흙탕물 급류가 거칠게 흘렀다. 2023년 8월31일 오전 이틀째 내린 비(누적강수량 160㎜)로, 대구 시내를 굽이굽이 관통하는 금호강이 잔뜩 성나 있었다. 동구 방촌동에서, 보행교(강촌햇살교)를 건너 금호강 왼쪽 기슭(좌안)으로 발을 디뎠다. 왕버들·수양버들·버드나무 등 버드나무 일가가 수㎞ 긴 띠 모양의 숲을 이뤘다. 어느새 가슴장화의 허리께까지 물이 찼지만, 잔잔한 물살이 건너편 기슭(우안)과 대비됐다. 습지가, 범람한 강물을 스펀지처럼 빨아들여 강물의 힘을 꼭 눌러줬기 때문이다.
물에 잠기면 숨을 쉬지 못해 고사하는 ‘보통 나무’와 달리 왕버들 등 버드나무 종류는 되레 신난다. 산등성이가 소나무의 독무대라면, 버드나무 종류의 독무대는 물가다. 물에 잠겨도 잎에서 뿌리까지 산소를 원활하게 전달할 수 있고, 줄기와 가지에서도 희고 가는 잔뿌리(부정근)를 마구 뻗어 물과 양분을 맘껏 빨아들인다. 버드나무 일가를 가리키는 라틴어 살릭스(Salix)도 ‘물(lis) 근처(sal)’라는 의미다. 특히 왕버들은 버드나무 종류 중 유일하게 수백 년 오래 살아 ‘왕’ 대접을 받았다. 왕버들은 하류(河柳·강버들)라고도 부른다. 서울 한강 등 큰 강 주변에 버드나무 종류가 홀로 창창한 것도 누가 일부러 심은 게 아니다. 아주 작은 씨(약 5㎜)들이 솜털 날개를 달고 바람 타고 날아든 뒤 다른 수종을 압도한 결과다.
“대구 구역 금호강에 상류 쪽부터 안심·팔현·달성 세 습지가 있는데, 이렇게 산과 강이 연결된 곳은 팔현습지가 유일합니다. 생물다양성이 가장 풍부할 수밖에 없는 이유입니다. 여기 서식하는 법정보호종만 수리부엉이, 담비, 수달, 삵 등 9종에 이릅니다. 안심·달성 습지는 산과 연결된 곳에 콘크리트 도로를 깔아 끊어놓았습니다. 법적 보호를 못 받는 곳이지만, 팔현습지는 금호강에서 가장 핵심적인 생태 공간입니다.”
이날 함께 팔현습지를 찾은 정수근 대구환경운동연합 사무처장이 큰 왕버들을 가리키며 말했다. 밑동에서부터 둘레 1.5~2m짜리 줄기(수간) 여섯 갈래가 제멋대로 뻗었다. 위로도 뻗었지만 어떤 줄기는 물가에 닿을 듯 누워 있었다. 키는 15~20m가량, 나이는 150살 이상 됐을 것으로 추정했다. 몸집은 커도 햇잎은 꽃처럼 불그스름했다. 이런 특징 때문에 왕버들의 일본 이름은 ‘붉은 싹 버들’(赤芽柳·아카메야나기)이다. 둥치 쪽에서 잉어 한 마리가 튀어올랐다. 큰비로 강물이 불어났을 때 왕버들숲이 버티고 선 습지 쪽은 물고기 등 하천 생명이 급물살을 피하는 안식처 구실을 한다. 상류 쪽에서 흘러 내려온 갈대 등 각종 초본류와 나뭇가지, 사람들이 버린 페트병과 폐가구 등 쓰레기도 걸러냈다. 하류로 집중될 강물의 거센 힘을 분산시키는, 자연 홍수방지 시설인 셈이다.
왕버들숲은 유럽과 북미 등에 서식하는 비버나 열대지방 맹그로브숲과 비교된다. 식물사회학자 김종원 박사(전 계명대 교수)의 설명이다. “떠내려오는 나뭇가지 같은 거로 댐을 쌓는 비버와 왕버들이 하는 일이 같아요. 비버가 쌓은 댐으로 물의 흐름이 바뀌면서 홍수가 났을 때 물이 힘을 뺄 수 있고, 모아뒀던 유기물을 하구로 공급할 수도 있어요. 비버의 집이 유속을 느려지게 하니까, 거기에 서식하는 동물도 굉장히 많거든요. 물고기의 산란처가 되고, 곤충이 겨울을 나고요. 비버의 집은 하나의 에코시스템이죠. 그래서 생태학자들은 비버를 가장 우수한 생태기술자라고 해요. 우리나라에서는 왕버들·버드나무·선버들 같은 고등생명체가 바로 이런 하천의 생태기술자 역할을 하죠.”
조선시대 이전엔 왕버들·버드나무 등을 홍수 방지에 활용하는 일이 흔했다. <조선왕조실록> 숙종실록 제35권(1701년 기록)을 보면 홍수 피해를 입은 함경도 지역의 복구와 관련해 병마절도사 홍하명이 이렇게 건의한다. “느릅나무·버드나무를 심어서 울타리를 만들고 그 안을 돌·흙으로 메우면 느릅나무·버드나무가 뿌리를 내려 서로 연결돼 버티는 방법이 될 것 같다.” 숙종은 이를 실행토록 한다.
