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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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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족에 대한 오해와 혐오, 모두가 그렇진 않을거야

이금이 작가가 재구성한 ‘평범하고 싶은’ 조선족 청소년 정애의 삶
등록 2024-12-20 20:39 수정 2024-12-23 17:13
일러스트레이션 김대중

일러스트레이션 김대중


한겨레21의 연속 기획 ‘동료시민 이주민’의 글을 쓸 차례가 됐다. 내게 주어진 주제는 ‘디지털 범죄 피해’였지만 피해 이주민을 직접 만날 수는 없었다. 삶의 기반이 취약한 이주민으로서 디지털범죄와 얽히며 받은 상처를 공개적으로 드러내기는 쉽지 않았을 것이다. 한겨레21에서 차선책으로 소개해준 분은 조선족 출신의 전춘화 소설가였다. 이 연속 기획에서 먼저 글을 쓴 적이 있는 전춘화 작가는 자신의 주위 사람들이 겪은 디지털범죄 피해에 관한 사례들을 들려줬다. 그 사례들은 한국 국민이 일상적으로 접하는 사건들과 크게 다를 바 없었다. 전춘화 작가는 한국에서 살아가는 조선족의 삶, 한국인과 조선족이 서로에게 가진 뿌리 깊은 오해와 그로 인한 갈등이나 편견에 대한 이야기를 더 긴 시간 해주었다. 그의 이야기를 듣는 동안 조선족 청소년인 정애의 삶이 내 안에서 펼쳐지기 시작했다.

좋아하는 친구들과 첫 조별 과제

1학년 1학기 말 사회 시간의 조별 수행평가 주제는 ‘디지털범죄’였다. 고등학교에 입학해서 처음 하는 조별 과제였다. 선생님이 예시로 든 디지털범죄 유형으로는 사이버도박, 허위 영상물, 성범죄, 금융범죄 등이 있었다. 그중에서 한 가지를 택해 피해 사례와 예방 방법을 조사한 뒤 발표하는 것이다.

번호순으로 네 명씩 조를 만들라는 선생님 말씀에 자기 조를 찾는 아이들로 교실 안이 소란스러웠다. 15번이 얼마 전 전학 간 덕분에 정애는 영서, 찬우, 승훈과 한 조가 됐다. 그 사실을 알았을 때 정애는 너무 좋아 비명을 지를 뻔했다. 영서는 단짝 친구였고, 찬우는 정애가 좋아하는 아이였다. 승훈도 무던한 성격이어서 함께 무언가를 하기에 편했다. 정애는 이제껏 숨어 있던 행운이 한꺼번에 찾아온 것 같았다.

같은 조끼리 모여 앉은 아이들은 우선 조장부터 정했다. 타의 반 자의 반 조장이 된 영서가 제비뽑기로 금융범죄를 뽑았다. 다음은 주제에 대한 방향성과 각자 맡을 일을 정할 차례였다. 영서가 조원들을 둘러보며 물었다.

“너희들은 디지털 금융범죄 하면 뭐가 생각나?”

정애는 영서에겐 미안하지만 옆에 있는 찬우 때문에 아무것도 생각나지 않았다. 정애가 별처럼 멀리 있는 아이돌이 아닌 주위의 남자애를 좋아하는 건 태어나서 처음이었다. 최애 아이돌에게는 마음껏 사랑을 전했지만 찬우한테는 감정을 표현하지 못했다. 정애는 자기 심장 뛰는 소리가 찬우에게 들릴까봐 걱정됐다.

영서가 웃으며 책상 아래서 발을 툭 건드렸다. 정신 차리라는 뜻이었다. 정애는 빨개진 얼굴로 조별 과제 이야기에 집중하려 애썼다.

“보이스피싱.”

승훈이 영서의 물음에 대답했다.

“그거 좋겠다. 보이스피싱은 흔해서 사례나 예방법 같은 거 찾기도 쉬울 거야.”

찬우가 찬성했다.

“맞아. 우리 엄마도 내 휴대폰 고장 났다는 문자 받고 신분증 사본 보내줄 뻔했대.”

영서도 맞장구쳤다. 그 문자는 정애도 받은 적이 있었다.

