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때 나무신(神木)이 살았다는 터는 차들이 뱅그르르 돌아가는 로터리가 됐다. 2023년 11월9일 오후 지름 50m 경남 진해(창원시 진해구) 중원로터리 한 귀퉁이에 비둘기 수십 마리가 내려앉았다. 잔디로 덮은 1962.5㎡ 넓은 로터리를 중심으로 여덟 갈래 대로가 뻗어나가고, 그 길을 뼈대로 균형 잡힌 바퀴살 모양의 도시(진해 원도심)가 형성된다. 1950년대 초 고사한 이 팽나무는 생전에 높이 15m, 가슴높이 둘레 9m 크기의 거목으로, 풍성한 수관(잎과 가지)을 내 현재 로터리 자리를 가득 채웠다. 창창했던 당시 모습이 엽서·사진 등으로나마 전해진다.
이 거목은 원래 중평마을의 당산나무였다. 마을은 뒤로 장복산에 기대고, 앞으로 산세 사이사이로 포구 세 곳(현동만·중평만·행암만)이 언뜻 내다보이는 비옥한 중평 들녘 한복판을 차지했다. 주민들은 농사일하다가 이 나무 그늘에서 잠시 쉬며 얘기를 나눴다. 일제가 패권을 확장하며 진해만 일대를 군사기지로 삼으면서 모든 것이 달라졌다. 1904년 한일의정서를 통해 진해 병영 건설을 공식화했다. 백지장 위에 그림을 그리듯 도시건축가가 그린 기하학적 선이 땅 위에 그대로 재현됐다. 중심에 개선문이 있는 프랑스 드골광장 등 근대 다수 유럽 국가가 채택한 방사형 구조를 모방했다. 우리나라 첫 근대 계획도시였다. 1906∼1912년 중평마을 등 11개 농어촌 마을, 2천여 명을 총칼로 내쫓았다. 그렇게 빼앗은 땅 12만 평에 군항과 일본인을 위한 신도시를 세웠다. 한국인들은 “위생 문제 때문에”(일제 ‘해군문서’) 신도시에 거주할 수 없었다.
허정도 전 경남도민일보 대표(도시학 박사)는 방사형 도시에 대해 이렇게 설명했다. “일부 사람들이 진해 원도심이 욱일기를 본떴다고 하는데 근거가 없고 어색합니다. 당시 유럽 전원도시에는 방사형이 흔했는데 이걸 채택했다고 보는 게 타당합니다. 러시아가 건설한 중국 다롄·선양도 같은 형태였어요. 도시에 권위적인 공간을 마련하기에 아주 좋은 형태거든요. 동상을 세운다거나 분수를 놓기도 하고요. 도시 어디에서도 중앙이 보이는 형태죠. 중앙으로 교통이 집중되는 특성이 있어요. 교통량이 너무 많으면 이런 방사형 도시가 효율적이지 않죠. 그래서 지금은 잘 쓰이지 않아요.”
일제가 집도 논밭도 싹 쓸어버렸지만 이 거목만은 그대로 뒀다. 진해대가(鎮海大榎)라 이름 붙이고 도시 중심으로 삼았다. 또 수관폭 아래를 돌로 뱅 둘러 울타리도 세웠다. 일제는 본국에 방사형 도시 구조와 진해대가를 앞세워 ‘동양무쌍(동양에 견줄 만한 것이 없을 정도로 뛰어나다는 뜻)의 대군항’ ‘시드니 다음가는 미항’ 등등의 수식어를 붙여 홍보하며 이주를 권유했다. 일본강점기 진해에서 서점·신문보급소 역할을 하던 마쓰오박신당이나 이시카와사진관이 이 팽나무 사진을 담은 엽서 등을 기념품으로 제작했다. 특별한 전리품을 갖고 싶었기 때문이라는 지적도 있다. 다만 큰 나무에 정령이 있다고 믿고 경외심을 갖는 건 일본과 한국이 공유하는 정서이기도 하다.
1932년 진해에서 태어나 어린 시절을 보냈고 <옛 조선 진해 마쓰오박신당 이야기>(예술의숲 펴냄)를 쓴 마쓰오 히로후미도 번역자들을 만나 “1945년 8월 일본으로 귀환한 뒤 진해를 세 번 방문했는데, 그때마다 가장 그리운 것은 중원로터리의 큰 팽나무였다”고 돌이켰다고 한다.
당시 일제가 추정한 수령은 1200살. 팽나무는 성장이 더딘 수종인데다, 경북 예천 금남리 500살 이상으로 추정되는 천연기념물 황근목(팽나무)의 가슴높이 둘레가 5.6m인 점 등을 고려하면 신라가 삼국을 통일할 즈음 뿌리를 내렸다는 추정이 근거 없는 과장만은 아니다. 이경준 서울대 명예교수(임학)는 “가슴높이 둘레 9m라면 빨리 자라는 느티나무는 300∼400살 정도지만 팽나무의 경우엔 1천 살 이상일 수 있다”고 말했다. 다만 이 실측 자료가 불분명해 정확한 나이는 알 수 없다. 430∼650살이라는 전문가 분석도 있다. 분명한 것은 균형 잡힌 수형을 가진, 압도적으로 큰 고목이 신도시가 건설되고 약 40년 만인 한국전쟁 중 고사했다는 사실이다.
