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고경태 기자 k21@hani.co.kr
은행에서 ‘조지 부시’를 생각한다. 그곳에선 ‘부시’는(기본형: 부수다) 카타르시스를 느낄 수 있다. 현금인출기는 이용자에게 다음과 같은 선택을 요구한다. “명세표를 받으시겠습니까?” 당신이 돈을 뽑은 뒤 명세표마저 받는다면, 그 다음에 향할 곳은 ‘분쇄기’일 가능성이 높다. 산산이 ‘부시’어지는 명세표여…. 미국 대통령의 한자식 이름은 ‘조지 분쇄’가 될까? 은행에서 ‘분쇄기’를 볼 때마다 거리집회에서 울려퍼지는 강경한 구호가 생각난다. “XXXX 탄압 분쇄하자, 분쇄하자~.” 조폭식 우리말로 표현하면 “뽀개버리자” 정도가 되겠다. 중요한 점은 현금인출기 폐쇄회로TV 앞에는 정말로 ‘분쇄’돼야 할 악당들이 가끔 등장한다는 거다. 빼앗은 남의 신용카드를 이용해 얼굴을 가리고 돈을 찾아가는 자들…. 얼마 전엔 경기도 분당에서 항공기 여승무원을 납치·살해한 이들이 그렇게 현금 수백만원을 뽑아갔다. 은행들은 명세표 ‘분쇄’뿐 아니라 흉악범 고객들을 ‘분쇄’할 대책을 마련해야 하지 않을까. 이를 위해 ‘페이스 조절’하며 CCTV가 작동하는 현금인출기의 개발이 시급하다. ‘누드 페이스’(nude face)에만 반응하도록 하는 거다. 헬멧 벗고, 모자 벗고, 마스크 벗고, 선글라스 벗고, 고개 바짝 치켜들고 카드 넣어주세요. 홀딱 벗어야 돈 꺼내드린다니까요~.
노무현도 ‘분쇄’하겠다고 말한다. 일본 우익의 독도 주권 침해에 대해 외교전쟁까지 불사하겠다는 태도다. “일본을 분쇄하자”고 여기저기서 목소리를 높이다 보니 생뚱맞은 일들도 벌어진다. 3월18일 아침에 나온 스포츠신문들은 일제히 배용준을 표지기사로 올렸다. 영화 <외출>의 기자간담회를 취재한 내용인데, 제목들이 웃겼다. “깊은 우려- 욘사마 ‘독도 문제’ 걱정.” “배용준 독도 깊은 한숨.” “나도 한국인- 욘사마, 독도 걱정 많다.” 욘사마는 ‘걱정’만 해줘도 표지가 되는 세상. “걱정도 팔자”(팔짜)라는 말이 있는데, 이건 “걱정도 팔자”(Sell)고 작정한 케이스다. 스타의 ‘걱정’을 팔아먹는 스포츠신문들의 눈물겨운 독도 사랑 ‘격정’이여!
욘사마가 요즘 손예진과 찍는 영화 제목은 ‘외출’이다. 이 영화 촬영 현장에 비뚤어진 애국 시민들이 와본다면 흥분할지도 모른다. ‘외출’이 아닌 ‘왜출’이어서다. 과격하게 말한다면 ‘왜구 팬’들이 욘사마를 보기 위해 ‘출몰’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게 마땅치 않은 애국시민들께서는 촬영현장에 나가 피케팅이라도 하시기 바란다. “왜출 금지!” 더 오버하는 장면도 가정해본다. 일본 정부에 대한 분노를 국제적으로 마케팅하기 위해 욘사마를 민감한 역사 드라마에 출연시키자고 우기는 거다. 가령 이순신이나 안중근 또는 유관순 남자친구, 더 심하게는 독도 수비대원의 역을 맡겨야 한다며. 그러다간 ‘한류’의 이름이 바뀌어버리겠지만…. 만류!(말려줘~)
가수 ‘헤이’는 ‘쥬뗌’이라는 노래를 불렀다. 반면 ‘해이’하다는 공격을 받는 이들은 ‘갓뗌’이라는 욕을 먹는다. ‘도덕적 해이’를 의심당하는 신용불량자들이다. 정부가 최근 들고 나온 생계형 신용불량자 구제 대책에 대해 일각에선 “그럼 몽땅 떼먹힐 거냐”며 깊은 우려를 보인다. 어쩌면 신용불량자들은 ‘인간’ 대접을 못 받는지도 모른다. ‘포유류’가 아닌 ‘연체동물’ 취급을 당하는 셈이다. 빌린 원금과 이자를 제때 못 내고 ‘연체’를 반복해서 일어나는 비극. 문어나 낙지처럼 흐느적거리며 방황하는 이 땅의 경제적 ‘연체동물’들이여, 언젠가는 ‘포유류’ 기죽이는 ‘포효류’가 되시기를. 빚 싹 갚았다며 ‘포효’할 날을 꿈꾸시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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