“우리 할아버지는 진짜로 이천만원 넘게 피해 봄.”

가장 먼저 보이스피싱 이야기를 꺼낸 승훈이 말했다.

“뭐? 어쩌다?”

영서가 놀라 물었다. 정애도 너무 큰 액수에 놀라 승훈을 바라봤다. 승훈이 목소리를 가다듬더니 우스꽝스러운 어조로 말했다.

“양태식님 통장 명의가 도용됐으니 예금한 돈을 다른 통장으로 옮겨야 함다, 란 보이스피싱에 낚이신 거지.”

 

친구들이 흉내 낸 연길 말씨

정애는 가슴이 내려앉았다. 승훈이 어설프게 흉내 낸 건 중국 연길(옌지) 말씨였다. 정애가 놀란 가슴을 수습할 새도 없이 찬우가 입을 열었다.

“그렇게 하는 게 아니지. 따르릉따르릉, 여보세요? 유정애씨 되심까?”

정애는 찬우 입에서 나온 자기 이름보다 그럴듯한 연길 말씨에 더 놀랐다. 승훈이 어설프게 흉내 내던 말투와는 수준이 달랐다. 혹시 내가 조선족인 걸 안 걸까? 설마, 아닐 거야. 그럼 왜 굳이 내 이름을 말한 거지? 정애는 머릿속이 혼란스러웠다. 찬우의 말은 계속 이어졌다.

“저는 중앙지검 형사1부의 안찬우 사무관임다. 유정애씨 지금까지 한마디도 안 한 거 암까? 조별 과제인데 그러면 곤란함다.”

찬우의 능청스러운 장난에 영서와 승훈은 책상을 두드리며 웃었다. 어찌나 크게 웃었는지 다른 조 애들까지 쳐다봤을 정도였다. 아, 찬우도 조선족인가 봐! 문득 떠오르는 생각에 정애의 가슴은 같은 조가 된 걸 알았을 때보다 더 세차게 뛰었다.

“양찬우, 너 어떻게 그렇게 잘해?”

영서가 겨우 웃음을 그치며 물었다. 정애의 가슴은 거의 폭발할 지경이었다. 찬우가 자기도 조선족이라고 하면 나는 어떻게 해야 하지? 정애는 자신도 모르게 찬우를 뚫어지라 보았다. 찬우가 빙긋이 웃으며 대답했다.

“다 이유가 있지. 어릴 때 연변 이모님이 가사도우미였거든. 3년 넘게 같이 살았는데 내가 자꾸 사투리를 따라 해서 아빠가 잘랐어. 중학교 때까지 장기자랑 때 많이 했는데 고등학교 와서는 첨 해본다.”

찬우의 설명이 정애 심장을 아프게 찔렀다.

“그랬구나. 암튼 넘 재밌다. 발표할 때 보이스피싱 상황을 콩트로 시작하는 거 어때?”

영서의 의견에 찬우와 승훈이 찬성했다. 정애는 바퀴벌레라도 좋으니 다른 무언가로 변해 자리에서 사라지고 싶다는 생각만 들었다. 영서가 또 책상 아래서 발을 툭 건드렸다. 정애가 영서를 바라보자 한쪽 눈을 찡긋하더니 말했다.

“콩트는 찬우랑 정애랑 하는 거 어때?”

둘 사이를 밀어주려는 거였다. 정애는 화들짝 놀라서 다급하게 말했다.

“아, 아니! 나는 피, 피피티 만들게.”

조별 과제 때 서로 미루는 게 피피티 담당이었다.

“와, 나랑 콩트 하는 게 그렇게 싫냐? 이거 마상인데.”

찬우가 과장스레 가슴을 움켜쥐는 모습에 정애는 시선을 떨구었다. 내가, 지금 자신들이 웃으며 흉내 내는 조선족인 걸 안다면. 그럼 찬우는 어떤 얼굴을 할까. 절친인 영서는, 승훈이는, 반 아이들은…. 정애가 한국에 와서 5년 만에 처음 누리는 평범한 일상은 조선족이라는 사실을 숨긴 덕에 얻은 것이었다.

