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지마다 구름이 걸린 듯, 몸길이 1m가량 되는 흰 새 20여 마리가 깃 속에 몸을 웅크리고 숲우듬지(숲의 꼭대기 쪽 줄기와 가지)에 걸터앉아 있었다. 청렴한 선비를 상징한다고도 하고 신선이 타고 다녔다고도 하는 백로, 그 가운데 가장 큰 축에 속하는 중대백로였다.
2024년 2월15일 오전 강원도 원주시 호저면 주산2리 중방마을 뒷산, 투둑투둑 겨울비가 내렸다. 자세히 보니 상수리·신갈·산벚나무 그리고 낙엽송 등에 지난해 지은 둥지 100여 개가 남아 있었다. 때마침 한 마리가 인근 원주천·섬강에서 배를 채운 뒤 날개를 쭉 펴고 하늘을 활공했다. 마을회관에서 불과 20m 떨어진 이곳은 이 야생동물들의 집이다. 중국 남부와 베트남 등 남쪽 나라에서 겨울을 난 백로·왜가리·해오라기류 100여 마리가, 선발대를 시작으로 매년 봄이 되면 여기로 날아든다. 짝짓기하고 새끼를 낳아 길러, 가을에 다시 먼 비행을 시작한다.
“지난해 10월 말 다 떠나더니 어제(2월14일) 낮에 돌아왔어요.” 주민 김경자(70)씨가 말했다. 40여 가구가 사는 중방마을에 20여 년 전부터 ‘학마을’이라는 별명이 붙었다. 마을 입구에 크게 ‘학마을’이라 쓴 표지석도 서 있다. 겨울철새인 학(두루미류)은 강원 철원·경기 연천 등 우리나라 극히 일부 지역에서만 겨울을 난다. 과거엔 두루미류와 여름철새인 왜가리류·백로류 등 목과 다리가 길쭉한데다 크고 하얀 새를 두루두루 ‘학’이라 부르는 데서 학마을이 유래했다고 한다.
그런데 사실 이곳 백로들은 인근 지역에서 이주해왔다고 주민들은 설명한다. “내가 이 마을에 산 지 52년 됐어요. 처음부터 이 마을에 백로가 많았던 게 아니에요. 한 40년 전에 한두 마리가 오기 시작했어요. 그때는 (원주천 쪽) 마을 앞산에 살았어요. 그러다가 시끄럽고 배설물 때문에 냄새가 나니까 산 주인이 10여 년 전에 그 산의 나무를 싹 잘라냈어요. 그래서 여기저기 흩어졌다가 여기 뒷산에 온 게 5~6년 전이에요.” 주민 남재규(72)씨 말이다.
원래는 8㎞가량 남쪽인 원주시 반곡관설동이 백로류 서식지였다. 하지만 도시개발로 서식처가 사라지는 바람에 중방마을 쪽으로 살 곳을 옮겼다고 한다. 1994년 중방마을 앞산은 야생동물보호구역으로 지정됐다. 2004년 환경부 조사에서 왜가리 302마리, 중대백로 298마리, 쇠백로 24마리 등 672마리가 관찰됐다.
초기엔 환영받았다. “백로가 드는 마을은 부자가 된다는 전설이 있어 마을 주민들도 이 일대를 성스럽게 보고 있다. 서식지를 그대로 보전하기 위해 출입을 제한하는 등 마을 사람들도 노력하고 있다.”(당시 주산2리 이장 ㄱ씨, <원주투데이> 2001년 4월23일치) 하지만 10여 년 만에 원망의 대상으로 바뀌었다. “(백로 배설물에 의해) 수십 년 된 나무가 썩어 넘어갈 지경이다. 봄 되면 새들 소리에 잠을 못 잔다.”(주산리 이장 ㄴ씨, <강원일보> 2016년 2월15일치)
이런 분위기 속에 산 주인이 야생동물보호구역 주변 수십 살 된 아름드리 상수리나무 등 백로 서식지 나무들을 모조리 베어냈다. 이어 원주시가 나서 ‘백로들이 만들어낸 위험 수목을 제거하겠다’며 야생동물보호구역 내 참나무류 30그루를 베어냈다. 2017년 봄, 백로떼는 중방마을 앞산을 더는 찾지 않았다.
