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임지선 기자 sun21@hani.co.kr
상황 하나. 얼마 전 새 남자친구 K를 사귀기 시작한 지현씨. 자타 공인 닭살커플의 위상에 걸맞게 휴대전화도 같은 모델로 바꿨다. 친절한 남친 K, 인터넷에 지현씨의 휴대전화 설정을 대신 해주겠다며 이동통신사 사이트의 아이디와 비밀번호를 물었다. 뭐였더라? 오랫동안 해당 사이트를 이용하지 않았던 지현씨가 힘들게 기억해낸 아이디는, 아뿔싸! 2년 전, 예전 남친이 귀찮은(!) 회원 가입 절차를 대신 해주며 만들어줬던 것. 그는 당시 자신이 이메일 아이디로 사용하던 자신의 ‘군번’을 친히 지현씨 아이디로 설정했었다. 아찔한 지현씨, 하지만 ‘설마, 눈치채겠어?’ 싶은 생각에 남친 K에게 아이디를 불러줬다.

그런데 이 남친 K, 보통이 아니었다. 긴 숫자로 이루어진데다 여친의 다른 이메일 주소와도 다른 생뚱맞은 아이디에 의혹의 시선이 꽂혔다. 게다가 막상 이통사 사이트에 접속해보니 그녀의 커플 요금제 이력은 너무도 화려했던 것! 질투심에 휩싸인 남친 K, 급기야 이 아이디를 그대로 복사해 구글 검색창에 밀어넣었고…. 전 남친의 이메일 주소가 검색되면서 꼬리에 꼬리를 물고 그의 이력서까지 검색되고 말았다. 기대 이상이었다. 그리하여 남친 K는 지현씨 전 남친의 ‘모든 것’을 분석해내기에 이르렀다.
상황 둘. 승기씨는 얼마 전 결혼을 했다. 달콤한 신혼을 보내던 중, 아내가 물었다. “여보, 오나영이 누구야?” 헉! 그녀가 ‘그녀’의 이름을 어찌 안단 말인가? 오나영이라면 결혼 전 여자친구! 등골에 흐르는 땀을 느끼며 태연한 척 물었다. “몰라, 왜?” “아니, 메신저 화면에 새 편지가 뜨기에 봤더니 메일함에 그 여자 앞으로 오는 메일이 여러 개 있어서.” 확인해보니 메일의 제목은 이러했다. “오나영님, 캐시백 포인트 확인하세요” “오나영님, 이벤트 당첨 확인하세요“ 등. 그제야 몇 개의 사이트에 여친 대신 가입을 해주면서 이메일난에 자신의 이메일 주소를 써넣었던 기억이 났다. 근데 이제 와서 어쩌랴, 갑자기 옛 여자한테 전화해서 “야, 회원정보 수정 좀 해주라” 이럴 수도 없는 것을.
사랑할 때는 그 누가 알았던가. 이런 사소한 일들이 내 발목을 잡을 줄. 이별 뒤 오프라인에서 정리해야 할 것들보다 온라인에 뒤엉킨 서로의 흔적을 없애기가 더 어려운 요즘이다. 일촌을 끊고, 커플 다이어리를 접고, 메신저를 차단하고, 메일을 다 삭제해도 어김없이 구석구석에서 그(녀)의 흔적이 불쑥불쑥 나타난다. 아이디를 만들 때부터 닭살커플 티를 냈다면 그 부담은 더 커진다. 모든 아이디를 변경하기란 나이 들수록 어려워지는 법. 컴퓨터 하드디스크 속에서 그(녀)의 흔적을 지우려고 헤매다가 그보다 전 애인의 사진과 마주칠 때면 차라리 웃음이 난다.
다시 상황 속으로. 위 상황들은 어떻게 정리되었을까. 질투의 화신이 된 남친 K는 지현씨에게 그의 군번으로 만든 아이디를 모두 없애라고 얘기했다. 그런데 지현씨, 대체 어디어디에 그 ‘군번’으로 가입을 했는지 기억나지 않는단다. 승기씨는 부인이 잠든 밤 슬그머니 PC에 다가가 일단 해당 메일들을 지우고 그 메일 주소를 차단한 뒤 ‘컴퓨터 부팅 시 메신저 자동 로그인’ 설정까지 취소했다. ‘오나영’표 이메일은 계속 올 테니 앞으로 부디 부인이 이메일에 접근을 못하길 기원할 수밖에. 아, 낭만은 짧고 생활은 길다던가. 누군가가 나 자신처럼 가깝게 느껴진다고 PC까지 섞어가며 진하게 사랑한다면 어쩔 수 없이 그 여운도 길게 남게 되는 법인가 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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