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백은하 〈매거진 t〉편집장
개인 홈페이지를 가지고 있다. 포털에서 제공하는 블로그도 아니고 싸이월드의 미니홈피도 아니다. 도메인을 사고, 서버를 사고, 특별할 건 없지만 혼자 디자인하고 코딩을 한, 내 손으로 만들어 특별한 웹사이트다. 이런 방면에 일찍이 눈을 뜬 사람이라면 모르겠지만 대학교 4학년 때까지 리포트도 친구가 대신 타이핑해주던 ‘컴맹’ 출신으로서 그건 정말 대단한 진보이며 새로운 자아 발견이었다. 그래서인지 벌써 7년째 함께하고 있는 이 공간에 대한 애착은 좀 남다르다. 게다가 마감에 쫓기며 살아가고 친구들을 자주 대면할 시간이 없는 인생에게 유용하기까지 하다. 자주 보지는 못하지만 언제나 나의 안녕을 알려주고 싶은 이들에게 홈페이지만큼 좋은 보고의 장도 없었다. 그 공간을 만든 이후로는 오랜 친구를 1년, 2년 만에 한 번씩 만나도 어색하지 않았다. 요즘 누구와 만나는지, 어떤 카페에 가는지, 무슨 책을 읽었는지, 어떤 영화를 봤는지 다 알고 있었고, 대화는 자연스럽게 부재 중 시간에 대한 업데이트 절차를 거치지 않고 다음 단계로 진입하곤 했다.
위로받길… 침범하지 말길…
그러나 최근 이 홈페이지를 닫아야 하나, 심각하게 고민하게 한 일이 있었다. 그동안 내 사이트를 자주 찾았다는 한 방문객(그사이 한 번도 인사를 건넨 적이 없는 모르는 사람이다)이 어떤 동의도 구하지 않고 나와 내 지인들이 찍힌 사진을 퍼가서 임의로 어떤 사이트에 올린 것이다. 그 사진은 나를 알고 내가 아는 친구에게 보여주기에는 아무 문제 없지만, 나를 모르고 나도 모르는 누군가에게 보여주긴 싫은 사진이었다. 그런데 우연히도 한 후배가 “웹 서핑을 하다가 어떤 사이트에서 선배 사진을 봤어요”라는 말을 전했을 땐 심한 불쾌감이 들었다. 게다가 그 ‘게시물’은 나의 의도와는 상관없이 편집되고 제목이 붙여져 있었다.
사실 모든 기록은 독자를 염두에 둔 것인지도 모른다. 심지어 최소한의 독자가 본인이라 가정한다 해도 그것을 기록하는 자신은 그것을 읽는 자신과 분리되어 신경을 쓰고 눈치를 보게 마련이다. 하물며 그보다 더 오픈된 공간에 글을 쓰거나 사진을 올리는 행위는 이미 그것을 읽어내려 가거나 즐길 누군가에 대한 염두가 전혀 없다고 볼 수 없다. 그건 비단 웹이라서만은 아닐 것이다. 종이에 쓰는 비밀일기라고 해도 누군가 발견할지도 몰라, 하는 생각에 암호 같은 말을 써본 기억은 모두에게 있을 것이다. 심지어 글에 대한 욕심이 있는 사람들이라면 일기 속에서도 문장을 퇴고한다.
결국 이번 사건은 해당 사진을 내리게 하고 기본적인 예의가 없었던 행동에 대한 정중한 사과의 답장을 받는 것으로 끝났다. 하지만 그 이후로도 어쩐지 찝찝한 기분에 오랫동안 사로잡혔다. 다수에게 열려 있는 공간을 자기 손으로 만들어놓고도, 그게 또 너무 공개적이라고 찌질대고 있는 나에 대한 회의였다. 끊임없이 자신의 상태를 알아주길, 위로받길, 고려해주길 바라는 마음과 동시에 모르길, 침범하지 말길, 알은체하지 말아주길 바라는 마음. 이런 이율배반적인 심리상태에 놓인 스스로에 대한 짜증이었다.
돌이켜보면 ‘웹 생활’을 시작한 이후 이런 유의 회의는 꽤 자주 나를 엄습했다. 그럴 땐 도망도 가봤다. 이제 아날로그의 삶을 살겠다며 홈페이지도 접었고, 온라인에서의 만남이 공허하다며 오프라인적 만남만 계속하기도 했다. 그렇게 나로 향하는 통로를 예고 없이 확 닫아버렸다. 하지만 남들의 방은 계속 훔쳐보고 있었다. 비겁했다. 게다가 홈페이지를 닫은 이후 오랜 친구를 만났을 때 우리의 대화는 종종 엇박자를 탔고, 그간 삶에 대한 업데이트에만도 꽤 긴 시간이 필요했다.
스스로 보호받기 위해서
원시인이 되어 다시 동굴로 들어가지 않는 이상 현대를 살아가는 사람들에게 온라인적 삶은 오프라인적 삶과 유기적이 될 수밖에 없다. 그 두 세계는 끊임없이 충돌하고 또 연대할 것이고, 안타깝게도, 살아 있는 한 두 세계에서 영원히 탈출하기란 불가능하다. 오프라인 세상에 대한 예의는 옹알이를 하면서부터 지금까지 끊임없는 교육과 학습을 통해 배웠고 배우고 있다. 하지만 이토록 큰 비중을 차지하고 있는 온라인 세상에는 어떤 교과서도 따끔한 선배의 조언도 없다. 지금 우리 모두에게 필요한 것은 온·오프라인의 삶에 대한 회의나 한쪽 삶으로부터의 탈출이 아니라, 세상에 대한 에티켓을 배우는 일이다. 예의란 누군가를 배려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스스로 보호받고 사람답게 생존하기 위해 절대적으로 필요한 것이므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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