김종원 박사는 이렇게 말했다. “돈·기술·지식이 충분하지 않았기 때문일 수 있지만 조선시대에도 하천에서 자라던 버드나무 종류를 보존 관리하면서, 순리대로 자연을 보면서 홍수를 방지했어요. 지금 과학용어로 치면 ‘잠재자연식생’을 몸소 실천했던 겁니다. 제방을 쌓는 지금 방식은, 자연의 역리이자 인간만 행복하고자 자연에 큰 손해를 끼치는 나쁜 생태기술이라고 할 수 있죠.”
그런데 이 ‘띠 숲’을 따라 노란색 깃발들이 박혀 있다. 보행교가 놓일 위치를 찍어놓은 것이다. 정수근 사무처장은 “습지에서 중대한 역할을 하는 왕버들 고목 10여 그루를 포함해 수십 그루가 베어질 예정”이라고 말했다. “여기까지 사람이 꼭 와야 합니까? 자연환경 보전을 책임져야 할 환경부가 이 사업을 꼭 하겠다고 합니다.”
보행교 공사는 2025년 3월 완공 계획으로 2023년 9월 시작될 예정이다. 사업을 주관하는 낙동강유역환경청 담당자는 <한겨레21>과 한 통화에서 “큰 나무는 베지 않고, 야생동물에게도 해를 미치지 않게 공사를 진행할 것”이라며 “자꾸 팔현습지라고 하는데 거기는 (법정)습지도 아니다”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기자를 사이에 두고 양방이 대거리했다. 정수근 사무처장도 목소리를 높였다. “보행교를 놓으려면 굴착기 등 중장비가 들어와야 하는데, 그 길에 있는 나무를 안 벱니까? 그리고 보행교 공사를 하는 순간 생태교란은 일어납니다. 완공되면 사람들이 왕래할 거고.” 앞서 낙동강유역환경청은 “조류는 여기저기로 옮겨다니며 사는 습성이 있”(홍동곤 전 청장, 2023년 6월 <매일신문> 인터뷰)어서 이번 공사가 멸종위기 조류에 큰 영향을 주지 않는다고 설명해 물의를 빚기도 했다.
인근의 방촌동 주민 황정화(45)씨는 “도시에서 흔치 않은 자연 그대로의 공간이라 건너편에서 다니면서 감상하는 것도 부족함이 없다. 거기(팔현습지)에 뭘 만든다는 거에 의아해하는 주민이 많다. 오히려 세금 낭비해서 풍경만 가릴 거 같다”고 말했다.
사실 팔현습지 왕버들숲이 순도 100%에 가까운 자연형태를 유지할 수 있었던 비결은 딱 하나, 사람의 접근이 어렵다는 점이다. 왕버들숲이 접한 제봉(산) 구간은 가파른 절벽으로 이뤄진 하식애(하천 침식 언덕) 지형이다. 절벽 아래 습지라는 ‘불편한 지형’ 덕에 대구 시내 한복판에 수리부엉이와 담비 같은 최상위 포식자가 살게 된 것이다. 최상위 포식자가 산다는 것은 곤충·균에 이르기까지 먹이사슬의 바닥 생태계도 튼튼하다는 의미다.
김종원 박사는 팔현습지를 희귀 야생동식물이 서식하는 수중 동굴이나 심해 등과 같은 ‘숨은 서식처’(Cryptic Habitat)로 보고 보호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하천에 만들어진 절벽 같은, 인간의 눈에 띄지 않는 곳이나 사람이 한 번도 가보지 않은 곳을 ‘숨은 서식처’라고 합니다. 그간 개발 압력에서 살아남아 생물다양성이 명맥을 잇고 있는, 이 땅의 정말 마지막 생명의 보루 같은 곳입니다. 중생대 말에 멸종한 다른 공룡들과 달리 공룡의 일족인 새가 살아남았던 것은 ‘숨은 서식처’가 있었기 때문입니다. (팔현습지에는) 수리부엉이나 담비 같은 동물이 삽니다. 이런 귀한 생명이 사는 숨은 서식처를 보호하는 건 국가가 신속하게 대응해야 할 일이고, 절체절명의 긴급한 화두입니다.”
이름은 ‘생태공원’이지만, 습지를 공원화하면 습지의 가치와 생태계는 심각하게 파괴될 때가 많다. 울퉁불퉁하고 발이 푹푹 빠지는 습지의 지형은 다양한 동식물이 살아가는 데 좋은 환경을 제공하지만, 사람에게 불편하다. 그래서 평탄화되고 딱딱하게 다져진다. 달성습지 생태공원의 ‘맹꽁이 실종 사건’이 대표적 예다.
