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백은하 〈매거진 t〉편집장
지난 6개월간, 열두 번의 ‘노 땡큐’ 리스트를 만들어가면서 사실 매 원고가 고역이었다. 타고나고 노력한 것에 견줘 살면서 ‘땡큐’할 일들이 더 많았고, 제아무리 ‘노 땡큐’인 일들이 닥쳐도 결국 ‘땡큐’하는 쪽으로 생각해버리는 성격 탓이다. 좋아하는 건 간단하다. 하지만 부정하는 건 힘이 든다.
학기 초, 배정받은 짝이 맘에 들면 한 학기가 마냥 즐겁지만, 반대의 경우는 에너지 소비가 시작된다. 끊임없이 선생님에게 왜 그 아이와 앉아서는 안 되는지, 그 아이의 문제점은 무엇인지 설명해야 하고, 이토록 누군가를 부정하는 스스로에게도 이 불화를 납득할 이유를 대야 마음이 편해진다. 살다 보면 긍정에는 그다지 이유가 필요 없다. 대신 불만에는 이유 접수가 필요하다. 그냥 싫어, 라는 대답은 연애에서만 통용된다.
즐거운 탈진과 힘든 탈진
처음 이 지면의 연재를 청탁받고 수락했을 때만 해도 ‘노 땡큐’라고 이름 붙인 이 한 바닥이 이토록 힘든 전장이 될지는 몰랐다. 그리 길지 않은 글이었지만 선천적으로 결핍된 ‘노 땡큐’ 유전자는 노트북과 씨름하는 불면의 밤을 늘려놓았다. 부정할 대상을 찾는 데 걸리는 시간이 길었고, 그것을 설득하는 것 또한 쉬운 일이 아니었다. 사실 다 ‘개뻥’이다. 그것보다는 흥이 나지 않아서다. 에너지가 돌지 않아서다. 대신 무엇이든 ‘땡큐’한 것에 대해 쓰라고 하면 동짓달 기나긴 밤 한 허리, 아니 백 허리를 버혀내어도 얼마든지 언제까지라도 쓸 수 있을 것 같았다.
얼마 전 한 감독을 만날 일이 있었다. 최근 본, 너무 좋았던 영화 이야기나 도저히 잊혀지지 않는 작품 이야기로 그 만남의 시간을 채웠다. 그것이 왜 좋았는지, 어떻게 마음을 움직였는지, 어떤 점이 놀라운 지점이었는지, 오로지 긍정의 에너지로 채워진 순간이었다. 그런 탈진은 즐겁다. 또 얼마 전 한 친구를 만났다. 요즘 맘에 안 드는 사람들, 힘 빠지는 세상 이야기를 듣느라 진이 빠졌다. 그런 탈진은 힘들다.
사실 이 지면을 빌려 어울리지 않게 긍정의 힘을 주장하는 것은 이 세상이 너무나 아름다워서도, 이 뭣 같은 세상을 부정하며 맞설 논리가 희박해서도, 그것을 이겨낼 용기가 없어서도 아니다. 과거나 현재나 한국이란 나라에서 태어나 한국인으로 살면서 긍정하는 힘을 가지기란 쉽지 않은 일이다.
그러다 보니 긍정의 가치는 상대적으로 너무나 폄하되고 있다. 부정하고 목소리를 높이면 ‘강단 있는 삶’을 사는 사람처럼 보이고, 긍정하고 수긍하는 자는 무조건 ‘나이브한 삶’으로 평가해버리기 일쑤다. 그런 세간의 잣대는 정말 ‘노 땡큐’다. 여전히 나는 고래도 춤추게 하는 ‘칭찬’이 사랑의 ‘매’보다 훨씬 효과적이라고 생각한다. 애정 없는 비판보다는 따뜻한 충고가 더 힘이 세다고 믿는다.
‘땡큐’인 세상의 아쉬움
이런 사람이다 보니 지난 6개월 동안 계속 지면의 이름과 상관없는 글을 쓰게 되었다. ‘노 땡큐’할 것들을 찾아 헤매기보다 ‘땡큐’인 세상의 아쉬움을 이야기하는 편에 가까웠던 것 같다. 대신 기고를 이어간 짧은 시간 동안, 어쩐지 심각하고 무거울 것 같다는 선입견 때문에 꼼꼼히 보지 않았던 을 챙겨보게 되었다. 그리고 그 안에서 긍정하는 것을 지켜내기 위해 어떤 것을 부정해야 하는지를 알게 되었다. 미안하다, 독자들. ‘노 땡큐’는 필자를 골라도 너무 잘못 고른 것이다. 사랑한다, . 한 명의 새로운 독자는 이렇게 탄생한 것이다.
* ‘백은하의 노 땡큐!’는 이번호로 마칩니다. 그동안 사랑해주신 독자 여러분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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