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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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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역

등록 2004-11-25 00:00 수정 2020-05-03 04:23

▣ 배경록/ 한겨레21 편집장 peace@hani.co.kr

기자생활을 시작하던 20년 전쯤, 언론계에는 취재보도가 자유롭지 못한 ‘3대 성역’이란 게 존재했었다. 신군부 쿠데타로 집권한 전두환 정권의 위세가 하늘을 찌르던 시절이어서 군은 가장 ‘두려우면서도 다가가기’ 어려운 성역이었다. 그 다음은 불법 행위를 폭로하거나 비판적인 보도를 하면 해당 언론사를 찾아가 점거농성과 행패를 일삼던 몇몇 이익집단 역시 언론에게는 ‘귀찮은’ 성역이었다. 마지막으로 종교계. 군과 이익집단의 성역 요소가 혼재돼 있는 성역이었다. 수많은 신도들을 움직일 수 있는 조직력 앞에 언론은 맥을 추지 못했다. 신문은 판매부수를, 방송은 시청률을 걱정해야 했으며, 집단 항의방문 때문에 제작에 차질을 빚을 것이 불보듯 했기 때문이다. 아예 발을 담그고 싶지 않은 성역이었다.

그 무렵, 선배들도 갓 입사한 후배들에게 ‘3대 성역’을 건드렸다가 곤욕을 치른 이야기를 들려주며 “회사에 누 끼치지 말고 눈감아 버리는 게 상책”이라는 한숨 섞인 조언을 해주었다. 한동안 언론에는 ‘3대 성역’과 관련된 보도가 거의 자취를 감추었던 것으로 기억된다.

그러나 김영삼 정부가 군 사조직 ‘하나회’를 발본색원하는 것을 계기로 군은 그 ‘성역’에서 제외됐다. 국민들에게서 절대적인 지지를 받았던 문민정권의 위력 앞에 군의 위세가 한풀 꺾이고 말았기 때문이다. 군도 자연스럽게 언론의 취재를 받아들이기 시작했고 언론의 비판을 겸허하게 수용하는 자세를 키워나갔다. 이익집단들은 정부의 행정체계가 차츰 자리를 잡아가면서 그들의 활동영역에 대해 단속과 양성화라는 채찍과 당근을 사용하자 합리적인 태도를 견지하기 시작했다. 더 이상 불법으로는 버티기 어려웠던 그들도 결국엔 ‘성역’에서 비켜나게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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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 사회 변화에 힘입어 종교계 내부도, 언론계에서 종교계를 바라보는 시각도 많이 변한 게 사실이다. 그러나 군과 이익집단에 견주어보면 종교계는 아직 잔존하고 있는 ‘성역’임이 분명해 보인다. 언론과 종교 모두에게 숨기고 싶은 부끄러운 모습들이 남아 있기 때문이다. 언론계는 여전히 판매부수와 시청률을 의식하고 있고, 종교계에는 여차하면 다수의 힘으로 언론을 굴복시키려는 무모함이 도사리고 있는 탓이다. 여전히 언론에서 종교계를 비판하는 보도를 찾아보기 힘들고, 신도들이 방송사 앞에 몰려가 프로그램 방영 중단을 요구하며 농성하는 모습에서 새삼 그 부끄러움을 곱씹어보게 된다.

최근 두드러지고 있는 한국 기독교의 정치세력화 조짐에 비상한 관심이 모이고 있다. ‘성역’에서 벗어나야 하는 과제를 해결하지 못한 채, 스스로 또 하나의 짐을 지는 것은 아닌지 걱정스럽다. 가뜩이나 어지러운 정치판에 교회까지 가세한들 과연 무엇을 바꿔놓을 수 있을지 의문이 꼬리를 물기 때문이다. 각종 범죄가 판을 치고 월 급식비 3만원을 못 내는 학생들이 급증하고 있다. 신용불량자 양산과 실직으로 해체되는 가정이 늘어나고 있다. 교세 확장에 열을 올리기보다는 차갑고 그늘진 곳에 늘 가까이 있으면서 한줄기 빛이 되어주기를 한국 기독교에 기대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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