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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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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사넌센스] <한겨레21>의 넌센스를 찾아서…

등록 2005-03-09 00:00 수정 2020-05-03 04:24

▣ 고경태 기자 k21@hani.co.kr

‘생일’을 맞이하여 ‘생일빵’을 스스로 해본다. 이건 ‘안전빵’이 아니다. 또 다른 비난의 덫에 걸릴 소지가 다분한 탓이다. <한겨레21>이 대한민국 21의 원조로 세상에 태어난 지 11년. 그동안 지겹게 했던 “나 잘났다”는 자랑은 잠시 접어둔다. 대신 ‘시사넌센스’답게 <한겨레21>의 넌센스를 뒤져보겠다.
먼저 11년치 <한겨레21> 독자엽서를 쌓아놓을 경우, 검색어 순위 1등을 차지할지도 모를……양담배! 일부 독자들의 절규는 조선일보가 주장하는 이승복군의 외마디를 닮았다. “나는 양담배 광고가 싫어요.” 이를 일찌감치 간파했던 11년 전의 한 20대 초년 기자. 어리버리하면서 순수하기만 했던 그는 <한겨레21> 3호(1994년 4월7일치) 독자란에 감히 이렇게 못을 박듯 써버렸다. “(양담배 광고에 관한) <한겨레21>의 ‘방침’은 ‘안 싣는 것’이다. …실을 경우 ‘한겨레의 도덕성’을 요구하는 독자들이 그냥 두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그로부터 1년 뒤, <한겨레21>에는 양담배 광고가 남아시아의 해일처럼 밀려들었으니…. 일부 열혈 독자들은 그 ‘문제의 기사’를 가위로 오린 뒤 독자엽서에 붙여, 게다가 형광펜으로 밑줄을 쫙쫙 그어서 편집진에 보내기도 했다는 전설이 내려온다. “책임져! ‘방침’이 어떻게 변할 수 있니?” 그럼에도 양담배 광고는 계속 지면을 장식했고, 그에 대한 항의는 6년, 7년, 8년이 흘러도 식을 줄을 몰랐다. 그리고 지금…. 양담배를 피우는 자가 <한겨레21> 내부에도 있음을 고백한다. 오직 ‘맛’ 때문에 수입 담배를 산다는 모 기자의 당돌한 항변을 들어보자. “난 그래도 전투기는 안 사!”(양담배 광고보다 더 진한 욕을 먹었던 전투기 광고의 추억이여)
“앞대가리가 좋다.” 광고계의 선입견으로 인해 전체 지면을 배열하는 편집자의 ‘대가리’엔 피가 마를 날이 없다. 지금 당장 <한겨레21> 이번호를 보라. 스테이플러가 찍힌 정가운데를 중심으로 광고는 앞쪽에 한참 몰려 있다. 덕분에 기사를 자르고 들어가는 중간광고가 많다. ‘정도’만을 주장하는 독자들은 ‘정도’가 심하다며 실망감을 전해오기도 한다. 그런데 광고를 돈 내고 싣는 대부분의 기업들이 앞쪽의 지면 배치를 고집한다. 뒤에 실을 거면 광고를 취소하겠다고 버팅기기도 한다. 광고주 여러분들에게 앞뒤 기사의 품질 차이가 없음을, 광고 효과에도 수준 차이가 없음을 이렇게 설득해야 할까? “우리는요~ 뒤로도 잘해요~.”
‘가로본능’을 말하는 핸드폰 광고를 보며 나도 본능을 느낀다. 과로본능! 창간 뒤 10년9개월 동안 유지됐던 토요일-월요일 마감 체제가 그런 체질을 굳게 했다. <한겨레21>의 상당수 기자들에게 두 마감날의 징검다리인 일요일은, 언제나 불완전했고 어정쩡한 바늘방석이었다. 그러다 2005년 1월, 대혁명이 벌어졌다. 최종 마감일이 목요일과 금요일로 앞당겨진 거다. 10여년간 토요일 휴무는커녕 오전 근무도 챙겨보지 못한 이들에게 일요일까지 이어지는 연휴가 매주 호박덩이처럼 굴러왔다. 이제 가정의 평화는 올 것인가. 한데 오히려 부부싸움이 잦아졌다는 이야기가 들린다. 만날수록 ‘가로본능’이 생긴다는 거다. 남편 또는 아내의 얼굴을 자주 보다 보니 말다툼만 늘어나 절레절레 ‘가로’로만 젖게 된다는 고개의 본능! 결국 <한겨레21>마감일의 변화는 기혼 기자들에게 평화에 대한 새로운 교훈을 체득시켰던 것이었던 것이었다. “평화의 ‘소원’이란, 서로 ‘소원’해져야 이뤄지는 것이더라.”(<한겨레21> 톱 시크릿 넌센스는 다음 기회에 -이상은 ‘괄호본능’이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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