이날 현장을 찾았다. 황량함만 가득했다. 참나무와 백로가 떠난 민둥산엔 가시박이 뒤덮었다. 고사한 가시박 줄기에 돌돌 말린 어린나무들이 비명을 내질렀다. 동행한 이승현 숲해설사는 이렇게 설명했다. “백로류 배설물의 요산 성분이 나무 생장에 영향을 주는 건 맞지만 갑자기 고사시킬 정도는 아니에요. 죽는 나무가 일부 생겨도 갑자기 기하급수로 죽는 것도 아니에요. 수십 년에 걸쳐 서서히 몇 그루가 고사하는 것 같아요. 그것도 인과관계가 제대로 연구된 적이 없어요. 오히려 나무를 베는 건 사람이죠.” 그는 이어 말했다. “(사람이) 불편하다면서 이렇게 중요한 야생동물 집단서식지를 아무렇지 않게 없애려고만 해요. 백로는 오래전부터 사람 근처에서 살던 동물이에요. 그런데 지금은 사람들이 같이 살아갈 궁리를 하지 않아요. 20년쯤 전 환경단체에 있을 때 (원주시) 태장동 백로 서식지를 조사한 적이 있는데, 아파트 짓는다고 백로들이 살던 나무를 베어냈어요. 그 백로들은 다 어디 갔을까요?”
사실 백로를 ‘애물단지’로 보고 나무를 고사시킨 범인으로 몰아세운 뒤, 나무를 베는 방식으로 백로의 서식지를 없애는 일은 2010년 이후 전국적으로 벌어지는 현상이다. 경기 고양·성남, 충북 청주, 인천, 대전 등에서 같은 일이 벌어졌고 갈등은 현재진행형이다.
다만 대전의 갈등은 대전시·대전환경운동연합·카이스트 등이 함께 머리를 맞대고 연구한 첫 사례로 주목할 만하다. 2001년 카이스트 내 어은동산에서 처음 백로 800여 마리가 확인돼 환영받았다. 하지만 10년여 만에 교내 여론은 돌아섰다. 소음과 악취 등으로 학생들이 불편을 호소했고, 2013년 간벌작업이 이뤄졌다. 백로떼는 인근 유성구 궁동공원(2013년), 서구 남선공원(2014년), 서구 내동초등학교(2015년) 등에서 번식하다가 2016년 다시 카이스트 북쪽 기숙사 뒤편 숲으로 돌아왔다.
대전시는 백로를 민원 처리 대상으로만 보지 않았다. 같은 해 대전발전연구원은 백로 연구를 했다. 백로 10마리에게 위치추적기를 달아, 백로가 매일 5~32㎞를 날아다니며 먹이활동을 하고, 겨울이 오면 4675㎞ 떨어진 전북 새만금을 거쳐 중국 당양 등으로 날아간다는 걸 확인했다. 또 봄철 소음은 알에서 깬 새끼들이 먹이를 요구하는 소리라는 것도 조사됐다. 그러나 실제 백로와 같은 크기의 모형과 음향시설을 설치해 주택가와 떨어져 있는 서구 월평공원으로 백로떼의 이동을 유도했지만 실패했다. 패인은 ‘백로쯤, 잘 안다’는 착각 때문이었다.
이 실험에 참여했던 이경호 대전환경운동연합 사무처장은 “우리가 백로에 대해 안다고 생각했던 것이 틀렸음을 확인한 과정이었다. 월평공원도 분명히 백로가 좋아할 거라 생각했는데, 안 간다. 아, 백로의 눈으로 보는 게 다르구나 생각했다”고 말했다.
이 사무처장은 이어서 설명했다. “백로 서식지를 없애는 건 ‘폭탄 돌리기’ 같은 겁니다. 일단 백로가 스스로 서식지를 정했으면, 지방자치단체는 관리를 통해 불편이 최소화하도록 하고 시민들도 협력하면서 자연을 공존 대상으로 인식하고 함께 살기 위해 노력해야 합니다. 벌목은 결국 다른 지역으로 ‘폭탄’을 넘기는 일밖에 안 됩니다.”
