하지 않겠다고 버틴다(단지 피고인과 ‘맞장’ 뜨는 처지가 아니라 공권력의 화신이라 할 검사는 피고인에게 유리한 증거도 찾아내 법정에 제출해야 할 의무가 있다). 법원은 이 수사 기록을 공개하라고 결정했다. 하지만 검찰은 막무가내로 버티고 있다. 마땅한 강제 수단이 없단다. 법원은 공개하지 않은 수사 기록과 여기에 등장하는 증인들을 증거나 증인으로 채택하지 않겠다는 소극적 수단으로 맞서고 있다.
우리는 법정에 비록 방청객 신분으로 들어가더라도 법관이 입정할 때 기립함으로써 경의를 표한다. 신을 대신해 인간사 온갖 다툼의 비루한 진실을 가려달라는, 그리고 그 결정에 겸허히 따르겠다는 복종의 서약이다. 거기엔 물론 강철처럼 단단한 전제가 버티고 있다. 오로지 법과 양심에 따라 재판을 하겠다는 법관의 신실한 서약이다. 법정에 선 검사에게도 우리는 존중의 태도를 보인다. ‘검사는 공익의 대표자’라는 검찰청법 조항을 믿고 그가 최소한 양심을 팔아먹지는 않을 것으로 기대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신을 대신한 엄정한 재판은 어디 갔는가. 공익을 위한 수사는 어디 갔는가. 생계를 위해 철거 건물 망루에 올랐던 피고인들의 ‘공정한 재판을 받을 권리’는 어디 갔는가. 이런 정처 모를 물음에 대답하지 않고 가벼운 징계나 침묵으로 사태를 덮으려 한다면, 더 이상 법정에서 기립을 요구해선 안 될 일이다. 자존심을 내세워도 안 될 일이다. 판사든 검사든 근엄한 법복 대신 러닝셔츠 차림으로 재판을 한들 외관과 내실의 차이를 누구도 눈치채지 못할 테니까.

박용현 편집장 piao@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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