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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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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년

등록 2004-12-03 00:00 수정 2020-05-03 04:23

▣ 배경록/ 한겨레21 편집장 peace@hani.co.kr

‘국가 부도’ ‘경제 신탁통치’ 등의 신조어를 양산하며 온 국민을 참담하게 만들었던 1997년의 국제통화기금(IMF) 구제금융 사태가 12월3일로 7주년을 맞는다. IMF는 국제금융기구의 이름에 불과한데도 당시는 물론이고 지금도 ‘~해서 IMF가 왔다’ ‘~ 때문에 IMF를 맞았다’ ‘~으로 IMF를 극복했다’라고 표현할 정도로, IMF는 마치 저승사자처럼 공포의 대상으로 남아 있다. 그런데 요즘 많은 사람들의 입길에 또다시 IMF가 자주 오르내리고 있어 씁쓸하기 짝이 없다. “IMF 때도 이 정도는 아니었다” “IMF 때가 차라리 행복했다” “이러다 또다시 IMF 오는 거 아니냐”는 등의 탄식이 그것이다.

혹자는 IMF 사태를 겪으면서 한국 경제의 거품이 빠졌고 체질이 개선됐으며 금융권 또한 관치가 아닌 시스템에 의한 작동이 시작됐다는 긍정적인 평가를 내리기도 한다. 그러나 2년여 만인 2000년 8월의 IMF 조기 졸업은 한국 경제의 새로운 위기가 시작되고 있었다고 봐야 할 것이다. 금모으기 운동으로 상징되는 국민들의 허리띠 졸라매기와 오로지 외환보유고 늘리기에 혈안이 된 정부의 외골수 전략에 힘입은 졸업이었기 때문이다. 과 는 IMF 졸업 당시 이미 “한국이 단기간에 너무 많은 목표를 추구함으로써 금융·기업 구조조정이 뚜렷한 좌표를 갖고 추진되지 않고 있으며 그 결과 개혁 성과가 기대에 못 미치고 있다”며 우려를 표시했었다.

결국 한국민의 저력을 세계에 과시했느니, 경제난이 계속되고 있는 아시아·남미 국가들과 비교가 되느니 하면서 샴페인을 터뜨린 IMF 졸업은 400만명의 신용불량자를 양산했고 상당수 중산층이 빠른 속도로 극빈층에 편입되는 양극화 현상을 초래하고 말았다. 도대체 무슨 거품이 빠졌고 체질이 어떻게 개선됐는지 알 수 없는 일이다. IMF 때 직장에서 쫓겨나 퇴직금으로 음식점을 차린 가장들이 솥단지를 들고 거리로 나온 것은 그 후유증을 보여주는 상징적인 사건임에 틀림없다. 자금 수혈을 책임져야 할 금융권은 외국 자본에 넘어가 수혈은 뒷전인 채 오로지 수익만을 좇고 있고 자체 ‘다이어트’를 위해 대규모 구조조정 태풍에 휩싸여 있으니 한국 경제의 회생은 요원해 보인다.

더욱 암울한 것은 우리 사회가 아직도 부정과 부패의 늪에서 헤어나지 못하고 있다는 점이다. 따지고 보면 IMF가 왜 왔는가. 부도덕한 정권이 기업으로부터 비자금을 조성하고 그 대가로 금융권에 대출 압력을 넣는 악순환이 되풀이되면서 총체적인 경제 부실을 초래했기 때문이다. 아이들이 휴대전화로 시험을 보는 지경에 이르렀고, 어른들은 진급을 둘러싼 불·탈법으로 망신을 사고 있다. 뇌물 사건도 계속 줄을 잇는다. 경제가 살아난들 제2의 IMF 사태가 곧 닥칠 것만 같아 두렵다.

때문에 구제금융을 처음 신청한 11월21일부터 최종 합의에 이른 12월3일까지를 해마다 ‘치욕의 IMF 기간’으로 정해 그 시절을 되돌아보고 IMF 사태를 되풀이하지 않으려는 의지를 다지는 것도 필요하겠다는 생각이 든다. 경제는 더욱 어려워지고 사회는 더욱 어두워지니 그런 다짐의 시간이 더욱 절실해진다. “힘들지, 내일부터 나오지 마!” “뭘요, 그냥 운동 삼아 나오는 건데요”라는 안쓰러운 광고카피는 IMF 한파가 몰아칠 때 회자됐었다. 7년이 지난 지금, “외로워도 슬퍼도 나는 안 울어~”도 여전히 보이지 않는 희망을 얘기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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