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정재권 한겨레21 편집장 jjk@hani.co.kr
지금대로라면, 12월에 치러지는 17대 대선은 뒷날 정치·사회학자들에게 매우 흥미로운 연구 대상이 될 듯합니다. 그동안 보수와 진보를 자처하는 후보가 1, 2위를 다퉈온 역사에서 벗어나 ‘보수 대 보수’라는 프레임 속에 선거가 진행될 공산이 크기 때문입니다.
지난 16번의 대선 중에서 국민의 직접투표로 대통령이 결정된 것은 모두 열 차례였습니다. 이들 선거에선 보수와 진보를 표방한 후보들이 치열한 각축전을 벌였습니다. 보수를 상징하는 대선 후보로는 이승만(2·3·4대), 박정희(5·6·7대), 노태우(13대), 이회창(15·16대) 등이 떠오릅니다. 그 대척점에는 2·3대 대선에 무소속으로 나섰다가 나중에 진보당 사건으로 사형을 당한 조봉암이나 김대중(7·13·14·15대), 노무현(16대) 등이 자리했습니다. 1987년 13대 대선에 야당 후보로 나섰다가 노태우 전 대통령에게 패한 뒤 ‘3당 합당’을 거쳐 92년 여당 후보로 당선된 김영삼 전 대통령은 진보에서 보수로 옮겨갔다는 평가가 가능할 듯합니다.
이런 오랜 ‘전통’을 깬 것은 물론 이회창 전 한나라당 총재의 무소속 출마입니다. 이 전 총재는 출마 선언 이후 각종 여론조사에서 돋보이는 2위를 차지하고 있습니다. 주목할 사실은, 이명박 후보보다 더 ‘오른쪽’을 표방한 그의 등장이 이명박 후보의 지지율을 갉아먹으면서도 한편으론 보수 지지층의 외연을 넓힌다는 데 있습니다. 이 전 총재의 출마 선언 이후 실시된 SBS 여론조사를 보면, 이명박과 이회창의 지지율은 각각 40.0%, 21.9%로 나타났습니다. 이 지지율을 더하면 61.9%로, ‘단일 보수 후보’ 이명박이 잘나가던 때의 지지율인 50% 안팎을 크게 웃돕니다. 반면, 진보나 ‘반보수’를 표방한 정동영(14.3%), 문국현(6.3%), 권영길(3.7%), 이인제(2.9%) 후보의 지지율은 다 합해도 27.2%에 불과합니다.
선거를 불과 한 달여 앞두고 대선 구도는 이렇듯 중대 변화를 맞았습니다. 그동안 익숙해진 “보수든 진보든 결국은 6 대 4의 게임”이라는 경험칙은 작동하기가 어려워졌습니다. 이대로라면, 속되게 표현해 둘러치나 메치나 보수 후보가 대통령이 될 가능성이 큽니다. 선거판은 이명박·이회창 두 사람이 ‘쌍끌이’로 끌고 갈 테고, 진보·개혁 후보의 설 자리는 넓어지기 힘들 겁니다. 경제·사회적 양극화 해소, 남북한 협력과 한반도 번영 등의 담론은 뒷전으로 밀려날 테지요. 이회창 후보의 등장이 ‘이명박 대세론’을 흔들고 보수의 분열을 낳을 것이라는 진보·개혁 진영 일각의 전망은 근거가 불분명한 기대로 보입니다.
한 보수 언론은 이회창 후보의 출마를 ‘우파 내전’이라 표현했습니다. 그렇지만 이런 해석보다는 ‘극우보수 논객’ 조갑제씨의 진단이 더 가슴에 다가옵니다. “이회창 전 총재의 출마는 우파 분열로 가지 않고 우파 경쟁으로 보고 우파 확대로 봐야 한다.” 진보·개혁 진영은 우파의 확대에 어떤 대응을 할 수 있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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