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는 폐기물 문제를 전공하는 사람인데 왜 의류에 관심을 갖느냐. 섬유는 우리나라에서 재활용이나 순환이 제일 안 되는 품목이에요. 가장 안 되고 있어요.”
장용철 충남대 공과대학 환경공학과 교수는 2023년 9월 ‘품목별 재활용 제도 개선 방안’이라는 제목의 연구 용역 보고서를 내놨다. 환경부가 폐섬유 및 폐의류에 ‘생산자책임재활용제도’(EPR, 생산자와 판매자에게 폐기물 회수·재활용 의무까지 부여하는 제도)를 적용하는 게 타당한지 검토해달라고 요청한 데 따른 연구였다. 장 교수는 이 보고서에서 ‘기업이 재고 제품을 소각하는 것을 금지’하고, ‘기업이 제품 생산 단계부터 소재를 단순화하는 등 환경 문제를 고려하도록 관리’하는 게 필요하며, 정부가 국제적 흐름에 따라 ‘EPR 제도 의류 적용을 위한 대비’에 하루빨리 나서야 한다고 지적한다. 2024년 11월20일 서울 중구에서 만난 장 교수는 환경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선 결국 “생산자 책임이 가장 중요하다”고 말했다.
—어떻게 의류 폐기물 문제에 관심을 갖게 됐나.
“우리가 옷 없이 살 수 있나? 없다. 누구나 다 옷을 입고 산다. 그런데 그 많은 옷이 헌 옷 수거함에 들어가는데 어디로 어떻게 갔는지 자료가 거의 없다. 우리나라가 전세계 5위 중고 의류 수출국으로 알려져 있다. 전국에 의류수거함이 10만 개 정도 되는데, 이 의류폐기물이 대부분 선별업자나 재활용 업체에 넘어가 흐름 파악이 안 된다. 헌 옷 수거가 민간 영역 위주로 이뤄지면서 체계가 없는 상황이다. (사회의 이익이 아닌) ‘돈의 흐름’에 따라 움직인 거다. 옷들은 대개 수출된다고 알려졌지만 동남아·아프리카로 가서 상당 부분은 소각 처리, 방치된다. 동남아·아프리카가 우리나라의 쓰레기통은 아니지 않나. 유럽은 프랑스를 중심으로 이미 (포화상태에 이른) 중고의류 수출 금지에 대해 논의를 시작했다. 우리나라도 논의를 시작해야 한다. 정부나 지방자치단체가 개입해서 어떻게 처리하고 관리하고 순환시킬지에 대한 고민이 필요하다.”
—우리나라 한 해 폐의류 발생량이 2030년이면 20만t에 이른다고 했다. 시민의 노력에 따라 개선될 수 있는 수치라고 보나.
“폐의류 발생량이 2017년 약 7만t이었는데, 2021년 12만t으로 한 5만t 늘었고, 지금 증가 추세론 2024년엔 15만t, 2030년엔 20만t 정도가 될 것 같다. 요즘은 워낙 유행에 민감하고 무엇이든 쉽게 사는 ‘패스트패션 문화’가 팽배하다보니 의류 소비가 계속 증가한다. 이런 문화가 개선된다면 폐의류 발생량이 줄어들 가능성은 있겠지만, (지금 예측으론 소비자의 의류 구매가) 크게 줄어들 것 같진 않다.”
—소비가 줄어들 것 같지 않으면 결국은 생산자에 대한 규제가 중요할 것 같은데, 유럽은 어떤가.
“유럽 국가들은 굉장히 강도 높은 규제를 내놓고 있다. 패스트패션이 문제가 심각한 게, 의류에서 또다시 의류로 순환하는 게 거의 1%밖에 안 된다. 소각·매립도 문제인데, 패션산업에서 발생하는 온실가스가 전세계 온실가스의 한 4~10% 된다. 또 유럽에서는 전체 산업 폐수 발생의 20% 정도가 섬유 산업에서 온다고 본다. 그 외 염색 과정에서 나오는 여러 유해한 화학물질, 마지막으로는 요즘 굉장히 문제가 되고 있는 세탁 과정에서 발생하는 미세플라스틱 문제도 있다. 이런 종합적인 문제들이 나오다보니 유럽연합(EU) 차원의 규제가 강해지고 있다.”
—구체적인 예시를 든다면.
“일단 유럽은 2026년부터 재고 의류에 대한 소각을 금지한다. 또 ‘생산자책임재활용제도’라고, 생산자에게 판매 이후에도 이를 회수하고 재활용하는 책임까지를 부여하는 제도가 있는데, 프랑스·스웨덴·네덜란드는 이 생산자책임제활용제도에 ‘의류나 섬유’도 포함했다. 특히 프랑스는 패션산업이 굉장히 발달해서 경각심이 많았기 때문에 2007년부터 생산자책임재활용제도를 시행했고, 일찍이 재사용·재활용 기술, 회수 체계를 발달시켰다. 예를 들면 옷, 신발에서 시작해 합성섬유, 천연섬유 이런 것들을 다 재활용할 수 있게끔 재질별로 분리 배출할 수 있는 마크가 잘 표시돼 있다. 소비자들이 그걸 보고 분리배출하고 나면 선별해서 회수하고 재활용하려 노력한다. 그리고 최근엔 소비자가 ‘의류 수선을 받고 싶다’고 하면 그 수선에 대한 지원금도 좀 주고 있다. 그러나 아직은 (전세계가) 의류 재활용이나 재사용 시스템을 만들어가는 초기 단계다.”
