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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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뚜쟁이라 불러주오

등록 2007-06-01 00:00 수정 2020-05-03 04:24

▣ 이란주 아시아인권문화연대 활동가

요즘 ‘다문화 사회’ 혹은 ‘다문화주의’라는 말이 대유행이다. 한 사회 내에 여러 문화가 존재한다는 것을 인정하고, 제가끔 다른 모든 문화를 존중하는 사회를 뜻하는 것일 테다. 인정하고 존중하려면 우선 어떤 문화가 존재하는지도 알아야 하고, 그 문화를 가진 ‘사람’에 대한 이해도 필요하리라. 그러나… 하늘을 봐야 별을 따지. 어찌된 일인지 한국 사회에서는 ‘다문화’라는 용어만 허다하게 돌아다닐 뿐, 다문화 사회의 구성 주체인 ‘사람’을 만날 기회는 도무지 없다. 그러니 ‘다문화’라는 용어는 그저 뉴스에나 나오는 먼 나라 이야기쯤으로 여겨진다. 이주 관련 활동가들의 고민도 여기서 출발한다.

주류 사회와 교류하지 못하는 이주 노동자들

외국인이 100만 명 가까이 체류한다지만 정작 외국인과 뭔가 관계를 가지고 살아가는 이들은 많지 않다. 그 이유를 진단해본다면, 외국인 중에서 가장 많은 수를 차지하는 이주노동자에 대한 차별과 그로 인한 계층화 때문이라고 할 수 있다. 장시간 노동과 저임금에 시달리는 이주노동자가 공장 울타리를 벗어나 주류 사회와 교류할 기회란 거의 없다. 이주노동자들 대부분은 하루 10시간 이상 일하니 늘 피곤에 찌들어 산다. 일하지 않는 시간은 거의 잠자며 보낸다. 운이 좋으면 주말에나 짬이 좀 나지만 여가활동을 하기에는 턱없이 부족하다. 게다가 쥐꼬리보다도 못한 임금에 몸을 파니, 설사 시간이 난다 해도 놀러다닐 여유가 없다. 이주노동자들 중에 제 돈 내서 놀러다니고, 영화 보고, 분위기 좋은 찻집에서 차 마실 여유가 있는 이들이 얼마나 될까. 그러니 이주노동자가 있는 중소 영세업체에서 일하는 노동자나, 이주민이 많은 지역 거주민이 아니라면 서로 접할 기회가 거의 없다고 봐야 한다. 그나마 최근 급작스레 늘어난 결혼이민 여성들이 곳곳에서 고단한 침투활동을 하고 있지만 그 또한 아직은 미미하다. 가끔 길이나 전철에서, 시장이나 대형 마트에서 이주민을 만나기도 할 테다. 그러나 그렇게 스치는 인연에게 싱긋 미소를 짓거나 말을 걸어 소통을 꾀할 수 있을까. 아마도 단박에 작업남, 작업녀로 오해받을 것이다. 왜? ‘우리 한국인’들은 절대 길 가다 마주친 얼굴에게 미소짓거나 인사하지 않으니까. 이렇게 물과 기름처럼 절대 섞일 일이 없다면, 어찌 범접하여 ‘통’하겠느냔 말이다.

그리하여 이주 관련 활동가들이 이주자 권리구제, 차별철폐 활동과 더불어 열심히 하는 일이 또 한 가지 있다. 바로 ‘뚜쟁이’ 사업이다. 각 문화의 주체인 ‘사람들’이 서로 만날 수 있도록 이주자와 주류 사회를 연결해 인식과 교류의 물꼬를 트는 일이다. 뚜쟁이 사업에는 주로 자원활동 연결과 멘토링, 양방향 문화 소개와 교육, ‘단체 미팅’이 있다. 그중에서도 백미는 단연 ‘단체 미팅’이다. 바로 여기서 ‘뚜쟁이’의 기질과 능력이 꽃을 피운다. 그러나 오해들 마시라. 남녀간에만 ‘미팅’을 하는 것이 아니다. 모든 사람 관계에서 자연스러운 만남의 기회가 적을 때 ‘미팅’을 적절히 활용해 기름칠하면 훨씬 다양하고 재미난 관계를 만들 수 있다. 뚜쟁이들 수첩에 적힌 단체 미팅의 구체적인 항목은 이렇다. 토론회, 바자회, 다문화카페, 명절행사, ○○대회, 축제… 등등. 때와 장소를 고려해 적절히 선보이니 취향대로 고르면 된다. 좀더 솔직히 말하자면 토론회 같은 것은 별로 재미없다. 바자회와 카페, 축제가 ‘강추’ 항목이다.

6월3일, 최대의 미팅쑈!

전국에 수많은 뚜쟁이들이 있다. 이주노동자 혹은 이주민이라는 단어로 인터넷 검색을 해보면 집에서 가까운 단체와 뚜쟁이 사업을 찾을 수 있다. 시간이 나면 자원활동에 참여해서 적극적으로 ‘통’해도 좋고, 그럴 여유가 없다면 ‘단체 미팅’때 놀러가서 소통의 기반을 닦아도 좋다. 어렵지도 않다. 이주민들과 만나고 이야기하고 그 자리를 맘껏 즐기면 된다. ‘사람’과 ‘문화’가 가슴에 남도록. 여기서 긴급정보 한 가지! 6월3일, 서울 올림픽공원에서 전국 뚜쟁이들이 연합해 준비한 ‘국내 최대, 최고급 미팅쑈~’가 벌어진다. 누구나 환영하지만 한 가지 주의사항이 있다. 마음이 닫힌 자들은 스스로 경계해 출입을 금지해달라는 것이다. 괜히 와서 심술부리면, 물 흐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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