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정재권 한겨레21 편집장 jjk@hani.co.kr
며칠 전 여의도 정치판을 잘 아는 지인이 이메일로 글을 보내왔습니다. 한나라당에서 벌어지고 있는 이명박과 박근혜 두 사람의 각축을 1987년의 김영삼(YS)-김대중(DJ) 다툼과 비교하는 내용입니다.
그는 1987년 대선을 앞두고 야권에서 ‘양김의 전쟁’이 치열하게 벌어진 뒤, 후보 단일화가 결국 실패한 몇 가지 배경을 꼽았습니다. ① 양김씨와 핵심 지지자들의 강한 권력 의지 ② 영·호남이라는 각자 다른 뚜렷한 지지 기반 ③ 약체 여당 후보와의 단일화 실패 때에도 이길 수 있다는 오만 ④ 당내 경선 규정에 대한 합의 실패 등이 그것입니다.
이런 이유 모두가 이명박·박근혜 두 사람의 각축전에 맞아떨어지는 것은 아니지만, 대체로 비슷한 양상이 전개되는 것처럼 보입니다. 특히 게임의 룰인 당내 경선 규정을 놓고 벌이는 이전투구는 진흙탕 싸움을 연상케 할 정도로 격렬하고 아슬아슬합니다. 1987년의 경우 YS와 DJ는 경선 대의원 구성 문제를 놓고 다투다 결국 갈라섰고, 대통령 자리는 노태우에게로 돌아갔습니다.
한나라당 지지율이 워낙 높은 탓인지 이명박·박근혜 두 사람은 당 후보만 되면 대통령 자리는 따놓은 당상이라고 본 듯합니다. 새로운 경선 룰이 불리하다며 ‘경선 불참’을 내비친 박근혜 전 대표나, 끊임없이 룰 변경을 요구한 이명박 전 서울시장이 ‘소아’(小兒)적으로 비칠 만큼 경선 규정에 집착하는 까닭입니다. 하지만 이 전 시장 쪽이 주장한 ‘민심의 올바른 반영’이나, 박 전 대표 쪽이 내세운 ‘민주주의 원칙의 유지’는 속내를 들여다보면 “내가 아니면 안 된다”는 독선과 다름없습니다.
게다가 “차라리 1천 표를 줄 테니 원래 합의된 룰대로 하자”(박근혜)는 주장에 이르면 속된 말로 ‘쇼를 하네’라는 헛웃음마저 쳐집니다. 민의(民意) 자체인 표를 저잣거리의 흥정 대상으로 추락시키고도 부끄러운 줄을 모릅니다. 이런 두 사람의 다툼에서 국민이 요구하는 대통령의 제1 기준인 시대정신이나, 자신을 내던지는 ‘통 큰 정치’를 찾아보기란 불가능합니다.
사적인 얘기지만, 경기도 과천 인근에 있는 한 순대식당을 즐겨 찾은 적이 있습니다. 순대 맛도 일품이려니와 무엇보다 ‘오소리 순대’라는 대표 상품의 이름이 마음에 들었던 탓입니다. ‘오소리를 넣은 순대?’라며 고개를 갸웃거리기 십상인데, 한자말로 ‘오소리’(吾小利·내가 이익을 적게 갖겠다)라는 주인의 풀이에 무릎을 치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이문을 많이 남기는 게 목표인 장사꾼도 이익을 적게 남기겠다고 공언하는 세상입니다. 1987년의 YS와 DJ에게서도 그렇고, 2007년의 이명박과 박근혜에게서도 그렇고, 정치판에서 ‘오소리’의 자세를 확인하기란 참 어려운 일인가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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