—기업의 참여를 유도하려면 결국 ‘돈’이 문제일 텐데, 우리나라 기업이 그런 국제적 흐름에 따르지 않으면 당할 불이익도 있나?
“지금 유럽에서도 많이 논의되는 것 중 하나가 ‘디지털 제품 여권 제도’다. 개인이 다 여권을 가진 것처럼, 의류도 이제 여권이 만들어질 거다. (의류 정보를) 디지털화, 정보화시키는 거다. 이렇게 되면 우리나라도 유럽에 옷을 수출할 때 그 여권을 만들어 수출해야 한다. 여권에는 원산지가 어디고, 어떤 재료로 만들어졌고, 어떤 재질이고, 제작 과정에서 탄소는 얼마나 배출됐고, 화학물질·유해성분이 있는지 등의 정보가 담긴다. 또 이 제품의 재활용이나 분리배출은 어떻게 해야 하는지 등 생산부터 마지막 폐기까지 전 과정에 걸친 종합 정보가 담기게 된다. 우리나라는 수출 주도형 국가다 보니, 당연히 준비해야 한다.”
—통상적으로 의류 기업들은 영업기밀이라고 생각해 재고 정보를 숨기려 하지 않나. 유럽처럼 재고 의류 소각을 금지할 수 있을까?
“우리가 새롭게 만든 제품들을 사용하지도 않고 그냥 태워버린다? 신제품을 태워버린다? 이건 상식적으로 이해가 안 가지 않나. 윤리적 측면에서도 안 좋고, ‘지속가능한 제품을 만들자’고 하는 기업의 이에스지(ESG, 환경·사회·지배구조) 경영 측면에서도 굉장히 바람직하지 않다. 안 좋은 건 당연히 막을 규제를 만들어나가야 한다. 우리나라도 유럽처럼 미판매된 재고 의류 소각을 당연히 금지해야 한다. 이 재고량에 대해 (기업이) 통계 보고도 하고, 재고를 어떻게 처리했는지에 대해서도 보고 체계를 만들어야 한다.”
—규제가 중요하다는 건데, 환경부 용역 보고서가 나온 지 1년이 넘었지만 소비자로서 제도적 변화를 체감하기 힘들다.
“일단은 생산자책임재활용제도 도입을 빨리 준비해서 시행해야 한다. 그렇게 하기 위해선 ‘생산자 범위 파악’이 우선이다. 의류 생산자·수입업자·유통업자·판매업자 등 (책임을 물을) 범위를 정하고 재활용해야 할 대상 품목도 정해야 한다. 그보다 더 중요한 건 재활용할 수 있는 기술, 업체, 전체적 틀을 만드는 거다. 지금 그 뼈대를 못 만들고 있다. 2~3년 내로 이런 것들을 빨리 준비해 재활용 체계를 만들고, 생산자인 기업에 여러 책임과 의무, 강제성도 부여해야 한다.”
—기업이 폐기물을 제대로 신고하고, 재활용하고, 분담금을 내게 하기 위해선 결국 정부나 입법부가 법을 만들어야 할 텐데, 이들의 움직임이 더딘 이유는 뭘까.
“곧바로 시행은 힘든 부분이 있다. 일단은 책임 있는 기업의 범위나 주체들을 정해야 하고 기초 인프라를 만들어야 하는 부분이 있어서다. 예를 들면 옷의 경우 영세한 보세옷 업자가 많은데, 연간 10억원 이상 제조한 주체를 대상으로 법을 시행할지, 5억원 이상을 기준으로 할지 등 세부적인 범위를 정하는 과정도 필요하다.”
—우리나라 의류 재활용 기술 관련 업체들은 어느 정도 수준까지 와 있나.
“보고서나 논문들을 통해 우리나라 기술 수준이 어느 정도인지 파악하고 있는데, 분명한 건 아직 우리나라에서 상업적 수준으로 몇만t씩 의류 재활용을 하는 업체는 없다. 조그마한 시도들은 있지만 아직 이윤을 낼 정도로 돌아가는 업체가 없다. 지원금도 별로 없고, 해도 돈이 안 되니 ‘순환 비즈니스’가 잘 돌아가겠나. 그래서 생산자책임재활용제도가 더 필요하다. 큰 기업들에 ‘너희가 재활용 공장을 세워. 너희가 옷을 팔았잖아. 팔았으면 책임을 져야지’ 하는 거다. 재활용 구조를 만들려면 초기 인프라 구축에 돈이 필요하다. 기업이 책임져서 구조를 만들어나갈 때, 기업이 ‘어? 구조를 만들려고 봤더니 기술이 없어? 그럼 기술자 모여’ 해야 기술도 만들어질 수 있다. 시스템을 만드는 건 쉽지 않다. 돈이 많이 든다. 그래서 기업이나 생산업자, 수입업자, 유통업자들의 역할이 중요한 거다.”
—소비자가 할 수 있는 노력은 뭘까.
“소비자도 역할이 있겠지만 사실은 생산자가 가장 책임이 크고 중요하다. 기업이 중요하다. 그다음에는 기업이 자기가 만든 제품에 대해 ‘이건 사회적으로 지속가능한, 굉장히 친환경적인 제품이다’라고 알리면 소비자는 그런 걸 사면 되는 거다. 그래야 그런 친환경 의류나 제품들이 선순환되는 거다. 또 한 가지는 가급적이면 오래 입는 게 지구를 위해선 좋겠다.”
손고운 기자 songon11@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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