성한아 카이스트 인류세연구센터 연구원의 지적도 눈길을 끈다. “숲 전체로 봤을 때 백로는 하천생태계와 산림생태계를 연결해서 영양물을 순환시켜 숲을 건강하게 만들어줍니다. 또 서식지 충실도가 굉장히 높은 종으로 서식지를 쉽게 바꾸지 않아요. 카이스트 기숙사 같은 인간 거주지 옆에서 집단번식하는 것도 사실은 삵·족제비 같은 포식자로부터 알과 새끼를 보호하려는 거예요. 과거 농경생활에서 백로가 인간 옆에 살았던 것도 같은 이유고요. 대전이 갑천·대전천·유등천 등에 둘러싸여 있고 오래전부터 자연하천화를 시도한 것이, 전국 최대 백로 서식지가 된 배경이 아닐까 합니다. 다만 백로의 행동은 여전히 많이 알려지지 않은 부분이에요. 전국적으로 백로 관련 갈등이 있으니, 이제라도 국가적 관심과 장기적인 연구가 필요할 것 같습니다.”
이어 성한아 연구원은 말했다. “백로 때문에 나무가 고사하는 걸 걱정한다면서, 나무를 잘라내 문제에 대처한다는 게 변명 같고 역설적이죠. 나무에게는 자신을 잘라내는 인간이 훨씬 치명적입니다.”
백로를 ‘길조’라고 환영하다가, 얼마 지나지 않아 ‘유해조수’ 취급하는 변덕스러운 인간의 마음은 다른 동식물에도 그대로 적용된다. 비둘기가 대표적이다. 1960~1970년까지만 해도 ‘평화의 상징’(<경향신문> 1965년 2월20일 ‘평화로운 새…비둘기’)으로 치켜세웠지만, ‘골칫거리’로 몰아세운 뒤 2009년 환경부가 ‘유해조수’로 규정했다.
식물 쪽도 비슷하다. 예를 들어 아까시나무는 황폐한 우리 산림을 푸르게 만든 공로를 칭송하다가 ‘생태교란종’이라고 일부러 제거했다. 그러다 양봉 농가들이 반발했고, 2022년부터 산림청이 나서서 밀원식물(꿀벌에게 꿀과 꽃가루를 제공하는 식물)이라며 다시 심고 있다. 1990년대 초반부터 ‘생태교란종’ ‘독초의 대명사’로 지목돼 대대적 제거 대상이 된 미국자리공에 대해 김종원 전 계명대 교수(식물사회학)는 이렇게 말한다.
“식물에는 나쁜 식물이 있을 수 없다. (…) 토착식물종이 살지 못하도록 사람이 파괴해버린 땅에서 귀화식물은 오히려 그 상처를 치유하는 역할을 감당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엄밀하게 말해서 자연생태계를 교란하는 생명체는 기실은 인간밖에 없다!”(<한국식물생태보감1>, 자연과생태 펴냄)
‘대전 백로 연구’로 크게 바뀐 것 중 하나가 카이스트 학생들의 백로에 대한 인식이다. 2022년 9월 카이스트 교내에서 열린 ‘백로 간담회’에서 한 학생은 “백로가 살던 곳에 인간이 들어온 것, 우리가 백로의 집을 침범한 것은 아니냐?”는 질문을 던졌다. 교내 언론 <카이스트신문>은 같은 해 10월4일 사설에서 “캠퍼스는 인간과 이종의 다양한 행위자들이 공존을 연습하는 장이 되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성한아 연구원은 “공존을 위한 연습”을 강조했다. “대전시 등의 백로 연구도 그렇고요. 학생들과 모니터링하면서 백로가 어떻게 새끼를 기르는지 보고, 대전이 전국에서 가장 큰 둥지이며, 새끼를 낳아서 빨리 기른 뒤 베트남까지 간다고 하면 백로가 다르게 느껴지거든요. 이렇게 백로가 사는 것을 보고 스토리텔링하는 것 자체가 백로라는 비인간 존재와 함께 살아가는 시도고, 정말 중요한 거 같아요. 정말 봄에 카이스트 기숙사는 닭장이 옆에 있는 것처럼 시끄럽고 냄새도 상상 이상이에요. 한창 시험공부를 해야 할 때 그런 불편을 겪죠. 그래도 이제 모든 학생이 ‘백로는 내쫓자’고 하진 않아요.”
