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권김현영 동덕여대 강사
영화 에는 돌아가신 아버지의 빚 5억원을 갚으려고 명품을 베끼는 짝퉁 디자이너 여자와 정신장애인 형으로 인해 결혼을 못한 약사 남자가 나온다. 이들이 서로에게 마음이 끌리는 순간, 결혼 못한 남자는 형이 죽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하고, 빚에 지친 여자는 임신한 동생에게 애를 지우라고 한다. 이들에게 사랑은 자신의 인간성을 시험하는 유혹으로 다가온다. 사랑이 가족주의의 규범성에서 벗어나는 건 일견 해방적인 일이지만, 쿨해진 사랑은 이제 타인의 매력을 소유하는 일로 인식하게 된 걸까? 가족이 진 빚, 가족의 정신적 결함(?)이 다른 사람을 만나는 것마저 사치스럽게 하는 사회에서 사랑과 결혼은 이제 아무나와 하느니 아무와도 하지 않는 게 나은 것이 되어간다.
비교할 수 없는 돈과 사람
이 영화에서 고통의 원인으로 나오는 것이 돈과 사람이었다. 하지만 현실에서 이 두 가지 경우의 수는 결코 비교 대상이 될 수 없다. 금융위기 시대 이후 친구도 친척도 빚 앞에서는 소용없다는 걸 알게 된 사람이라면 빚 5억원이 얼마나 무서운 것인지 안다. 보증만큼은 절대로 해줘서는 안 된다는 충고들은 친척과 친구들이 빚이나 보증 앞에서 배신하는 일을 겪은 사람들의 경험에서 우러나온 이야기들이다. 어떤 빚쟁이와의 관계도 그 관계의 본질이 돈에 있는 한 인간적인 소통은 가능하지 않다.
반면, 정신장애인과 함께 사는 것은 빚쟁이들과의 관계와는 다르다. 우리 모두 사람들과의 잘 풀리지 않는 관계에 고통스러워하지만 관계 안에서 다른 기쁨을 누리면서 살기도 한다. 특히 연애관계의 경우, 상대가 주는 기쁨만큼이나 상대가 주는 고통도 있다. 가족도 마찬가지이다. 모든 친밀한 관계들 안에는 고통스러운 공존을 위한 노력들이 있다. 정신장애인 가족들 역시 이들과의 관계에서 다른 친밀한 관계가 비슷하게, 혹은 더 깊은 감정적 교류를 하고 살아간다.
빚과 정신장애인, 이 둘이 비교의 대상에 오른 것 자체가 정신장애에 대한 무지와 편견에서 비롯된다. 정신장애인들은 결코 특별히 위험한 존재가 아니다. 물론 이들은 생각하는 방식도 다르고 행동하는 패턴도 예측하기 어렵다. 그러나 그런 차이를 견디지 못하는 회색도시에서는 정신장애인을 병원이나 시설에 가둬두고 이들에 대한 공포와 무지를 생산해낸다. 예전 시골 마을에서는 동네마다 정신장애인이 꼭 한둘씩은 있었다. 그러나 도시의 정신장애인들은 찻길과 도로, 공원처럼 익명의 공공장소에서 가끔 발견될 뿐, 가족과 친구가 있는 타인과 연결된 사람으로 이해되지 않는다.
일본 정신장애인들의 공동체 ‘베델의 집’에 대한 이야기의 저자 사이토 미치오(, 삼인 펴냄)는 문제를 해결하지 않고서도 함께 살아갈 방법을 찾았기 때문에 이 공동체가 유지되었다고 말한다. 이들은 세 끼 밥보다 회의를 중요시하는데, 이 회의는 두서없고 효율성 없고 결과도 없다. 하지만 이렇게 소용없어 보이는 회의를 계속하는 이유는 자기 자신에 대해서 잘 모르는데 상대에 대해서도 자신의 기준을 강요할 수 없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대안공동체이자 사회 위기의 치유자
어쩌면 장애인 가족, 이주 여성들의 국제결혼, 한부모 가정, 비혼모 가정 등 차이를 낙인으로 지고 사는 ‘다른’ 가족들이야말로 배타적이고 계산적인 관계를 넘어 사람들 간의 소통을 제대로 알고 노력해가는 대안공동체 그 자체일지도 모르겠다. 그렇다면 이들을 ‘특수 가족’으로 분류해서 지원대상으로만 삼을 게 아니라(그나마 지원 체계도 거의 없지만) 이들이야말로 우리 사회에 놓인 관계의 위기를 진단하는 치유자가 될 수 있다고 생각하는 건 어떨까. 영화 보고 이런저런 생각이 많이 들었다. 사랑과 관계에 대해 현실적이고 구체적인 생각을 하게 하는 이런 영화야말로 어떤 멜로 영화보다 ‘진짜’ 사랑에 대해 말하는 영화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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