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인촌 신임 문화부 장관의 ‘코드 인사’ 퇴진 발언을 바라보는 미술계의 착잡한 심정
▣ 노형석 기자 nuge@hani.co.kr
소설 을 쓴 프랑스 거장 앙드레 말로(1901~76)는 한국 언론에 친숙하다. 정부 문화행정의 후진성을 비판할 때마다 신문들은 약방의 감초처럼 이 문화권력자의 옛 치적들을 끌어다대곤 한다. 말로는 1959년부터 69년까지 세계 처음 독립부서로 만든 문화성의 초대 장관을 맡아 기발한 정책들로 호평받았다. 지방 곳곳에 ‘문화의 집’을 세워 문화 대중화의 거점 모델을 만들었다. 건축물 건립 비용의 1% 이상을 문화적 용도에 써야 한다고 규정한 ‘1%법’도 그의 아이디어다. 이런 혁신적 정책들은 40년이 지난 지금도 한국을 비롯한 세계 곳곳에서 본뜰 정도로 울림이 컸다.
지난 세기 전세계의 혁명 현장을 직접 누빈 좌파 지식인에서 문화 관료로 변신한 말로의 ‘변절’이 찬사를 받는 이유가 치적에만 있지는 않다. 이념적으로 정반대 코드인 우파 드골 정권의 나팔수가 되는 모순을 자처했으면서도, 그는 기품 있게 문화 대중화와 문화 국익이란 공약수를 찾았다. 그는 ‘작업하는 문화인, 운명에 항거하는 예술’이란 지론을 평생 포기하지 않았다. 에서 죽음의 테러로 죽음과 맞서는 중국 상하이 혁명가 첸의 모습처럼, 죽음과 고독 앞에 무력한 인간 조건에 대한 끈질긴 저항은 그의 변함없는 목표였다. 예술은 그 지난한 투쟁의 산물이며, 저항의 빛나는 기념탑이라는 인식은, 오직 예술만이 문명, 인간 사이의 연대성을 보증한다는 휴머니즘 예술관을 낳는다. 그런 그였기에, 철골 괴물이라던 파리 에펠탑을 국가기념물로 지정했고, 건축 거장 르코르뷔지에의 명품 ‘빌라 사부아’를 철거 위기에서 구해내고 보존했으며, 음악국을 독립부서로 세울 수 있었다. ‘귀신 들린’ 스페인 화가 고야와 동류의식을 느꼈던 그는, 수집한 복제 그림이나 사진들 수백 장을 방안에서 자기 앞에 도열해놓고 ‘상상의 미술관’을 만들어보는 것도 즐겼다.
말로의 옛 발자취를 지금 다시 꺼내는 것은, 연극배우 출신의 현 문화부 장관이 지난 정권 때 임기제로 임명된 산하 문화 기관장들에게 ‘코드가 다르다’는 이유로 ‘중도 퇴거 명령’을 내린 시점이기 때문이다. 그는 3월15일 언론 인터뷰에서 “끝까지 자리에 연연하면 재임 중 어떤 문제를 야기시켰는지 낱낱이 공개할 수밖에 없다”면서 김정헌 문화예술위원장과 김윤수 국립현대미술관장을 퇴출 대상으로 직접 거명했다. 전례없는 실명 압박에 반발도 거셌다. 두 사람은 법적으로 보장된 임기를 지킬 것이라고 다짐했다. 문화연대 등 진보 진영에서는 ‘협박 일삼는 정치꾼’ ‘자질이 의심스럽다’는 비난 성명이 잇따랐다. 두 사람이 적을 두었던 한국민족예술인총연합은 “권력의 낮술에 취한 망나니”라는 섬뜩하고 상스러운 표현으로 장관을 되받아쳤다.
사실 이 와중에 가장 큰 충격을 받은 곳은 미술동네다. 김 관장은 80년대 민중미술계의 대표적 비평가였고, 김 위원장 또한 민중미술가 출신이기 때문이다. 민중미술 계열이라고 해서, 그들 공직 활동에 색깔이 확 드러났는지는 의심스럽다. 김 관장의 경우, 학예사들과의 소통 부재와 유례없는 학예실장 파면, 수집 작품의 불투명한 구입경로와 진품 논란 등 숱한 마찰이 있었다. 그러나 이들 문제는 실무능력의 영역이지, 코드로 보기 어렵다는 견해가 지배적이다. 전시의 경우는 최근 덕수궁 미술관의 뜬금없는 카르티에 보석명품전 등에서 보이듯 일관된 방향을 잃은 것이 오히려 지적된다. 그래서 장관의 발언은 되레 독립 기관인 국립미술관과 미술 장르 전체에 대한 비하의 뜻으로 받아들여지고 있다. 국립현대미술관의 한 학예사는 “양가적 감정을 느꼈다. 현 관장이 빨리 물러났으면 좋겠다는 생각도 들었지만, 그에 앞서 미술과 미술관이 이렇게 능멸당해도 되는지 자괴감이 일었다”고 털어놓았다.
‘햄릿’과 폭군 ‘연산’을 즐겨 연기했던 유 장관의 압박 발언에는 세련된 복선의 결 대신 집주인이 세입자에게 방을 빼라고 말하는 듯한 타산이 묻어난다. ‘연극은 행동으로 하는 성찰’이라는 거장 괴테의 경구를 늘 되새긴다고 그는 과거 한 인터뷰에서 말했지만, 최근 발언은 그런 진심을 무색하게 하기에 충분하다.
‘예술은 근대의 종교이며 미술관은 그 사원’이라고 장관 시절 연설한 앙드레 말로 특유의 현란한 수사학과 예술욕망의 정곡을 찌르는 경구들을 이 땅의 위정자들에게 기대하지는 않는다. 김 관장의 퇴진은 시간이 해결사가 될 것이다. 당장은 그가 대표한 미술동네의 주저앉은 자존심이 더 아린 문제로 남는다. 유 장관은 상처 입고 자존심을 저당 잡힌 미술동네 사람들, 국립현대미술관 사람들에게 ‘경솔했다’고 머리 숙이고, 그들 가슴에 난 멍을 쓰다듬어줄 생각은 없는가. 차기 국립현대미술관장 후보로, 이 정권과 코드가 맞다는 미술계 수구인사들의 이름이 부쩍 오르내리는 요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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