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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나나’와 ‘샤나나’의 차이

등록 2006-06-16 00:00 수정 2020-05-03 04:24

▣ 고경태 편집장 k21@hani.co.kr

종로로 갈까요 영동으로 갈까요, 차라리 청량리로 떠날까요~.
설운도의 이라는 노랫가사입니다. 잃어버린 사랑을 찾아 어디로 가야 할지 헤매는 애절함이 담겨 있습니다. 뜬금없이 이 노래가 생각난 것은 국제분쟁 전문기자 정문태씨 덕분입니다. 그가 저에게 이런 걸 물어보았던 겁니다. “도쿄로 갈까요 딜리로 갈까요, 차라리 욕야카르타로 떠날까요.”
5월27일, 토요일 오후였습니다. 집에서 쉬고 있는데 휴대전화가 울렸습니다. 정문태씨였습니다. “지금 방콕 공항인데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겠다”고 했습니다. 그의 집은 타이 북부 치앙마이입니다.

개인적인 용무로 도쿄에 가기 위해 방콕 공항을 경유하는 중이었습니다. 그는 공항 로비 TV에서 본 인도네시아 지진 소식을 전해주었습니다. 5천 명 넘게 숨진 듯한데, 그곳을 취재해야 하지 않겠느냐는 거였습니다. 무리가 되더라도 도쿄행을 접을 용의가 있다고 했습니다. 저는 짧게 반문했습니다. “그럼 동티모르는?” 그 전날 밤 내전이 진행 중이던 딜리 르포를 할지 말지 의논했기 때문입니다. 마감 일정에 쫓겨 아무런 확답을 안 줬더니, 그냥 예정돼 있던 도쿄로 가려다가 갑자기 인도네시아 지진에 부닥친 겁니다.

저는 동티모르행을 종용했습니다. 똑같은 비극의 현장이지만, 뉴스 가치를 냉정하게 따질 때 그쪽이 우선이라는 판단이 섰습니다. 그는 결국 잠시의 망설임을 거친 뒤 그쪽으로 마음을 굳혔습니다. 분쟁전문 기자가 현장의 유혹을 포기하기란 쉽지 않습니다. 고양이가 생선 곁을 지나칠 수 없는 이치와 같다면 너무 심한 비유일까요? 그는 그날 밤 도쿄행 비행기표를 물렸습니다.

은 이번호에서 ‘동티모르 단독보도’표지를 그 결과물로 내놓습니다. 하지만 마음 한켠이 씁쓸하고 아리기만 합니다. 너무나도 생경한 ‘샤나나 구스망’ 대통령과 만나게 되는 탓입니다. 마치 ‘사나나 구스마오’의 한글 표기가 ‘샤나나 구스망’으로 바뀐 것 이상 낯설어 보입니다. 샤나나는 동티모르 독립의 전설적 지도자에서 오스트레일리아군에 나라를 팔아먹는 역적의 하나로 몰리는 듯 합니다.

7년 전 표지에 실린 샤나나를 기억합니다. 99년 9월16일치로 발행된 제275호(사진)였습니다. 인도네시아의 지배 체제가 종식되는 과정에서 반독립파가 시민들을 무차별 학살할 때의 일입니다. 당시 자카르타 살렘바 감옥 특별감호소에 있던 그는 정문태 기자와 단독 인터뷰를 했습니다. 그는 인터뷰 끄트머리에 동티모르 독립을 앞둔 지도자의 감격을 눈물로 전했습니다. “가난하고 작은… 조… 국이지만… 우리에게는 모든… 것이다.”

뭔가 우리가 모르는 오해가 있기를 진심으로 바랍니다. 혼란스런 신생독립국 지도자의 불가항력적인 선택이었다고 변명해주고 싶기까지 합니다. 반란군의 이탈과 공격에 놀라 여러나라의 외국군에 SOS를 쳐야 하는 동티모르의 슬픈 현실. 아, 다시 설운도의 뽕짝 노래가 역설적으로 떠오릅니다. “호주를 부를까요, 말레이시아 부를까요, 차라리 포르투갈 부를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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