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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자부정론, 재벌예찬론 | 임원혁

등록 2004-12-24 00:00 수정 2020-05-03 04:23

▣ 임원혁/ 한국개발연구원 연구위원

지난 12월1일 영국계 자산운용회사인 헤르메스는 와의 인터뷰를 통해 삼성물산의 “현 경영진이 만일 주주가치를 극대화할 수 있는 의사결정을 하지 않고 대주주 일가 또는 삼성그룹의 이해관계를 우선하는 결정을 내리는 등 지배구조가 개선되지 않는다면, 헤르메스는 M&A를 시도하는 펀드를 지원할 것”이라고 밝혔다.

삼성물산 주식을 팔아치운 헤르메스

하지만 인터뷰가 보도된 뒤 이틀 만에 헤르메스는 삼성물산의 기업지배구조 개선을 위한 적대적 인수·합병 시도에 동참하기는커녕 보유하고 있던 삼성물산 주식 전량을 팔아치우며 상당한 차익을 실현했다. 결과적으로 보면 특종에 목마른 일부 언론의 보도관행을 역이용하여 사실상 시장을 농락한 셈이다.

이와 같은 일부 외국 투자회사의 행태는 외국 자본 전반에 대한 부정적 의견이 확산되는 데 한몫을 하고 있다. 심지어 몇몇 논객들은 경제주권을 위협하는 외국 자본의 침투를 막고 민족 자본인 재벌의 경영권을 방어해줘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최근 이런 주장이 힘을 얻고 있다는 것은, 외국 자본 예찬론이 팽배했던 경제위기 발생 직후와 비교할 때 엄청난 반전이다.

하지만 외국 자본과 재벌에 대한 이와 같은 여론의 변화는 잘못된 기대와 인식에 바탕을 두고 있다. 자본의 국적을 불문하고 기업 또는 기업가의 궁극적인 목표는 돈을 버는 것이다. 지배구조를 개선하는 것이 돈을 버는 데 도움이 된다면 이를 지원하겠지만, 그보다 더 손쉽게 돈을 벌 수 있는 방법이 있다면 이를 추구하는 것이 자본의 생리이다. 기업가의 경우 모국에 대한 애착이 어느 정도 있을 수도 있겠지만, 더 중요한 것은 정부와의 관계를 포함한 모국에서의 사업 환경이 외국에서보다 나은지 여부이다. 단순히 외국 자본은 외국 국적이기 때문에 ‘치고 빠지기’ 식으로 경영을 하고 재벌은 한국 국적이기 때문에 ‘붙박이’ 식으로 경영을 할 것이라고 단정할 수는 없다.

실제로 통계자료에 따르면 외국 자본이 장기적인 성과보다 단기적인 수익 극대화에 치중한다는 주장은 근거가 부족한 것으로 보인다. 상장회사의 경우 외국인 지분율이 높은 기업일수록 수익성이나 재무 안정성이 높고 연구개발이나 설비투자도 활발한 것으로 나타난다. 한 기업에 대한 외국인 지분율이 높아질수록 투자에 부정적인 영향을 미친다는 주장도 실증적인 근거가 없는 것으로 보인다. 물론 외국 자본의 이와 같은 경영 행태는 기업의 가치를 높이는 데 도움이 되기 때문에 나타나는 현상이지, 한국 경제의 선진화를 촉진하기 위해 채택된 것은 아니다.

재벌에 대해서도 냉정하게 현재 재벌이 안고 있는 본질적인 문제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재벌은 창업자 가족을 중심으로 한 피라미드식 소유 구조에 기반을 두고 다수의 계열사로 구성된 기업 구조를 가지고 있다. 하지만 창업자 가족이 다른 주주나 보험 가입자의 돈을 피라미드식으로 계열사간에 출자하는 형태로 기업을 확장하는 데는 한계가 있다. 남의 돈에 대한 의존도가 높아짐에 따라 창업자 가족의 지분이 희석되고 다른 주주나 보험 가입자도 돈을 낸 만큼 경영에 대해 간여할 권리를 주장하게 되기 때문이다. 현재 평균 5%도 되지 않는 지분을 가지고 그룹 전체에 대해 주인 행세를 하려고 하는 창업자 가족에 대해 95% 이상의 자금을 제공한 다른 주주들이 기업경영에 대해 제 목소리를 내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이런 현실을 무시하고 기존의 창업자 가족을 경영성과와 관계없이 보호해주는 것이 과연 민족경제에 기여하는 것인지는 의문이다. 보유 지분도 높지 않고 경영에도 실패한 경영인마저 보호해준다면 경영에 대한 규율은 작동하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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