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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산공개’의 진화 | 이재명

등록 2005-03-11 00:00 수정 2020-05-03 04:24

▣ 이재명/ 참여연대 투명사회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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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산공개제도가 시행된 지 13년째를 맞이한다. 공직자들의 재산을 등록하도록 한 것은 1981년부터지만 공개까지 하도록 정비된 것은 YS 정부 시절인 1993년이다. 4급 이상의 공직자는 모두 재산을 등록하며, 이 중 1급 이상만 재산을 공개한다. 보유재산 현황은 대표적인 개인정보임에도 불구하고 이를 공개하는 이유는 대중적인 검증을 통해 공직에 대한 신뢰를 높이기 위해서다. 검증은 여러 관점에서 이뤄진다. 재산 증식 과정에 불법 행위가 있었는지, 비윤리적 행위는 없었는지, 이해충돌이 발생하지는 않는지 등이 그것이다.

이헌재 파문, 1980년대 준거틀로 보면 안돼

재산공개제도가 시행되던 초기에는 재산의 ‘많고 적음’이 관심의 대상이었다. 어떤 장관은 수십억 원대의 재산가고, 어떤 정치인은 빚만 수천만원에 달하더라는 식이다. 이런 관심은 단순한 호기심일 수도 있지만, 명예와 부를 모두 거머쥔 사람을 향한 곱지 않은 시선이기도 했다. 실제 상당한 재산을 지닌 일부 공직자는 이같은 시선을 의식해 공직에서 물러난 경우도 있었으니, 일반 국민의 상대적 박탈감이 만만치 않았던 것 같다. 사실 부의 축적 과정에 하자만 없다면 재산을 많이 가진 게 무슨 문제인가. 하지만 권력에 부와 명예가 뒤따른다는 점이 확인된 것은 분명해 보였다. 고시 합격과 이어진 혼인, 혹은 상속을 통해서 말이다. 이런 점에서 상대적 박탈감이 괜한 것만은 아니었다.

점차 재산 공개에 따른 관심은 불법적 재산 형성, 그리고 투기 같은 비윤리적 행위를 검증하는 데 모아졌다. 비윤리적이란 공평성과 투명성을 갖추지 못했음을 의미한다. 일반에게 공표되기 전의 개발정보, 투자정보 등을 이용해 재산을 증식하는 것이다. 이는 비록 불법은 아니지만- 그렇다고 이같은 행위가 합법은 아니다- 직무상 취득한 정보를 이용해 재산을 증식하는 것은 현재도 불법이다. 대단히 비도덕적인 행위임에는 틀림없다. 오로지 국민의 이익을 대변해야 할 공직자가 공적인 정보를 활용해 사익을 추구한다면 국민의 ‘대리인’으로서 자격이 없기 때문이다. 이번 재산 공개에서 재산이 증가한 상위 20위에는 국가의 토지 수용에 따른 시세차익을 누린 경우가 많다. 이런 점에서 일반 국민이 이들에게 투기의 의혹을 두는 것은 합리적인 의심을 벗어나지 않는다. 이는 주식의 경우도 마찬가지다.

재산 공개에 따른 최근의 초점은 이해충돌(Conflict of interests) 문제이다. 사익과 공익의 충돌을 의미하는 이해충돌은, 관급 공사를 발주할 최종 권한을 지닌 공무원의 친척이 해당 입찰에 참여하거나, 특정 회사의 주식가치에 영향을 줄 만한 위치에 있는 경제부처 공무원이 그 회사의 주식을 보유하는 경우 등에 발생한다. 이런 상황에서는 공무원이 자신의 이익과 전혀 무관한 공정한 정책 결정을 하리라고 기대할 수 없게 된다. 따라서 이런 상황은 사전에 제거되어야 한다. 이를 위해서는 관련 재산을 매각하거나 다른 유형의 재산으로 변경할 수밖에 없다. 최근 자주 언급되는 ‘백지신탁제도’는 이해충돌을 규제하는 하나의 제도다. 이는 부패의 위험요인을 없애어 공직자와 정책에 대한 신뢰를 높이자는 취지이며, 공직자 개인이 윤리적이냐 비윤리적이냐와는 상관없다. 경제부처 공무원의 주식 보유, 건설교통 관련 공무원의 부동산 소유를 막자는 것은 다름 아닌 이 때문이다.

이처럼 시대에 따른 검증 초점의 변화는 공직자에게 요구되는 윤리적 잣대가 변하고 있음을 의미한다. 이런 점에서 ‘재산을 취득하는 과정에 불법이 없었는데, 당시에는 누구나 그랬는데 왜 문제 삼느냐’는 식의 불만 섞인 항의는 그럴듯하지만 동시에 시대착오적이기도 하다. 이헌재 경제부총리의 경우는 이 모든 문제가 집약되어 있다. 수십억원의 시세차익, 위장전입 등 부동산 매매 과정에서 불법 행위, 배우자가 보유한 2억원 상당의 주식은 재산 형성에서 요구되는 합법성은 물론 공평성, 투명성까지 의심하게 한다. 따라서 이 부총리를 둘러싼 이번 논란은 재산 형성 과정의 단순한 불법성 여부를 넘어 변화하는 공직 윤리를 재정립하기 위한 사회적 논쟁의 과정이다. 2005년 현재에 1980년대의 준거틀이 적용될 수는 없다. 이 부총리뿐만 아니라 이기준 전 교육부총리, 유효일 국방부 차관 등 잇따르는 인사 파문은 이처럼 새 술을 새 부대에 담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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