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은평 팥배·아카시아①]‘‘편백 밭’ 억지 행정 깨져버린 생태 균형’ 기사 https://h21.hani.co.kr/arti/society/environment/55759.html 에서 이어집니다.
2024년 6월19일 서울 은평 봉산 산행길엔 러브버그가 입과 눈에 들어갈 정도로 많았다. 산등성이 탐방로를 따라 지상 1~2m 간격으로 끈끈이 트랩들이 설치돼 있었다. 2020년 대벌레 대발생 이후 3년간 봉산에는 9200ℓ(산림청 정보공개 청구 결과, 은평구청 방제 현황은 ‘자료 없음’ 비공개)의 살충제가 지상·드론 방제 형식으로 뿌려졌다. 모두 ‘비선택 살충제’, 즉 맞으면 모든 곤충이 죽는 살충제였다. 세상에 대벌레만 골라서 죽이고, 러브버그만 골라서 죽이는 살충제는 없다. 2022년엔 러브버그가 대발생하자 살충제 살포가 그 원인이라는 지적이 나왔다. 2022년 은평구청은 대안으로 끈끈이 트랩을 도입했지만, 이 역시 비선택적이다. 다른 많은 곤충들과 작은 새들이 무차별적으로 이 덫에 걸려들고 있다.
은평구는 “관련성이 발견된 바 없다”는 이유로 “편백 숲 조성과 대벌레·러브버그 대발생은 무관하다”는 입장이다. 하지만 일련의 곤충 대발생과 방제 실패, 또 다른 곤충 대발생이라는 악순환의 원인에 대해 편백 인공림 조성으로 인한 생태계 파괴를 의심하는 전문가도 많다. 홍석환 교수는 이렇게 말했다.
그는 이어서 곤충 대발생에 대한 대응 방식의 문제점에 대해서도 이렇게 지적했다. “생태계 균형이 깨진 건 아주 복잡한 문제인데, 공무원들 입장에선 이걸 해결할 수 있는 게 농약밖에 없어요. 민원이 들어오면 문제가 진짜 해결되게끔 시민들을 설득하는 것이 공무원과 연구자의 역할인데, 쓴소리가 듣기 싫으니 ‘벌레가 많아? 그럼 농약 쳐!’라는 단순 논리로 접근합니다. 끈끈이 트랩도 마찬가지예요. 생태계 균형이 깨지면 천적이 나타나 스스로 해결을 합니다. 끈끈이 트랩은 균형을 계속 깨트리는 방식이죠. 특히 나무를 오르내리는 곤충들을 죽여서 애벌레를 먹이로 하는 딱따구리 등의 서식에도 부정적인 영향을 미칩니다.” 이동규 고신대 석좌교수(보건환경학)는 이렇게 말했다.
‘무분별한 농약 사용에 시달리는 곤충들의 대피소입니다’라는 문구와 함께 편백 전망대 한쪽에는 ‘곤충 호텔’이 설치돼 있었다. 바로 옆에 끈끈이 트랩이 설치된 흔적이 남아 있었다. 최진우 전문위원이 말했다.
중간중간 안내판에는 ‘산림 내 금지행위’가 적혀 있었다. ‘나무를 훼손하거나 말라 죽게 하는 행위’ ‘심한 소음과 악취 등 혐오감을 주는 행위’ 등이다. 나영 대표가 말했다. “정말 모순적이죠. 시민은 못하지만 구청은 나무를 훼손하거나 말라 죽게 할 수 있다는 거죠.”
팥배나무 군락지로 가는 길목에서 굉음이 들렸다. 숲 한가운데에 꽃잔디(지면패랭이) 밭이 만들어져 있었다. 탐방로가 차단된 채 물을 주기 위한 급수 모터가 돌아갔다. 기름 냄새도 났다. 스프링클러가 돌아갔고, 노동자 10명가량이 이 밭을 돌봤다.
