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권보드래/ 서울대 강사·국문학과
보험을 하나 들어야 할까 보다. 지난달 선배 몇을 만난 뒤부터 그런 생각이 떠나지 않는다. 대학 선배지만 대학 선배만은 아닌, 가히 인생 선배로 삼고 싶은 사람들이었는데, 저런, 그 사람들이 다 최근 암 보험에 가입했다지 않은가! 왜요? 거의 충격에 휩싸이다시피 해서 나는 묻고 또 물었다. 암 같은 치명적인 질병이 남의 일이려니 해서가 아니다. 암에 대응할 방법으로 보험을 선택했다는 게 뜻밖이어서였다.
돈으로 미래를 살 수 있나요
주변에서 암 환자가 속출하고 있다는 대답이 먼저 돌아왔다. 누구는 시숙에 이어 동서가, 누구는 언니가, 누구는 친구와 선배들이 암 진단을 받거나 암으로 세상을 떴다고 했다. 이제 40대들이니 몸에 위기가 닥쳐오기 시작할 때다. 그러고도 망설이던 차, 이런저런 우연한 계기가 겹쳐 보험에 들었단다. 보험 선택하는 게 여간 골치 아픈 일이 아니라는 말도 곁들였다. “만 40살 넘기기 전에 어서 들어라. 내가 본 걸론 이 보험이 제일 나아.”
그러니까… 하지만 전 요즘 암에 걸린다면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겠는걸요. 암으로 고생하는 사람들 많이 봤는데, 병원에 어디까지 의존해야 하는지도 잘 모르겠어요…. 항암제 부작용 때문에 형편없이 삶이 망가진 경우도 봤고, 항암제를 거부하곤 얼마 안 돼 세상을 뜬 경우도 봤어요. 어떤 한의사는 같은 부위에 암이 재발할 경우 수술을 받지 말라고 하대요. 완치 확률은 희박한 대신 삶의 질은 결정적으로 떨어뜨려놓는다고요. 의사들도 항암제가 현저한 치료효과를 갖는 건 20~30%에 불과하다고 한다면서요? 반대로 항암제 부작용도 심각하다면서요? 언니들도, 암에 맞닥뜨릴 경우, 생존 자체보다 생존의 질을 먼저 고려하실 것 아닌가요?
“그래도 돈이 필요하지. 요즘은 치료비 외에 다른 지급금도 있으니까.” 그렇죠, 하곤 다른 이야기로 건너뛰면서, 막상 궁금한 건 물어보지 못하고 말았다. 어째 내 생각이 맥빠진 원론처럼 여겨졌기 때문이다. 곰곰 생각해보니, 암에 걸린다는 상황을 가정할 때 내 머릿속에 떠오르는 ‘이상형’은 자연과 주변의 애정인가 보다. 즉각 짐을 꾸려 산 속으로 들어갈 것. 암을 더 악화시키지 않은 채 공생할 수 있는 방법을 모색해볼 것. 생활비나 치료비가 문제될 때는 주변 사람들의 애정 어린 원조에 기댈 수 있었으면. 반대의 경우라면 나 또한 성심껏 친구를 돌볼 수 있었으면…. 이렇게 상상하다 스스로 어처구니없어지고 만다.
내 자신 뭘 싫어하는지는 알겠다. 돈을 매개로 한 개인주의적인 해결책도, 복지를 매개로 한 사회적인 해결책도 내키지 않는다는 거다. 필요를 인정하긴 하되, 둘 다 최소한도로 가둬두고 싶은 거다. ‘미래의 불안’을 현금으로 해결하려면 얼마나 돈을 모아야 할까? 30억? 40억? 그걸 모을 수 있는 행운이 따른다 쳐도, ‘불안’을 돈으로 해결할 수 있을까? 사회복지제도는 얼마나 든든한 버팀목일 수 있을까? 복지제도가 전제하는바 ‘모두가 공여자이며 모두가 수혜자’라는 생각은 어디까지 진실인가? 사회가 책임져라- 사회가 대체 무엇이관대?
스스로 예외가 되길 바라지만…
아차, 그러나, ‘대안’이라고 머릿속에 떠오르는 게 농경사회 수준으로의 퇴행이라니. 산으로 들어가라고? 눈앞의 일과 관계를 다 버리고? 주변의 애정에 기댄다고? 자식과 친지와 친구들을 괴롭히겠다는 말이 아닌가? 자연과 이웃이라, 듣기만 해도 흐뭇한 말이지만, 요즘 세상에 이 두 가지 조건을 달성할 수 있다는 건 예외적인 축복이다. 민주주의자는 아니지만 나는 늘 예외를 싫어하지 않았던가. 그러니 결국 보험에 들어야 하나? 근대의 미덕을 다시 긍정하면서, 이 불확실한 시대에 보험이라는 신(神)이 있음에 감사하면서.
만 40살이 머지않았으므로, 그때를 넘기면 보험료가 훌쩍 뛰어오른다는 말을 들었으므로, 조만간 내 스스로의 대답을 들을 수 있을 것 같다. 아마 보험회사 전화번호를 찾게 되지 않을까 생각한다. 이렇듯 기성의 가능성에 몸을 기대면서도 다른 미래를 위한 에너지가 남아 있기를 기대하지만, 스스로 예외가 되는 용기를 발휘할 수 있길 바라지만, 흠, 오늘은 내가 너무 욕심 사납다는 생각이 선명하다. 마흔이 머지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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