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임경선 칼럼니스트
자랑은 아니지만 선천적 신경과민성인 나는 작은 불쾌감에 민감하게 반응하는 편이다. 엘리베이터만 탔다 하면 떠드는 분들에겐 조용히 좀 해달라고 부탁하게 되고, 아파트 이웃집 어린이들의 맹랑한 어투는 타이르게 되고, 정체불명의 반상회비 항목을 찾아내면 발끈해서 경비실에 확인했다. 자가운전을 하면서부터 특히 나는 지하철 내의 소음에 과민해졌다.
나는 왜 참지 못하는가
당연지사 기본 잔소리 대상은 시끄럽게 전화 통화를 하는 분들이다. 만원 전철에서 + 귀 바로 뒤에서 들리며 + 5분 이상 + 별 긴급 이슈도 아닌 내용으로 통화가 지속되면 인내심의 알람이 울린다.
“죄송한데요(죄송할 건 없지만) 전화 통화 좀 자제해주시면 안 될까요?” 습관처럼 부탁한다. 반응 중 10%는 “앗, 예” 하면서 바로 대화를 정리하고 폴더를 닫는다. 50%는 지고 싶지 않은지 2분 정도 더 통화하다 끊는다. 40%는 일부러 더 큰 소리로 떠든다.
한편, 하느님의 선택을 받은 그분들에게도 마이크가 필요 없다. 까랑까랑한 목소리 때문에 고막이 찢어질 지경이다. 이 칸의 승객 모두 자칫하면 지옥행이라고? 또 들이댈 수밖에 없다. “저도 교회를 다니는데(웬 비굴한 거짓부렁이란 말인가) 비좁은 공공장소에서 그렇게 큰 소리로 포교활동을 하시면 듣는 사람 괴롭거든요. 제발 자제해주세요!” 내 목소리도 나름 컸던 터라 구경났다. 하지만 철저히 무시당했다. 지나가는 개가 웃더라도 할 말은 하고 살아야 했다.
CD 전집 세일즈맨들도 시비 대상이다. 그런데 이상하다. 이때부터 나의 맹목적인 씩씩함(혹은 뻔뻔함)이 슬슬 꼬리를 내리게 되더라. 추억의
한번은 술 취한 60대 남성과 피곤에 절어 졸던 20대 직장여성이 좌석 양보를 둘러싼 말다툼을 벌인 적이 있었다. 긴 정황 설명은 생략하나 어느 면에서 보나 20대 여자의 언동이 옳았다. 상대는 ‘아버지뻘’ 연장자라는 이유 하나로 취기에 큰소리치며 “요즘 젊은 년들”을 개탄했다. 속이 부글부글 끓어올랐지만 땀나는 손만 쥐락펴락하다가 끼어들지도 못하고 내렸다. 용기를 기어코 못 낸 자신이 참 싫었다.
아예 무슨 말을 할 수 없는 상황도 있다. 기괴하고 신경을 거스르는 소음으로 구걸을 하는 시각장애인 앞에서만은 나는 처참히 과묵해진다. 솔직히 말하면 나는 그들이 일부러 주의를 환기하기 위해 트는 그 야릇한 전자음이 소름 끼치도록 싫다. 하지만 나는 그 순간만큼은 철저히 KO패다. 가만히 어서 지나가주기를 바라며 참아내는 수밖에 없다. 점차 소음공해의 불쾌함을 넘어 마음 깊숙이 다른 이유로 불편해짐을 느낀다. 명절 때 몸이 피곤한 것보다 마음이 언짢아서 더 고통스러운 것처럼.
제발, 제발 소리 좀 줄여주시죠
‘짜증나니까 혹은 불쌍하니까 피하고 외면하면 그만이지. 세 정거장만 더 가면 되니까 그사이 음악을 듣거나 책을 보거나 다른 생각을 하면서 안 들리는 척, 안 보이는 척하는 게 나아. 가진 자가 그 정도는 눈감아줘야지. 야, 우리나라는 원래 선진국이 아냐. 뭘 바라? 네가 너무 예민한 거야. 그래도 요새 사람들, 에스컬레이터 한 줄 서기는 곧잘 하잖아!’ 어설픈 자기 암시를 해봐도, 똑같이 공공장소에서 의도적인 소음을 내는 사람들인데
유독 일부 사람들에게만 차별적으로 눈감아주는(?) 스스로에게 화가 치밀었다. 하지 말라는 것도 아니고 소리 좀 낮춰달라는 것인데. ‘소리 좀 줄여주시죠’가 생존권 침해거나 사회적 약자를 괴롭히는 정치적으로 올바르지 못한 행위는 아닐 텐데 말이다. 사회적 약자는 공공장소에서 민폐를 끼쳐도 어디까지 묵인해줘야 그것이 자비로움이자 양심으로 수긍될까. 아니 애초에 이럴 경우, 약자는 밀폐된 공공장소에서 필요 이상으로 불쾌한 인내심을 가져야만 하는 우리들 아닌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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