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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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러브버그도 알면 사랑하게 될 거예요

[최재천 생명다양성재단 이사장 인터뷰②·끝]
“공부하고 알아가면 자연을 사랑할 수 있는 그런 시대가 올 것”
등록 2024-07-06 02:48 수정 2024-07-11 06:24
2024년 6월27일 생태학자이자 동물행동학자인 최재천(70) 생명다양성재단 이사장을 서울의 한 호텔에서 만났다. 김양진 기자

2024년 6월27일 생태학자이자 동물행동학자인 최재천(70) 생명다양성재단 이사장을 서울의 한 호텔에서 만났다. 김양진 기자


☞☞☞[최재천 생명다양성재단 이사장 인터뷰①]“박멸 말고 ‘참아주기’ 전략이 필요하다”​기사 https://h21.hani.co.kr/arti/society/environment/55761.html 에서 이어집니다.

2022년 서울 은평구 봉산을 중심으로 러브버그(붉은등우단털파리)가 대발생한 이래 3년째 같은 현상이 반복되고 있다. 여론은 주로 방역, 즉 러브버그를 어떻게 죽일지에 집중되고 있다. 어려서는 죽은 나무와 낙엽을 분해하고 커서는 꽃이 열매를 맺도록 돕고, 쏘지도 물지도 않는, 이 이롭고 무해한 생명체에 대한 우리의 무자비한 태도는 어떤 결과를 초래할까. 2024년 6월27일 생태학자이자 동물행동학자인 최재천(70) 생명다양성재단 이사장을 서울의 한 호텔에서 만났다. 한 민간단체가 개최한 포럼에서 ‘자연은 순수를 혐오한다’는 제목으로 강연을 마친 직후였다. -편집자 주

—서울 은평구청이 관내 봉산에 기존 숲을 없애고 편백림을 조성했어요. 전기로 물을 끌어다 키웁니다. 아래에 참나무류가 올라오면 사람을 동원해서 베어냅니다. 인간은 왜 이렇게 자연을 대할까요.

“생명다양성재단에서 2022년 지저분 정신 캠페인을 했어요. 좀 지저분하게 놔두자는 거예요. 원래 숲이라는 곳은 관목도 있고 넝쿨도 있고, 그래서 지저분하게 보이고 그 지저분하고 어두컴컴한 속에 뱀도 살고 이래야 합니다. 그런데 우리가 관리하는 숲은 깔끔하잖아요. 뱀도 숨을 곳이 없고. 우리나라 숲에는 동물이 없고 나무만 있어요. 동물이 돌아오려면 지저분해야 합니다. 열대 정글이 대표적이죠. 사람들은 메타세쿼이아면 메타세쿼이아만 반복적으로 있는 거에 감동해요. 산에 갔는데 복잡하면 감동하지 않아요. 인간의 본능인 것 같아요.

오늘 포럼 강연에서도 제가 ‘인간은 다양성을 혐오한다’고 했어요. 자연은 순수를 내버려두지 않고 끊임없이 분화하죠. 지금 인류 사회에 제일 중요한 이슈 중 하나가 다양성이잖아요. 다양한 목소리가 필요하다. 그런데 천만의 말씀이잖아요. 회의할 때 누가 삐딱한 소리를 하면 째려보잖아요. 회의를 왜 하나요? 한목소리로 통일하기 위해서잖아요. 제가 보기에 인간은 다양성을 추구할 의사가 없는 것 같아요. 왜 그럴까요? 미국 예일대학 교수가 쓴 책을 읽었어요. 인간사회에서 다양성이 중요해진 게 역사가 짧대요. 생각해보세요. 지금은 다양성을 강조하지만, (인간은) 계속 권위주의 시대를 살았잖아요.”

 

—4년 임기 단체장이 수십 년 된 나무들을 베고 수천 년 된 생태계를 완전히 바꿔버려도 될까요.