향토사학자인 최학준 진해문화사회적협동조합 이사장은 고사한 이유로 두 가지 설이 있다고 말했다. “먼저 수명이 다 해서 죽었다고들 합니다. 다른 이야기는 그 팽나무가 원래 서 있던 곳이 물이 풍부한 들판이었는데, 도로가 들어서고 집들이 세워지면서 가물고 뿌리를 제대로 뻗을 수 없게 돼 고사했다는 겁니다.”
도시라는 환경, 특히 지표면 위의 모든 것을 밀어버리고 아예 인위적인 환경을 이식하는 ‘재개발’은 노거수(나이 든 큰 나무)에 치명적이다. 일제강점기 때 사진들을 보면 ‘진해 나무신’도 수관 아래를 1m 높이 흙으로 덮은 것을 확인할 수 있다. 이것이 신이 죽게 된 원인일까. 이경준 명예교수는 복토(나무둥치에 흙을 쌓아 올리는 일)를 하면 나무가 죽는다고 말한다.
“노거수는 바로 죽는 게 아니라 10년 이상 걸쳐 죽게 됩니다. 밑동 쪽이 뱅뱅 돌아가며 썩어서 죽어요. 지표면에 있는 잔뿌리가 숨을 못 쉬니까 잎에서 만들어진 탄수화물이 내려오지 못해 썩어서 죽습니다. 이런 일은 천연기념물로 관리해도 일어납니다. 2004년 보은(충북) 백송이 고사한 것도 1985년 1m가량 석축을 쌓아 복토한 것이 원인이었어요. 19년 만에 죽은 거죠.”
양평(경기) 용문사의 1100살 은행나무도 1919년 일본 학자가 측정했을 때 63m로 세계에서 가장 키가 큰 은행나무로 기록됐다. 그즈음 이 나무를 보호하려 용문사에서 석축을 쌓았고 이로 인해 수세가 약해져 1962년 천연기념물로 지정될 때 키는 42m, 2005년 재측정 땐 39m로 줄어들었다는 것이 이경준 명예교수의 설명이다. 그는 문화재청 문화재위원으로 용문사 은행나무와 보은 백송 등을 직접 조사했다.
“병충해나 산불 등 (용문사 은행나무의) 키가 줄어들 만한 다른 이유는 확인되지 않았어요. 그냥 뒀을 땐 잘 자라던 나무에 사람들이 관심을 가지면서 ‘뿌리가 노출됐네, 덮어줘야지’ 하면서 복토합니다. 100년 이상 된 나무들은 뿌리가 올라오는 게 자연스러운데…. 그래서 위험해지는 거예요. 나무가 1천 년을 산다는 건 우연히 좋은 환경이 겹쳐야만 가능한 거예요. 가뭄이 올 수도 있고 갑작스러운 한파가 올 수도 있잖아요. 용문사 은행나무는 깊은 계곡 옆에 마르지 않는 개울물이 흘렀던 것이 오래 살 수 있었던 원인으로 판단합니다. 진해 팽나무도 분명히 오래 살도록 해준 환경이 있었을 겁니다.”(이경준 명예교수) 중원로터리 약 70m 서쪽으로 흐르는 여좌천이 바로 한 알의 씨앗이 1200살 사는 신이 될 수 있었던 ‘기적’을 만들었던 것일까.
팽나무는 사라졌지만, 중원로터리를 중심으로 매년 봄 벚나무 수만 그루가 수백만 수천만 꽃잎을 흩날리는 모습을 보려고 사람들이 몰려드는 건 일제강점기 때나 지금이나 같다. 충매화인 벚나무는 수분(수술의 꽃가루가 암술에 옮겨붙는 일)에 성공하고자 벌·나비 등 곤충 눈에 잘 띄려고 잎도 없이 지난해 축적한 에너지로 화려하게 꽃부터 피운다. 풍매화로 수분을 바람에 맡겨, 수수하게 옅은 녹색 꽃을 피우는 팽나무와 대비된다. 그러면서 벚꽃은 ‘시각의 동물’인 사람을 한순간에 잡아끌어 감정을 담게 하고 의미를 부여하게 한다. 사람들이 벚나무를 좋아하는 이유다 . 2023년 5월 산림청이 발표한 ‘산림에 관한 국민의식 조사’에서 소나무(46.2%)에 이어 우리 국민이 가장 좋아하는 나무 2위로 벚나무(21.1%)가 뽑혔 다.
