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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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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우 아 유, 미국

등록 2006-04-19 00:00 수정 2020-05-02 04:24

미국 땅을 밟은 지 열흘. 10여 년 전 한참, 1년여 전 또 잠깐 들른 일이 있어 그리 낯설지는 않다. 버벅 버벅 버벅, 서투른 영어 강의도 개강하고 1주일이 지나니 벌써 ‘까짓, 말만 통하면 되지’ 하는 배짱이 생긴다. 나이 드는 게 꼭 나쁘지만은 않은 것이, 주눅 드는 일이 조금씩 줄어들기 때문이다. 10여 년 전엔 백인들 앞에서도 곧잘 움츠러들었던 것 같은데, 이젠 그저 그렇다. 마, 무시할 테면 하고. 필요한 것 알아낼 때까진 나도 어차피 물러서지 않을 테니까. 거리에서건 버스에서건 음식점에서건. 영어? 이 정도면 수준급이지 뭐. 으쓱.

10년 전이나 지금이나, 모든 게 그대로

세월이 헛되지 않아, 다행히 나는 많이 뻔뻔스러워졌는데, 미국이란 나라는 희한하게도 그대로다. 속사정이야 알 길 없으되 겉으로 보기엔 그렇다. 10여 년 전 꽤 신기했던 공중화장실 변기 커버며 종이 타월이며, 고속도로의 카풀 차선이며, 쓰레기장의 재활용통까지, 어쩌면 그렇게 꼭 그대로인지 경이로울 정도다. 10년 사이 한국에서야 바뀐 게 좀 많은가.

화장실은 놀랍도록 깨끗해졌고, 고속도로는 물론 시내에도 버스 전용차선이 생겼으며, 무턱대고 버리던 쓰레기를 꼼꼼히 분류하는 버릇이 붙었다. 음식 유행이 바뀌고 각종 브랜드가 명멸하는 한편 거리 풍경도 완전히 바뀌었다. 인수·합병의 바람 속에서 기업들도 달라졌고, 평생 직장을 기약했던 사람들은 이제 투잡을 꿈꾼다.

좋건 나쁘건 간에, 한국은 여전히 역동적이다. 6개월만 떠나 있다 돌아오면 낯선 풍경이 꼭 하나둘 생겨나는 데서 엿볼 수 있듯. 이 역동성에서 낙마하기 십상이란 게 문제긴 하지만, 변화가 갖는 힘이 분명히 있다. 국제통화기금(IMF) 사태 이후 계급 재생산 체계가 정착해버렸다는 위기의식이 있지만, 들썩들썩, 어제와 오늘이 다르고 오늘이 내일과 다른 매일매일을 보노라면 어디선가 덜커덩, 또 다른 세계를 만날 것 같다. 지치지 않고 나보다 더 젊은 사람을 골똘히 바라보곤 하는 건 그 때문이다. 새로운 에너지가, 나보단 저쪽에 더 많으려니. 저렇게 만사 시들한 듯 보여도 언젠가 저들도 목소리를 높이려니. 어디선지 다른 미래를 꿈꾸려니. 생각을 잇다 보면 새로운 세대, 새로운 변화가 나를 완전히 추월해버리기를 열망할 때조차 없지 않다. 세상이여, 어쨌든 쉬지 말고 움직여라!

근대의 속도에 중독된 탓인지 모르겠다. 요 몇 달, 고즈넉이 쉬는 것도 좋겠다는 생각이 종종 들지만, 그래도 진보에 대한― 적어도 변화에 대한 열망은 거의 무의식에 가깝다. 역사라는 시나리오 없이 어떻게 살 수 있을지, 어떻게 ‘제대로’ 살 수 있을지, 그 질문은 아직 버겁다. 그만큼 1960년대 이후 미국인들이 어떻게 살아온 건지 고개를 갸우뚱하게 될 때가 많다. 1960년대에 벌써 지하주차장 난방 시설을 갖추기 시작했다는 이 나라에서, 1960년대의 인권운동과 반전운동 이후 정치적 격변을 경험하지 않은 이 나라에서, 대체 사람들은 어떻게 살고 있었을까. 반미가 떠오르기 전에 그런 궁금증이 훨씬 절박하게 떠오른다. 종이나 플라스틱을 쓰레기통에 버리거나 싱크대의 음식물 분쇄기를 사용할 때 이렇게 마음이 불편해졌건만. 장바구니를 내밀기 전에 벌써 비닐봉지에 물건을 담아 건네주는 가게에서도 자꾸 손길이 멈칫거려지건만. 풍요와 낭비 속에서 이 사람들은 벌써 지치지 않았을까?

한국이 미국에 도달한다면…

반이민법 통과를 앞두고 100만 명이 모였다는 소문이 있었지만, 열기는 쉽게 식어버린 모양이다. 잡종성이 강한 이곳 로스앤젤레스에서도 같은 인종은 끼리끼리 모여다니건만, 대체로들 그냥 그렇게 살고 있는 모양이다. 영어가 모국어인 사람보다 스페인어를 모국어로 배운 사람이 더 많아졌다고 들었건만, 세상은 별 변화 없이 돌아가는 모양이다. 이번에 와서 보니 미국의 풍요는 한결 만만해졌고 어딘가 누추한 인상을 주기조차 하지만, 그래도 사람들은 그럭저럭 풍요와 낭비에 만성이 돼버린 모양이다. 아무것도 약속하지 않는 아메리카식 풍요 속에서, 나는 지금 한국과의 거리를 재보려 애쓰고 있다. 한국이 결코 그 자리에 도달할 수 없다는 풍문은 정말일까? 만약 도달한다면, 그것은 다행일까 불행일까. 한국인으로서의 몫을 빼면 내게 주어진 삶의 잉여는 얼마만 한 몫일까. 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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