2018년 서울시의 ‘봉산 생태경관보전지역 정밀 변화 관찰 연구’ 결과를 보면, 팥배나무 숲 보전을 위해 △샛길 통행 금지 △현명한 이용 방안 마련 △시민과 협력한 지속적인 모니터링 실시 △보전지역 확대 지정 △불법 경작 금지 등을 제안했다. 이 연구의 주책임자인 이호영 한길숲연구소장의 지적이다. “팥배나무 숲을 보전지역으로 지정은 했는데, 그게 끝입니다. 같은 팥배나무 숲이라도 능선 넘어 고양시 쪽으로만 가면 보호받지 못해요. 이런 대규모 팥배나무 숲이 생태적으로 중요하고 경관적으로 아름답다는 걸 지속해서 알려야 ‘보존지역이 확대돼야 한다’는 공감대가 형성되겠죠. 숲 관광이라고 하면 우리나라에 편백 숲은 많잖아요. 천편일률적이지 않고 색다른 숲이 곁에 있는데 편백 숲을 또 만들고 있으니 안타깝죠.”
당시 제안은 어느 것 하나 실현된 것이 없다. 은평구청은 2021년부터 장애인도 이용할 수 있도록 하겠다는 취지로 기존 탐방로 바로 옆에 데크길 공사(2026년까지 9.8㎞ 구간 대상)를 벌이고 있다. 심지어 훼손이 엄격하게 금지된 생태경관보전지역 일부에도 데크길을 깔고 팥배나무 등을 베어내기도 했다. “행정착오였다”는 게 은평구청 설명이다.
김미경 은평구청장은 2024년 6월5일 ‘숲은 가만히 두는 게 최선일까’라는 제목의 <서울신문> 기고 글에서 “나무를 베는 일이 가혹하게 여겨질 수 있다. 하지만 주민에게 이득이 되고 은평의 가치를 높이는 사업을 추진하는 것이 구청장의 역할”이라고 강조했다. 인공숲과 데크길이 정말 가치를 높여줄까.
하산 길에 숭실중·고교 뒤쪽에 2014년에 조성했다는 편백 인공림을 살펴봤다. 남은 편백이 한 20%는 될까. 남쪽 비탈이라 볕이 뜨겁고 메마른 탓에 상당수가 고사했다. 자세히 봐야 보일 정도로 이미 참나무류와 아까시가 지주목에 의지해 있는 편백보다 키가 커져 있었다.
미국 동부가 원산지인 아까시(로비니아 속)는 130년 전 도입돼 황폐해진 우리 숲을 푸르게 하고자 1960~1980년대 전국적으로 식재됐다. 그러면서도 외래종이라고 배척받았다. 10여 년 전부터는 흔하게 불리던 ‘아카시아’라는 이름을 부르는 일도 드물어졌다. 남아프리카·호주 등에 주로 사는 ‘진짜 아카시아’(아카시아 속)와는 사는 기후대가 다르고, 학술적으로 부를 때 헷갈린다는 학자들의 정정 요구 때문이었다. 사실 이 둘은 가시가 달렸다는 점만 같다. ‘진짜 아카시아’는 잎과 꽃이 아까시와는 전혀 다르다. 오히려 자귀나무와 닮았다.
이날 일행들 사이에서 ‘아카시아 이름 찾아주기 운동’이라도 벌이자는 의견이 나왔다. “아카시아가 아까시가 되더니 그 나무가 주는 옛 정취와 추억들, 충분한 고마움과 낭만까지 거세돼버린 느낌이 들어요. 되도록 아카시아라고 부르고 싶어요.” 최진우 위원이 말했다.
김양진 기자 ky0295@hani.co.kr
*온통 회색인 도시에 새들이 우짖습니다. 돌아보면 어김없이 키 큰 나무가 서 있습니다. 사방으로 잎과 가지를 뻗어 세상을 숨 쉴 곳으로 지켜줍니다. 곤충, 새, 사람이 모여 쉽니다. 이야기가 오갑니다. ‘나무 전상서’로 나무를 아끼고 지키는 사람들의 마음을 전합니다. 4주마다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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