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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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존댓말로, 공손하게…

등록 2000-08-01 00:00 수정 2020-05-02 04:21

오래된 친구라 할지라도, 저에게는 버릇이 하나 있습니다. 나름대로 충고(참으로 건방져 보이는 단어네요, 충고.)랍시고 무게를 잡고 이야기하고 싶어질 때, 존댓말을 쓰게 됩니다. 역시 촌스러운가요? 존댓말엔 권위가 존재할 거라고 믿어 의심치 않는 저의 관성이 참으로 촌스럽고 되레 경박한가요? 어쩔 수 없죠. 제 자신에게 마음속으로 다짐을 할 때도 전 그런걸요 뭘…. 지난주, 을 읽으며 오랜만에 씁쓸하니 구시렁구시렁 고민을 좀 했어요.

와 안티조선

지난 3월이던가, 제가 만들었던 영화 의 시사회를 고맙게도 찾아준 친구가 며칠 뒤 안티조선 캠페인을 위해 일일호프를 한다며 초청을 하더군요. 솔직히 시간이 없었던 것은 아닙니다. 핑계를 대고 가지 않았던 거죠. 그 며칠 전, 영화의 홍보를 위해 와 인터뷰를 했거든요. 열심히 긍정적으로 생각했어요. 전 의 영화담당 여성기자를 참 좋아합니다. 열정적인 선배거든요. 그리고 제 사진을 촬영했던 친구는 제가 언젠가 그의 정열을 부러워하던 젊은 후배였습니다. 아, 그럼요. 알고 있습니다. 인간에 대한 문제가 아니라는 것쯤은. 잘 알고 있지요. 하지만, 다행이지 뭡니까. 홍보비를 지출할 능력이 없는 우리에겐 신문에 개봉 전 기사가 나가는 것이 얼마나 도움이 되는데요(물론 또한 알고 있습니다. 기사를 본다고 제 영화를 보러 극장에 오는 것은 아니라는 것도, 세번이나 경험했는데요). 게다가 담당하셨던 기자분을 볼라치면, 박완서 선생님 말씀처럼 조선이건 한겨레건 별 차이도 없었단 말입니다. 그러나 선생님. 사실은 선생님도 알고 계시죠? 그건 틀린 말이라는 걸 말입니다. 이문열 선생은 그러셨더군요. 가 발행부수가 최고이니 국민들로부터 가장 지지를 받는 신문인 것이라구요. 에이, 잘 아시면서 왜 그러세요. 발행부수의 수량을 좌지우지하는 것은 구독률이 아니라, 광고라는 거, 신문에 연재도 몇번 하셨으면서 왜 그러세요. 박정희 정권 때 동아일보를 끝장내려고 했던 전략이 구독을 막는 게 아니라 광고를 금지시켰던 거 아시죠? 그렇습니다. 안티조선 캠페인은 인간적인 문제도 혹은 발행부수의 문제도 아닌 권력의 문제일 겁니다. 펜이 가져야 할 정의로운 힘의 차원을 넘어선 권력, 지난 수십년간 독재정권과 입을 맞추어온 권력, 그리고 아직도 권력이 남아 있다며 소스라치며 새로운 흐름에 과민대장증상을 보이는 극우적 권력. 그 종합선물세트인 에 대한 문제제기일 겁니다. 예… 저 역시 앞으로 와 인터뷰를 안 하겠다고 다짐… 못합니다. 전 언제나 갈등할 것이며, 그리고 그나마 영화 좀 봐달라며 열심히 홍보를 할 겁니다. 하지만 제 태도를 옹호할 생각 또한 하지 못합니다. 참, 어중간하게 비겁하죠? 동인문학상이라는 것에 대해 한번도 관심을 가진 적이 없었지만, 요즘 시선을 집중하고 있었던 것은 사실, 조선일보가 주최한다는 것보다는 두분의 종신심사위원 때문이었습니다. 전 아직도 해방 이후의 그 서글프도록 시린 상처에 대하여 이청준 선생님의 보다 더 마음을 끓어오르게 한 글을 읽은 적이 없습니다. 70년대, 그리고 80년대 초반을 전 박완서 선생님의 글을 통해 읽어왔으며, 한국전쟁으로 인해 두 아들을 잃고 유령처럼 가라앉은 어머니를 보며, 미군부대에서 아르바이트를 하던 그의 행복에 대한 열망을 읽으며 처음 여성주의라는 것을 만끽했습니다. 그리고 지금 무작정 애처럼 징얼징얼대며 그 종신심사위원 안 하셨으면 하고 생각했습니다.

황희 정승을 싫어하는 이유

다른 한편에서, 한겨레가 진심으로 조선과의 차이를 잘 모르겠다는 말에 대하여 코웃음치지만은 않았으면 하고 바라봅니다. 개인적으로 역사 속의 인물 중 정말 싫은 사람을 몇 꼽으라면 전 그 중의 한명으로 단호히 황희 정승을 추천하곤 합니다. 그 일화가 사실일지는 모르겠지만(어디 초등학교 교과서에 나왔던 내용 중 거짓이었던 게 한두개라야지 원) 논쟁을 벌이는 두 하인에게 둘 다 옳다며 책임지지 않고 슬쩍 빠져서 자기 인격만 지키던 그 할아버지의 태도를 전 참으로 싫어합니다. 누구에게나 대충 박수받을 수 있는 거, 흠잡힐 게 전혀 없는 거, 뭐 그런 것이 언론에 중요할 수도 있겠지만, 가끔은 지독하게 주관적인 한겨레의 독설을 바랄 때가 있습니다. 어느 순간 객관성을 넘어서 자신의 선택을 내보이는, 가끔은 위험할 정도로 자신이 좋아하는 것들에 대해 열광하며 지지하는 그런 한겨레가 되었으면, 아니 계속 그랬으면 하고 기대해봅니다. 저도 그런 영화를 만들게요, 계속.

변영주/ 영화감독 altgender@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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