수업이 끝나는 종이 울렸다. 정애네 조는 단체 메신저 방을 만들어 계속 의논하기로 했다.

“유정애, 너 찬우가 그렇게 좋아? 완전 굳어서는 말도 제대로 못하고….” 영서가 놀리듯 말했다. 그런 것이라면 얼마나 좋을까. 정애는 자리에서 일어서다 다리 힘이 풀려 넘어질 뻔했다.

 

볼펜 자루 입에 물고 말씨 고친 이유는…

정애의 고향은 연길이었다. 정애 아빠는 동생 정철이 두 돌도 되기 전에 돌아가셨다. 엄마가 돈을 벌러 한국으로 떠난 건 정애가 초등학교 1학년 때였다. 정애와 정철은 할머니와 살았다. 엄마는 찬우가 말하던 연변 이모로 불리며 정애 남매 대신 한국 아이들을 돌봤다. 엄마는 한국에 가기 위해 졌던 빚을 갚으면 정애 남매를 초청할 거라고 했다. 정애는 그날을 기다리며 한국 드라마를 보고 한국 노래를 들으며 한국어 공부를 열심히 했다. 할머니가 중국말을 몰라 집에서는 무조건 한국말을 써야 하는 게 큰 도움이 됐다.

정애 남매는 정애가 5학년, 정철이 2학년을 마치고 한국에 왔다.

“엄마 소원은 너희들 대학까지 공부시키는 거야. 몸이 부서지는 한이 있어도 뒷바라지해줄 테니까 열심히 공부해야 한다.”

연길 학교에서 공부를 잘했던 정애는 한국 학교에 대한 두려움보다는 설렘과 자신감이 더 컸다. 엄마와 살게 된 게 좋아 단칸방도, 바쁜 엄마 대신 동생을 돌봐야 하는 것도 힘들지 않았다. 하지만 학교생활은 만만치 않았다. 연길에 살 때 정애는 자신이 조선족이란 사실에 자부심을 가졌다. 선생님들이 조선족은 자치구에 종합대학교를 가지고 있으며, 자식을 가르치려는 부모들의 열성 덕분에 문맹률이 가장 낮은 민족이라고 가르쳐주었다. 하지만 한국 학교에서 조선족은 무시와 차별, 혐오의 대상이었다.

“너는 중국 사람이야? 한국 사람이야?” “한국이랑 중국이랑 축구 하면 어느 편 응원할 거야?” 같은 질문은 애교 수준이었다. 아이들은 조선족은 싸움 나면 도끼부터 휘두른다느니 뉴스에 나오는 강력 범죄는 모두 조선족들 짓이라느니 하며 정애를 놀리거나 괴롭혔다. 여러 나라에서 온 이주민들이 사는 동네였는데도 사건·사고가 일어나면 무조건 조선족을 의심하곤 했다.

처음엔 왜 그러는지 몰랐다. 정애는 시간이 지나면서 한국 개그 프로그램이나 드라마, 영화 등에서 조선족을 보이스피싱 사기꾼, 서슴없이 살인을 저지르는 흉악범 등으로 그린다는 걸 알게 됐다. 유튜브에서 조선족에 대한 혐오와 증오로 가득 찬 영상을 봤을 때는 너무 무서워서 덜덜 떨었다.

정애가 봐온 조선족 중에는 그렇게 나쁜 사람이 없었다. 이웃과 싸우기도 하고 잘못을 저지르기도 하지만 그건 어느 나라 사람이나 마찬가지였다. 물론 심한 범죄를 저지르는 조선족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모든 조선족을 범죄자 취급하는 건 억울했다. 속에서 온갖 감정이 소용돌이쳤지만 정애는 마음을 털어놓을 친구도, 어른도 없었다. 정철은 하루가 멀다 하고 아이들과 싸우고 들어왔다. 정애는 동생 때문에 속상해하는 엄마에게 차마 힘들다는 이야기를 할 수 없었다. 혼자 상처를 삭이던 정애는 인터넷에서 조선족에 대한 오해와 편견을 바로잡는 내용의 칼럼을 읽곤 더할 수 없이 큰 위로를 받았다. 정애는 그 칼럼을 프린트해서 일기장에 끼워놓고 힘들 때마다 읽었다.

