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정재권 한겨레21 편집장 jjk@hani.co.kr
얼마 전 한 언론사의 동료들과 만난 자리에서 불쑥 이런 질문이 나왔습니다. ‘지금의 대선 후보 지지율이 12월19일까지 이어진다면 2008년부터는 무슨 일이 벌어질까?’ 서로들 한마디씩 내놓았습니다.
우선 강남 같은 인기 학군 학교에 아이를 보내기 위해 위장전입을 해도 특별한 저항감이 없을 듯합니다. 위장전입은 불법행위(주민등록법 위반)인데, 어떻게 그런 일을 하느냐고요? 이런 대답이 준비돼 있습니다. “대통령도 했는데, 뭘. 들통나면 사과하지.”
사업을 하는 이라면 아이들을 직원 명부에 올려놓고 용돈이든 생활비든 회삿돈을 주머닛돈처럼 줘도 될 듯합니다. 덤으로 세금도 좀 줄일 수 있겠지요. 자녀 ‘위장취업’은 불법행위(탈세)인데, 그러면 안 된다고요? 이렇게 대답하면 될 겁니다. “대통령도 했는데, 뭘. 문제가 되면 사과하고 세금 내지.”
위험 부담이 있지만 조금 모험적인 일도 가능할 듯합니다. 불법행위를 저지르고 문제가 불거질 듯싶으면 관련자에게 돈을 줘 외국으로 도피시킵니다. 어떻게 그런 ‘죄질’ 나쁜 행동을 할 수 있느냐고요? 이런 대답은 어떻습니까. “대통령도 했는데, 뭘. 걸리면 깊이 뉘우치고 사과하지.”
혹 대학에 초빙교수 자리가 생길 것 같으면 만사 제쳐놓고 맡아도 될 듯합니다. 너무 바빠 자신이 없어도 걱정할 필요가 없습니다. 단 한두 차례 강의를 하고도 매달 수백만원씩 받는 길도 있으니까요. 어떻게 무책임하게 그럴 수 있냐고요? 이렇게 마음만 먹으면 됩니다. “대통령도 했는데, 뭘.”
우스개 삼아 예측해본 2008년의 풍경인데, 막상 그려보고 나니 그 풍경의 우울함에 마음이 무겁습니다. 사회를 유지하는 토대인 ‘도덕률’이 맨 위에서부터 무너진 모양새라 제자리를 잡기가 쉽지 않아 보입니다.
흔히 선거는 ‘최선’이 아닌 ‘차선’(次善), 차선도 안 되면 ‘차악’(次惡)을 뽑는 일이라고 말들 하지만, 1위 후보에 대한 유권자들의 끝없는 관대함은 솔직히 불가사의하기까지 합니다. 아무리 경제가 중요한 화두이고, 달리 지지할 후보가 없다손 쳐도 유권자 스스로 도덕 불감증에 빠진 것은 아닌지 의심스러울 지경입니다. 유권자가 후보의 도덕지수에 엄격할 때만 후보는 유권자를 두려워하게 되고, 그런 과정을 거쳐 당선된 대통령만이 바른 정치를 할 가능성이 큽니다.
그러고 보니 이번 대선에서 유난히 두드러지는 도덕성 문제는 후보의 탓이라기보다는 유권자의 책임일지도 모르겠습니다. 지지율 1위 후보는 차치하고 2위를 달리는 후보 역시 지난 대선에서 수백억원의 선거자금을 불법 모금한 것과 관련해 검찰 수사를 받고 정계 은퇴를 선언한 경력이 있으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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