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배경록/ 한겨레21 편집장 peace@hani.co.kr
“…만날 때에 미리 떠날 것을 염려하고 경계하지 아니한 것은 아니지만, 이별은 뜻밖의 일이 되고 놀란 가슴은 새로운 슬픔에 터집니다. …만날 때에 떠날 것을 염려하는 것과 같이 떠날 때에 다시 만날 것을 믿습니다.…”
만해 한용운의 시 ‘님의 침묵’의 이 구절은 불교의 윤회(輪廻)사상을 얘기하고 있지만 헤어짐 앞에서 떠올리기에는 이만큼 압권인 문장도 없어 보인다. 한밤중 아쉬움을 뒤로 한 채 좋은 벗과 헤어질 때도 그렇고, 지금처럼 <한겨레21> 독자들과 이별을 해야 하는 순간에는 더욱 그렇게 다가온다.
독자 여러분, 이번호를 마지막으로 2년간의 편집장 역할을 마치고 <한겨레21>을 떠나게 돼 ‘만리재에서’를 통해 작별인사를 하려 합니다. 2003년 4월1일 부임해 2005년 4월1일 마지막 마감을 하고 떠나게 됐는데, 사무실 책장을 살펴보니 101권(454~554호)의 잡지를 만들었더군요. 돌이켜보니 2년 동안 매호 잡지를 선보이면서 늘 죄책감에 시달려야 했습니다. 독자들께 좀더 유익하고 생생하고 희망을 전하는 잡지를 만드는 데 최선을 다했는지에 대한 끊임없는 회의가 들었기 때문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한겨레21>에 보내주신 성원과 애정어린 질책 덕분에 한주한주를 어렵사리 연명해왔던 것 같습니다. 이 자리를 빌려 독자 여러분께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한겨레21>을 통해 맺은 독자 여러분, 많은 취재원들, 지인이 된 많은 사람들과의 인연을 소중하게 생각하면 떠나는 발걸음이 한결 가볍기는 합니다. 언제, 어느 곳에서 어던 모습으로 다시 만나더라도 그 소중한 인연을 잊지 않으실 것으로 믿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한편으로 <한겨레21> 기사로 인해 상처받고 불편했던 분들을 생각하면 떠나는 발걸음이 꼭 가볍지만은 않습니다. 그분들께는 따뜻한 가슴으로 위로의 말씀을 전해야 할 것 같습니다. <한겨레21>을 미워하되 외면하지는 말아달라는 당부와 함께 말입니다.
이제 <한겨레21>은 새로운 편집장과 구성원들이 그에 걸맞은 새롭고 알찬 잡지를 만들어갈 것으로 확신합니다. 그동안 편집팀장으로 일하면서 ‘시사넌센스’를 집필해온 고경태 차장이 새 편집장을 맡게 됐습니다. 그는 <한겨레21> 창간멤버로 11년 넘게 <한겨레21>을 올곧게 지켜온 이여서 <한겨레21>의 지킴이 소임과 활기찬 지면을 만드는 역할을 충실히 수행할 것입니다. 독자 여러분들을 결코 실망시키지 않을 것으로 믿기 때문에 저와 함께 새로운 <한겨레21>의 모습을 변함없는 애정으로 지켜봐주실 것을 부탁드립니다.
너그러운 양해를 요청하면서 다시 제 얘기를 좀 하렵니다. 아니 한겨레신문사 얘기입니다. 이제 한겨레신문사는 <한겨레> 창간 17돌을 맞는 오는 5월15일을 전후해 제2 창간이나 다름없는 변화와 혁신을 도모하고 있습니다. 저는 그 목표를 달성하기 위한 주주·독자배가캠페인추진팀을 맡아 일하게 됐습니다. 국민주 회사이자 진보정론을 추구해온 매체인 한겨레신문사와 <한겨레>, <한겨레21>이 어떻게 달라지는지 관심 있게 지켜보시고 이번 캠페인에 적극 참여해주시길 당부드립니다. ‘떠날 때에 다시 만날 것을 믿는’ 것은 솔직히 그런 이유도 있습니다.
이별은 뜻밖이기는 하지만 결코 ‘놀란 가슴’으로 ‘새로운 슬픔’에만 잠겨 있지는 않겠습니다. 어디에 있으나 오로지 독자 여러분과, 소중한 인연을 맺은 많은 분들을 잊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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