엄마는 중학교에 올라가는 정철을 위해 이사를 결정했다. 정철이 조선족인 줄 모르는 곳에 다니면 좀 낫지 않을까 하는 기대 때문이었다. 정애보다 어린 나이에 한국에 온 정철은 연변 말씨를 거의 쓰지 않았다. 정애는 볼펜 자루를 입에 물고 연습해서 말씨를 고쳤다. 가족들과 있을 때도 연변 말씨를 쓰지 않으려고 노력했다.

정애는 사회 시간 전까지만 해도 여느 아이들과 다를 것 없는 평범한 학교생활에 만족하고 있었다. 심지어는 같은 반 남자애를 좋아하는 것까지도 보통 고등학생의 모습인 것 같아 마음에 들었다. 그런 평범한 일상에 갑자기 균열이 생겼다. 정애는 사회 시간 이후로 내내 살얼음판 위에 서 있는 것처럼 조마조마했다. 야자(야간자율학습) 시간에도 공부가 되지 않았다. 당장에라도 누군가가 유정애는 조선족이다, 라고 외칠 것만 같았다.

‘감쪽같이 속이다니. 이제 보니 너도 보이스피싱범들처럼 사기꾼이었구나.’

영서가 실망한 얼굴로 돌아서는 모습이 그려졌다.

야자가 끝나는 시간에 맞춰 평소처럼 영서에게 메시지가 왔다. 학원에 다니는 영서는 아직 수업이 한 시간 더 남아 있었다. 영서와 메시지를 주고받는데 코끝이 찡했다. 그리고 이런 일상적인 삶을 잃고 싶지 않은 마음이 더 간절해졌다. 그래. 그냥 지금처럼 지내면 돼. 말하지 않으면 아무도 내가 조선족인 줄 모를 거야. 정애는 마음을 다잡았다.

집에 와서 씻고 방으로 들어오니 조별 과제 방에 메시지가 여러 개 와 있었다. 승훈이 금융범죄 사례라면서 올린 보이스피싱 영상들이었다. 몇몇 영상에는 조선족에 대한 오해와 혐오, 조롱이 담겨 있었다. 영서가 댓글에 ‘ㅋㅋㅋ’라고 달았다. 정애가 그 댓글에 순간적으로 느낀 감정은 서운함보다는 뭔지 모를 미안함이었다.

 

영서와의 대화창을 열었다

영서는 한국에 와서 5년 만에 처음 생긴 친구였다. 학년 초 그림자처럼 조용히 있던 정애에게 먼저 말을 걸고 손을 내밀어준 아이였다. 그 덕분에 그토록 바라던 평범한 학교생활을 할 수 있었다. 정애는 어떨 땐 가족보다 더 가깝게 여겨지는 친구에게 자신은 아무런 노력도 하지 않았음을 깨달았다. 조선족임을 들키지 않으려고 애썼던 걸 진정한 노력이라고 할 수는 없었다. 몰라서 하는 잘못을 모르는 척하는 것도 친구에 대한 예의가 아니었다. 숨기려고만 했던 자신 또한 한국 사람들에게 선입견이나 오해를 품고 있는 건지도 몰랐다. 조선족이 다 범죄자가 아니듯이 한국 사람 전부가 조선족을 혐오하고 차별하지는 않을 것이다. 따지고 보면 정애를 위로해준 칼럼을 쓴 이도, 정애에게 또래다운 일상을 찾아준 영서도 한국 사람이었다.

생각이 넓어지자 용기도 조금 더 솟았다. 영서에게 말하고 나면 다른 사람에게 밝히는 것도 조금은 더 쉬워지겠지. 다른 사람이라고 할 때 떠오른 얼굴은 찬우였다. 정애는 심호흡한 뒤 휴대폰을 들어 영서와의 대화창을 열었다. <끝>

이금이 작가

이금이 작가

이금이 작가


* 국가인권위원회와 공동으로 기획한 ‘동료시민 이주민’의 연재를 마칩니다. 필자로 참여해주신 소설가들과 연재를 사랑해 주신 독자들께 감사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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