대구시는 멸종위기 야생생물 2급 맹꽁이를 달성습지의 상징으로 홍보한다. 그러나 대구환경운동연합의 조사 결과, 10여 년 전만 해도 수만 마리 있던 달성습지 맹꽁이는 ‘생태’복원사업(2012~2019년) 기간에 급감했고, 급기야 2022년부터는 아예 사라졌다. 2016년, 2018년, 2019년 달성습지·대명유수지의 멸종위기종을 조사(환경부 연구용역)한 이종남 경상대 교수(동물자원과학부)는 “달성습지를 개발하면서 맹꽁이의 주 서식지를 훼손했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개발하면서 맹꽁이 서식지에 인공수로를 냈어요. 공원화한다고 나무와 습지를 대거 훼손했고요. 맹꽁이가 서식하려면 습지에 비가 오고 10~15㎝ 깊이의 웅덩이 지형이 만들어져야 해요. 장마철에 웅덩이가 생기고, 수컷이 먼저 나타나고 암컷이 나타나 산란하는데, 이런 서식지가 거의 사라졌어요. 제가 처음 조사할 때(2016년)만 해도 1500마리 이상 상당히 많았는데, 사업이 끝난 뒤 2019년에 10개체 이하만 관찰됐어요.”
맹꽁이가 급감한 이유를 이종남 교수는 이렇게 설명했다. “맹꽁이는 다른 개구리류와 달리 엉금엉금 기어다니고 뒷다리로 흙을 파고 그 속에 숨어요. 흙이 부드러워야 해요. 아니면 족제비나 너구리 같은 육식동물한테 쉽게 잡아먹히죠. 그런데 공원화되면서 딱딱해진 거죠. (공원 쪽이) 대체서식지를 만들었다고 하는데, 대체서식지라고 할 수 없는 곳이고요. 또 겨울에는 왕버들·버드나무 잎이 떨어져서 그 아래가 보온돼야 겨울잠을 자는데, 왕버들·버드나무도 절반 이상을 베어냈어요. 맹꽁이가 버텨낼 수 없죠.”
대구시 기후환경정책과 담당자는 “맹꽁이가 사라졌는지 확실하지 않다. 또 맹꽁이가 줄어들었다면 그건 (문재인 정부 시절 4대강 보 개방에 따라) 낙동강 수위가 낮아졌기 때문”이라고 했다. 정수근 사무처장은 이렇게 응전했다. “말도 안 되는 소립니다. 그럼 보 설치 전에 수위가 더 낮았는데 그땐 왜 맹꽁이가 훨씬 더 많았습니까?”
8월31일 오후 이 공원(달성습지) 곳곳에는 맹꽁이 조형물과 소개 푯말을 볼 수 있었다. 황소개구리들이 억세게 울었다. ‘맹꽁이가 안전하게 활동하고 번식할 수 있도록 보호에 적극 협조하여주시기 바랍니다’라는 글귀가 쓰여 있었다. 물에 잠긴 왕버들·수양버들·버드나무가 당당한 모습은 같았지만, 팔현습지와는 사뭇 달랐다. 데크가 놓여 있어 장화를 신지 않았는데도 바짓가랑이에 흙이 묻지 않았다. 왕버들과 맹꽁이를 희생시켜서 놓은 ‘사람 길’이다.
대구 습지의 비극은 계속된다. 2024부터 팔현습지에 또 다른 공사가 시작된다. 강 건너 디아크(The ARK·4대강 사업 문화관)에서 달성습지를 잇는 다리를 놓는 사업이 진행되는 것. 대구시는 4대강 자전거길을 따라 자전거 여행객이 달성습지를 밟아 다지고, 그 아래 화원유원지까지 ‘편안하게’ 라이딩할 수 있도록 한다는 구상이다.
습지 개발의 끝은 어디일까. 인근 왕버들숲인 ‘성주 성밖숲’(천연기념물 제403호)은 ‘새드 엔딩’의 예로 거론된다. 한때 습지이던 곳에 콘크리트 제방을 쌓고 물에서 격리해놓은 결과 숲의 규모는 확 줄어들었다. “19세기 고지형도를 보면 7만㎡에 달했던 성주 왕버들숲(성밖숲)이 1999년 3만여㎡로 줄어들어 있어요. 나무도 50여 그루밖에 남지 않았고, 그마저도 전부 골병이 들어 죽어가고 있어요. 여기는 군수가 바뀔 때마다 돈을 들여 (성밖숲에) 새로 사업을 벌여요. 왕버들 서식 특성은 전혀 고려하지 않아요. 무자비하고 반생태적인 거죠.”(김종원 박사) 정수근 사무처장은 “펄떡펄떡 살아 있던 왕버들을 박제화한 결과”라고 설명했다.
2024년 봄에도 팔현습지에서 왕버들·버드나무·수양버들이 피운, 연둣빛 꽃을 볼 수 있을까. “춤은 사람들만 추는 것이 아니래요. 나무들도 애타는 그리움에 봄비가 내리듯이 (…) 서글픈 팔을 벌린대요.”(<춤추는 버드나무>, 이미자의 노래)
대구=김양진 기자 ky0295@hani.co.kr
*도움말 이경준 서울대 명예교수(산림과학), 허태임 식물분류학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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