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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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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민의 권리

등록 2008-07-04 00:00 수정 2020-05-03 04:25

▣ 유해정 인권연구소 ‘창’ 연구활동가


잭이 유엔난민고등판무관실의 주선으로 오스트레일리아에서 난민지위를 인정받아 그곳으로 떠난다고 했을 때, 나는 선뜻 축하인사를 건네지 못했다. 버마는 그의 아버지와 어머니가 태어나 자란 고향이지만, 그에겐 타국보다 못한 죽음의 땅. 해서 가족들은 군사정권의 위협과 분쟁의 공포를 피해 고향을 등져야 했다. 국경 너머의 타이 난민캠프에서 그토록 갈구하던 평화를 얻고 허기를 면했지만, 그뿐이었다. 잭에게는, 잭의 가족에게는 희망이 없다. 내일이 없고, 미래가 없다.

갇혀 살거나 전세계를 전전하거나

버마에 평화가 도래하지 않는 한 영원한 난민일 수밖에 없는 그들은 2×0.5km 넓이의 난민캠프 울타리에 갇혀 늙어 죽을 때까지 국제사회가 던져주는 구호품에 의존해 살아가야 한다. 몰래 캠프를 탈출해 불법체류자의 신분으로 타이나 전세계를 전전하는 것도 선택이라면 선택이겠지만, 미래가 없는 건 매한가지다. 불안정한 신분으로 모진 이주노동자 신세를 평생 면하지 못할 것이 불을 보듯 뻔하고, 운이라도 나빠 단속에 걸리는 날엔 본국 버마로의 송환을 각오해야만 한다. 해서 타이 난민캠프의 사람들은, 특히 성인 남성들은 절망적인 자신의 신세를 한탄하며 술과 마약에 취해 평생을 산다. 이런 끔찍한 현실에서 오스트레일리아나 미국에서 난민지위를 인정받아 이주 길이 열리는 건 정말 천운이건만, 마냥 기뻐해주지 못했다. 23살 잭이 오스트레일리아에서 헤쳐가야 할 삶은 또 얼마나 고될까 하는 걱정에.

유엔이 밝힌 세계 난민의 수는 6700만 명. 전쟁과 박해, 빈곤과 재해 등으로 지구촌 곳곳에서 난민은 끊임없이 발생하고 있건만, 그들은 잭처럼 정착할 곳을 찾지 못하고 있다. ‘국민’만이 권리의 주체가 되는 현실에서 거의 모든 국가들이 난민을 달갑지 않은 범법자로 취급하는 건 어찌 보면 당연한 일일지도 모른다. 국가들이 난민의 정의를 매우 제한적으로 해석하려 애쓰고, 경제적 이주민, 잠재적 범죄자 등 난민에 대한 부정적 이미지를 생산해내며, 난민을 보호의 대상이 아닌 출입국관리의 대상, 배제의 대상으로 만드는 것 또한 어제오늘의 일이 아니다. 하여 박해와 공포를 피해 생사를 걸고 국경을 넘은 난민들을 기다리는 건 안식처가 아니다. 또 다른 박해와 공포, 적대일 뿐이다.

한국에 온 난민들도 다르지 않다. 아니 더욱 ‘악한’ 현실에 서 있다. 한국 정부는 난민신청을 ‘취업을 위해 불법체류를 면하려는 술수’로 해석하길 주저하지 않고, 최근 급증한 난민신청도 ‘불법체류자 단속 강화의 연장선’이라며 색안경을 낀다. ‘정치적 박해’만을 난민인정 기준으로 강조하는 탓에 종족, 종교, 환경, 재난으로 인한 난민에게 문은 쉽사리 열리지 않는다. 해서 난민신청을 받기 시작한 1994년 이후 지난 5월까지 1951명의 난민신청자 중 난민지위를 획득한 사람은 겨우 76명. 입만 열면 비교대상으로 삼는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30개 회원국 중 꼴찌다. 난민 심사에 걸리는 시간도 최소 1년에서 5년. 언어도, 문화도, 사람 사는 모습도 다른 생면부지의 땅이건만 난민신청자들은 심사 기간 내내 아무런 문화적·경제적 지원도 받지 못한 채 거리를 전전해야 한다. 천신만고 끝에 난민지위를 획득한다 해도 ‘쫓겨나지 않을 권리’를 얻었을 뿐, 맨땅에 헤딩하긴 마찬가지다. 해서 미래를, 희망을 꿈꿀 여유도 없이, 이주노동자의 고달픈 신분으로 고국의 변화만을 기원하며 살아갈 뿐이다.

국제사회 비극에는 주머니를 털면서…

자본은 쉽사리 국경을 넘건만, 국경은 난민에게는 절대 깨지지 않는 철옹성이다. 사람들은 국제사회의 비극에 마음의 곁을 내어주고 거대한 재난 앞에서 주머니를 터는 것엔 관대하건만, ‘권리’를 인정하고 받아들이는 데는 매우 인색하다. 그들은 우리의 것을 뺏으러 온 적이 아니다. 피난처를 구하며 국경을 넘는 이들은 돌아가려 해도 돌아갈 곳이 없는 사람들이다. 박해와 공포에 직면한 사람들이다. 살아남기 위한 사투를 벌이며 이들은 말한다. 평화롭게 먹고, 마시고, 쉴 곳을 내어달라고. 그리고 더불어 인간답게 살고, 발언하고, 꿈꿀 수 있는 권리도 내어달라고. 고달픈 짐을 짊어지고 안식처를 호소하는 그들을 과연 누가 내칠 수 있을 것인가? 나누면 내 몫이 줄어들까 노심초사하며 그들을 외면하는 게 과연 옳은 것인가? 국가는 물론 우리 역시 가슴에 손을 얹고 되물어봐야 할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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