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정재승 한국과학기술원 교수·바이오시스템학과
어느 날 하나님은 모세를 불러 “좋은 소식과 나쁜 소식이 있는데 어떤 것부터 듣겠냐”고 물었다.
“좋은 소식을 먼저 들려주십시오.” 모세가 말했다.
“나는 홍해를 갈라 너와 네 백성을 이집트에서 탈출시키겠노라.” 그런 뒤 하나님은 이렇게 덧붙였다. “그리고 이집트 군대가 쫓아왔을 때 다시 그 물로 바다를 채우겠노라.”
모세가 대답했다. “환상적입니다. 그렇다면 나쁜 소식은 무엇입니까?”
“너는 그에 대한 환경영향평가 보고서를 작성해야 할 것이다.”
하나님의 나쁜 소식
과학자들이 좋아하는 이 농담 속의 뼈는 ‘환경영향평가가 그만큼 중요하면서도 어렵다’는 것이다. 인류는 스페인의 ‘알타미라 동굴’과 프랑스 몽티냐크의 ‘라스코 동굴’에 벽화를 그렸던 구석기 시대부터 2006년 오늘까지, 꾸준히 지속적으로 쉬지 않고 환경을 파괴하며 살아왔다. 인간이라는 바이러스는 자신의 생명을 지키기 위해, 그리고 좀더 편하고 행복하게 살기 위해 ‘자연 파괴’라는 대가를 치르며 지구를 점점 병들게 해왔다.
우리가 자신을 ‘자연의 일부’라고 심각하게 생각하기 시작한 것은 그리 오래된 일이 아니다. 우리가 자연을 개발하기 전에 그것이 환경에 미치는 영향을 따지기 시작한 것은 불과 40년 전부터이다. 다시 말해 40년 전부터 ‘우리 지구는 더 이상 방치했다가는 사망할지 모르는, 지병이 아니라 불치병을 앓고 있다’는 판단이 들었다는 얘기다. 환경을 전혀 파괴하지 않을 순 없겠지만 친환경적인 개발을 통해 (그것이 가능한지는 잘 모르겠지만!) 우리의 발전이 지속 가능하도록 노력하자고 생각하게 된 지 얼마 안 됐지만, 오히려 우리는 ‘10년이면 강산이 변한다’는 속담을 5년으로 줄여야 할지 말지를 고민해야 할 심각한 세상에 살고 있다.
3월16일, 월드베이스볼클래식(WBC)에서 우리나라 국가대표 야구팀이 일본을 2 대 1로 짜릿하게 이기던 날, 대법원은 15년간 지속돼온 새만금 간척사업 논란에 대한 판결을 내렸다. 9시 TV 뉴스가 30분 넘게 야구 소식을 전하고 나서야 새만금 판결 소식이 공중파를 타고 세상에 전해졌다. 대법원은 새만금 간척사업을 중단할 심각한 이유가 없다며, 계속 개발해도 좋다는 판결을 내린 것이다.
판결문을 훑어보니, 공공사업이 무효화되기 위해서는 사업 시행으로 얻게 되는 이익보다 ‘치러야 할 희생’이 훨씬 커야 하는데, 새만금 간척사업은 사업을 중단할 만큼 심각한 희생이 지불되지 않는 것으로 판단돼 이같은 판결을 내렸다고 적혀 있다.
대법원은 충분한 자료를 바탕으로 심사숙고해서 판단했을 테니 판결에 딴죽을 걸 생각은 없다. 그러나 대법원의 판결이 어떻든, 정부의 비상식적인 업무 추진이 주민과 환경단체들로 하여금 법에 호소할 수밖에 없게 된 현실은 안타까울 뿐이다. 개발 가치와 환경 가치를 비교하는 일을 사법부의 판단으로 돌려서는 안 될 일이다. 개발을 하기에 앞서 개발의 목적과 기대 효과, 예상되는 부작용 등을 과학적으로 꼼꼼히 따져보는 일은 환경전문가들이 해야 할 일이다. 환경 문제에 대해 대통령에게 조언하는 전문가 집단인 지속가능발전위원회의 존재 이유도 바로 여기에 있다.
사법부에 전적으로 의지해야 하나
환경전문가는 정치적인 고려나 현실적 타협을 경계하며 충분히 합리적인 결과를 도출하도록 노력하고, 시민들은 그들의 노력을 전적으로 신뢰하는 사회에 우리는 언제쯤 도달할 수 있을까?
아마도 환경단체들은 그동안 주장해오던 ‘새만금 갯벌 보존운동’은 이제 어렵게 됐지만, 새만금 간척지가 환경친화적으로 개발될 수 있도록 노력해야 하는 새로운 임무를 시민들로부터 부여받게 된 것 같다. 어떻게 하면 환경을 덜 파괴하면서 새만금 갯벌을 개발할 수 있을까? 비로 이 질문에서부터 새만금 논쟁은 새롭게 시작돼야 한다. 앞으로도 개발과 환경보호 사이에서 이익이 충돌할 때마다 법원의 판단에 전적으로 의지할까봐 걱정이 앞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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