벚나무의 화려함은 공동체 이념을 강조할 때 악용되기도 했다. 일제가 ‘군국(軍國)의 꽃’이라며 10만여 그루의 벚나무를 진해 시가지에 심은 것이 대표적이다. 이때 벚나무는 나무 전체를 뒤덮을 정도로 많이 피었다가 마치 눈보라처럼 지는 화려한 꽃이 특징인 ‘소메이요시노’(일본 왕벚나무)라는, 1800년대 중후반 개량된 품종이다. 제2차 세계대전 말기 군인의 전사를 미화하는 데 ‘벚꽃 낙화’ 이미지가 동원되기도 했다.(<진해의 벚꽃> 참조, 다케쿠니 도모야스 지음, 이애옥 옮김, 논형 펴냄)
해방 후 반일 감정과 경제난에 진해 시가지 벚나무들은 상당수 땔감 등으로 쓰이며 사라졌다. 기막힌 반전이 일어났다. 이후 1963년 벚나무를 다시 대대적으로 심었다. <진해시사>(진해시사편찬위원회 펴냄)를 보면 4월에 태어난 이순신 장군을 기리면서 진해를 벚꽃놀이 명소로 만들어 관광도시 위상을 되찾겠다는 것이 목적이었다. 이렇게 군국주의를 상징하던 벚나무는 ‘이순신 호국정신’을 상징하게 됐다.
동시에 “‘소메이요시노’의 원산지가 제주도”라는 주장도 제기됐다. 지금까지도 창원시 등이 대대적으로 홍보하는 내용이다. 하지만 2018년 국립수목원은 <게놈 바이올로지>에 실린 논문에서 “제주 왕벚나무와 일본 왕벚나무는 뚜렷하게 구별되는 서로 다른 식물”이란 결론을 내렸다. 또 사단법인 ‘왕벚프로젝트 2050’가 2023년 3월 조사한 결과 진해 지역 왕벚나무의 96%가 일본 왕벚나무 즉 소메이요시노라고 밝혔다.
“사람들은 역사와 전통이 원래 있는 과거의 이야기라 생각하지만 대부분은 과거 일 중 일부를 변형한 허구가 가미되어 있다. 역사 속 인물 이순신도 신화가 되면 허구와 재조합된다. 진해 벚꽃놀이 역시 1950∼1960년대 폐허 속에서 무리하게 전통 만들기가 이뤄진 것으로 보인다. 의도적 거짓말이라기보다는 사실과 다른 단단한 어떤 지표가 원래 있었다는 식으로 포장됐으리라. 일본 전통을 한국의 것으로 만들고 싶은 사람들의 욕구가 반영된 것 같다.”(오영진 서울과기대 교수, 문화평론가)
남부지방에선 팽나무를 포구나무라고 부른다. 포구가 있는 바닷가가 팽나무의 주 서식처인데다 비교적 염분에도 강하기 때문이다. 이날 중원로터리 팽나무와 같은 팽나무들이 자생하는 진해의 남동쪽 포구마을인 괴정마을을 찾았다. 마을 뒤쪽 언덕에 수십∼수백 살 팽나무 십수 그루가 하나의 큰 수관을 이루고 있었다. 가장자리부터 누렇게 단풍 들어가는 겉모습과 달리 안쪽은 여전히 창창했다. 어둑어둑 하늘을 가렸다. 경사면이 비바람에 깎이면서 드러난 뿌리는 서로 엉겨붙어 캄보디아 시엠레아프(시엠립)의 스펑나무와도 닮아 있었다. 이날 함께 진해를 둘러본 박정기 ‘노거수를 찾는 사람들’ 대표활동가가 이 현상에 대해 설명했다. “팽나무는 뿌리가 땅에 드러나면 뿌리가 줄기화되면서 부피가 성장하고, 너럭바위처럼 됩니다. 광합성으로 만든 탄수화물을 줄기화된 뿌리 쪽으로 집중적으로 보내는 거죠 . ”
중평마을 나무신은 어떤 모습이었을까. 주민들은 물론 일제 군인들까지도 절로 고개를 숙이게 한 그 모습을 다시 볼 방법이 있을지 모른다. 주변의 노거수들을 아끼는 것 아닐까.
“중원로터리 팽나무가 고사한 자리에 느티나무가 심어졌다가 분수대가 조성됐고 지금은 빈 공간이 돼 있습니다. 팽나무는 앞에는 바다, 뒤로는 낙동강을 둔 창원 지역의 깃대종입니다. 중원로터리에 팽나무를 심는 건 끊어진 지역사를 잇는 일이죠.”(박정기 대표활동가) 허정도 전 대표도 팽나무를 다시 심자고 말한다. “우리 조상들이 땀 흘리고 부대끼며 희로애락을 나눈 삶터였던 중평 들판을 기억하고자 팽나무를 다시 심었으면 합니다. 그래서 300년 뒤 후손이 선조가 1200살 나무를 기리며 300년 전에 다시 심은 나무고 말했으면 합니다”라고 말했다.
<진해요람>를 보면 중원로터리와 관련된 하이쿠(일본의 짧은 시) 한 편이 등장한다.
‘봄·가을 어느 계절이 낫냐니 말문이 막히네, 저 큰 팽나무’
창원(경남)=김양진 기자 ky0295@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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