“생태계는 인간 사회와 무척 비슷하다. 생태계와 인간 사회의 바탕은 관계이다. 유대가 강할수록 그 시스템은 더 탄력적이 된다. 그리고 이 세상의 시스템은 각각의 유기체로 구성돼 있으므로 시스템은 변화할 수 있다. 생명체들은 적응하고 유전자는 진화하고 우리는 경험을 통해 배운다.”(<어머니 나무를 찾아서>, 수잔 시마드 지음, 사이언스북스 펴냄)
백로가 사는 그 숲과 나무의 주인이 정말 사람일까. 대규모 개발 때마다 개발업자들이 자연을 멋대로 파괴하면서 전략환경영향평가서에 붙이는 단서 조항 속 ‘새들에게 제공할 대체 서식지’는 왜 지금껏 단 한 곳도 성공한 사례가 없을까.
최진우 서울환경연합 전문위원은 “백로류·왜가리류 집단서식지는 적극적으로 정부가 매입하고 보호구역으로 설정해 보호해야 한다. 과거엔 영험한 존재로 받아들였던 이 새들과 맺은 오랜 역사의 관계를 오늘을 사는 사람들도 존중했으면 한다”고 말했다.
중방마을 백로들의 주된 집이 돼주는 상수리나무는 참나무류 중에서도 가장 인간과 가까운 나무다. 깊은 산속에선 찾아볼 수 없지만 마을 인근 산에는 흔하다. 도토리로 식량을 제공하고, 죽어선 표고버섯 등 식용버섯에 몸을 내준다. 과거엔 추운 겨울 은은하게 오래 타는 땔감으로도 많이 쓰였다. 그러면서도 다른 참나무류에 비해 빨리 자라 숲을 풍성하게 했다. 얼마 안 되긴 하지만 우리나라 중부지방 천연림을 우점하는 나무가 굴참·갈참·졸참·떡갈·신갈 같은 참나무류이다. 그렇게 흔했고, 사람의 사랑도 듬뿍 받았다. 노래도 흥얼흥얼 나온다. “뜰에는 반짝이는/ 금모래 빛/ 뒷문 밖에는/ 갈잎의 노래”(김소월, ‘엄마야 누나야’ 중) 참나무류를 갈잎나무라고도 한다. 백로가 불편하다고 상수리나무까지 베어내는 건, ‘비인간 이웃들’을 두 번 배신하는 일일 뿐이다.
치악산을 중심으로 산과 강, 들이 어우러진 이 고장은 큰 나무가 많은 곳이다. 중방마을 들머리엔 가슴높이 둘레 4.2m 300살 마을나무 느티나무가 우뚝 서 있었다. 또 인근 호저초등학교에는 150살가량으로 추정되는 가슴높이 둘레 5m 플라타너스 거목이 버티고 있다. 이승현 해설사는 “국내 최대·최고령 플라타너스로 추정된다”고 설명했다. 플라타너스 역시 이렇게 거대한 ‘어머니 나무’로 성장할 수 있음을 이 나무 아래에 서면 느끼게 된다. 무자비한 강한 가지치기를 남발하는 가로수 플라타너스 역시 ‘예비 어머니 나무’다. 원주는 또 우리나라에서 가장 부피가 큰 나무로 꼽히는 반계리 은행나무(가슴높이 둘레 16.9m, 800살)의 고장이다. 이 큰 나무를 키워낼 만큼 살기 좋고, 자연을 보살필 만큼 인심도 넉넉한 고장이라는 방증이리라. 그래서 하늘과 인간을 이어준다는 새들도 즐겨 찾고 마음 놓고 둥지를 튼다.
조선시대 문인 양사언(1517~1584)은 시조 ‘영백로’(詠白鷺)에서 백로에 대해 이렇게 노래했다.
“백로의 흰빛은 백옥처럼 희지만/ 백옥은 비록 희어도 날지를 못하네/ 백로의 흰빛은 눈처럼 희지만/ 백설은 비록 희어도 녹고 마르네”
원주(강원)=김양진 기자 ky0295@hani.co.kr
*나무 전상서: 나무를 아끼고 지키는 사람들의 마음을 전합니다. 4주마다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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