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무실이 연일 시끄럽습니다.
일하는 시간인데, 모두들 텔레비전 앞에 붙어 있습니다. 초조한 침묵이 흐르다가 순간순간 탄성이 터집니다. 저마다 곧잘 경기 해설과 코멘트를 쏟아냅니다. 일을 못하겠습니다. 저는 컴퓨터 모니터에 코를 박고 있다가, 뭔가 왁자지껄해지면 텔레비전 앞을 기웃거리다 돌아오곤 했습니다. 마치 맥주를 심하게 마시고 화장실을 들락거리듯. 조바심이 나서 견딜 수 없었습니다. 월드베이스볼클래식(WBC) 4강행의 운명을 결정짓는 일본과의 경기가 있던 날. 3월16일의 풍경입니다.
그날은 마감날이었습니다. 하지만 저는 기사 마감보다 한국이 일본을 이기는 게 더 중요했습니다. 모니터에 뜨는 기사들을 보다가도 끊임없이 되뇌었습니다. “지면 안 되는데, 지면 안 되는데….” 8회 초 이종범이 2루타를 날릴 때, 9회 말 오승환이 다무라를 삼진으로 쓰러뜨릴 때 진심으로 기뻤습니다. 한국 선수들이 마운드로 달려나가 태극기를 펄럭일 때도 대략 흐뭇했습니다. 이종범처럼 “대한민국에서 태어나길 잘했다”는 생각은 들지 않았습니다. 솔직히 말해, 업무적인 이해관계상 안도했을 뿐입니다.
야구 때문에 갑자기 표지거리를 바꿨습니다. 한국이 미국을 꺾은 그 다음날이었습니다. 일본과의 경기를 하루 앞두고 있던 수요일(3월15일)이었지요. 4강에 간다는 전제 아래 ‘한국야구’를 확 펼쳐보이기로 했습니다. 그런데 만약 일본에 진다면 표지가 맥빠지고 썰렁해질 것 같았습니다. 일본과의 경기를 보는 내내 그런 걱정이 앞섰던 겁니다.
물론 걱정은 계속되는 중입니다. 지금 이 글을 쓰고 있는 시각은 3월17일 금요일 밤입니다. 미국이 멕시코에 지는 바람에, 한국은 또다시 일본과 맞붙어야 합니다. 그 결과는 알 수 없습니다. 잡지는 토요일 아침에 인쇄되고, 한-일 간의 준결승전은 일요일에 열립니다. <한겨레21>은 월요일에야 가판에 깔립니다. 불가항력입니다. 그저 <한겨레21>이 날개 돋힌 듯 팔리는 분위기가 조성되도록, 한국팀의 통쾌한 승리를 재차 기원한다면 너무 이기적인가요?
처음으로 야구를 구경하던 기억이 납니다. 24년 전 여름 열린 봉황대기 고교야구였습니다. 늘 1회전에서 탈락하던 지방 고교 야구팀이 처음으로 전국대회 2회전에 진출하는 사건이 벌어졌습니다. 교장 선생님은 버스를 대절해 서울 동대문운동장으로 응원을 보내줬습니다. 기대는 컸지만, 결과는 처참했습니다. 콜드게임패였습니다. 그래도 마냥 서울 구경이 좋기만 했습니다. 그 뒤 단 한 번도 야구를 경기장에서 보지 못했습니다. 프로야구 출범 초기를 제외하고는 야구에 대한 전폭적인 흥미를 가져본 적도 없습니다. 이번호 표지를 읽으면서 야구에 대한 애틋한 향수와 애정이 다시 피어오르는 듯합니다. 그만큼 표지 내용엔 쏠쏠한 재미가 있다고 자신 있게 권해드립니다. 애국주의에 목숨을 걸지만 않는다면, 야구는 즐겨볼 만한 짜릿한 드라마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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