“이명박 대통령이 4대강 사업을 한다고 할 때 제가 ‘당신이 대통령이지만 국가의 자연을 바꿀 수 있는 권한을 국민이 부여한 게 아니다’라고 공개발언을 했어요. 4대강을 이으면 그 강에 따로따로 살던 생물이 합쳐지고 새로운 경쟁 체제가 만들어질 텐데 그런 짓을 감히 어떻게 할 수 있나요. ‘아무리 4대강 사업에 성공해서 미국보다 잘사는 나라가 돼도, 포클레인을 끌고 가서 강바닥을 긁을 때 혼비백산할 줄납자루, 피라미를 알기 때문에 반대한다. 대통령이 무지해서 이런 일을 벌이는 것 같다’고 했죠. 이 발언에 (이 대통령이) 격노했죠.”

—러브버그 대발생, 꿀벌 실종 등 곤충들이 이상 신호를 보내지만, 정부는 기후위기 탓만 하는 것 같습니다. 

“기후변화가 원인일 수 있겠죠. 어느 순간, 기후 얘기만 하면 아무것도 안 해도 되죠. 기후위기에 떠넘기는 수준이에요. 정치나 행정 하는 분들에게 기후는 빠져나가기 쉬운 핑곗거리가 돼버린 것 같습니다. ‘전 인류적인 일’이라며 마치 면죄부가 된 것 같은…. 미국 정부는 꿀벌이 사라지자 천문학적인 돈을 썼어요. 2006년부터 전자파, 살충제, 별의별 걸 다 올려놓고 연구했지만 결론이 없어요. 살충제를 제일 유력한 주범으로 보지만, 살충제 안 뿌리는 곳에서도 벌어지는 일이 있어요. 하나의 문제가 아니라 복합적인 거죠.”

 

—2년 전 취재 중 농촌진흥청 담당 과장은 ‘꿀벌 실종은 살충제 문제가 아니라고 100% 확신한다. 응애 문제다’라고 하더라고요.

“어떻게 확신합니까? 미국은 그런 일이 터지면 일단 과학자에게 물어요. 제대로 된 과학자는 답이 없죠. 실험을 안 했는데, 답이 있을 리 없잖아요. 그래서 연구를 시작합니다. 10년도 걸리죠. 근데 우리는 너무 쉬워요.”

“대통령에게도 자연을 바꿀 권한은 없다”

—생태 감수성을 갖는 것도 중요할 거 같습니다.

“제가 늘 하는 말이 ‘알면 사랑한다’라는 거예요. 모르면 해치고 혐오하죠. 자꾸 공부하고 알아가고 연구하면 언젠가는 우리가 충분히 (자연을) 사랑할 수 있는 그런 시대가 올 거라는 게 중요해요.”

 

—그런 방식으로는 너무 오래 걸리지 않을까요?

“시간이 걸릴 수 있죠. 그런데 가망이 없는 건 아니에요. 20년 전만 해도 장례 문화에 대해 신문에서 툭하면 ‘전국이 무덤이 된다, 오랜 전통이라 바뀌기 힘들다’고 했어요. 그런데 지금은 어떤가요? 많은 사람이 화장합니다. 20년 안에 이 사회에서 벌어진 일입니다. 우리 국민은 모두 읽을 줄 압니다. 정확한 얘기와 데이터를 꺼내놓고 국민에게 생각해보시라고 하면 끝내 올바른 판단을 내리는 능력이 있다고 저는 확신합니다.

제가 최근 <숙론>(김영사 펴냄)이라는 책을 냈어요. 자꾸 모여서 얘기하자는 뜻이거든요. 토론이라는 말이 너무 많이 오염됐어요. 그래서 숙론(熟論)이라는 새로운 단어를 꺼냈어요. 깊이 생각하면서 서로 얘기를 나누자고요. 누가 옳으냐를 결정하는 게 아니라 무엇이 옳은가를 함께 찾아가는 과정이 원래 토론의 목적이죠. 내가 옳고 네가 틀렸다, 이게 아니잖아요. 상대의 실수를 잘 파고드는 배틀을 하다가 좋을 의견을 도출해내려고 했던 목적은 까맣게 잊어버리죠. 이게 달라지면 얼마나 좋을까. ‘숙론을 합시다’ 캠페인을 하고 싶어요.”

김양진 기자 ky0295@hani.co.kr·류석우 기자 rainti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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