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게 뭐로 보이세요?”
2024년 4월19일 오전 경기 고양시 일산동구 산황산 능선에서 조정(69) 고양환경운동연합 의장이 우거진 숲속을 가리켰다. 흙을 둥글게 쌓아올린 무덤이었다. 아니, 한때 무덤이었던 흙더미였다. 그 위로 풀과 키 작은 나무들은 물론 가슴높이 둘레 50∼80㎝ 참나무류와 산벚나무 등이 이미 15m 이상 장대같이 자라, 잎과 가지로 하늘을 나눠 가졌다. 이날 수십 곳에서 이렇게 자연으로 되돌아온 ‘무덤 흔적들’을 확인했다. 동쪽 비탈 쪽으로 발길을 옮겼다. 이름난 집안이었을까. 넘어질 듯 기울었지만, 문인석·무인석 등 석물들이 놓여 있었다. 나무 나이로 볼 때 자손이 발길을 끊은 지 50년은 넘었을 테다. 둘레 1m 가까이 되는 아름드리 거목으로 커가는 신갈나무가 무덤 한복판에 똑바로 섰다. 문인석·무인석의 눈·코·잎은 마모돼 있었다. 해발고도 56m 나지막한 산황산 숲은 꽤 깊었다. 겉보기와 달랐다.
사실 면적 49만9천㎡(약 15만 평)의 산황산 북쪽 절반(24만4천㎡)은 골프장(스프링힐스·2010년 준공)이 차지하고 있다. 북쪽 절반은 마을이 없는 쪽이다. 주민 임충만(70)씨는 “공사가 시작되기 전까지 인근 주민 누구도 (골프장 공사를 위한 절차의 진행 사실을) 몰랐다”고 했다. 2011년 골프장 쪽이 총 100여 가구 마을들이 분포해 있는 산황산 남쪽 자락으로 골프장을 넓히겠다는 계획을 밝히면서 상황이 달라졌다. 고양시는 골프장 쪽 요청에 도시관리계획을 변경(2014년 7월)해주며 화답했다. 산황산이라는 산 자체를 통째로 없앤다는 계획에, 그간 골프장 농약 사용, 야간 조명 문제로 불만이 고조돼 있던 인근 주민들이 크게 반발했다. 고양환경운동연합도 문제 제기에 나섰다. 골프장 경계가 안방 벽에 닿는 위협이 주민들 앞에 주어지기도 했다. 산 면적이 18홀을 수용하기에는 좁아서 무리하게 주택 벽에 닿도록 설계됐기 때문이다. 2015년 1월 주민과 시민단체들이 범시민대책위원회(범대위)를 꾸렸다. 2018년 12월 고양시청 앞에서 3년6개월 천막 농성을 벌였다. 조정 의장은 17일간 단식투쟁을 하며 맨 앞에 섰다.
그러던 중 2016년 골프장은 투자 실패 등으로 부도를 맞았고 법정관리에 들어갔다. 이 과정에서 김아무개 골프장 대표와 조아무개 고양시 과장이 뇌물 1750만원(6년치 회원권)을 주고받은 일이 밝혀졌다.(2019년 뇌물 공여·수수 모두 유죄 확정) 대형 토착 비리로 불거질 조짐도 보였다. 조 과장이 자신 외에 돈 받은 공무원들이 더 있다고 법정에서 폭로했지만 수사는 거기까지였다. 2023년 7월 고양시는 자금조달 능력 의심 등 이유로 골프장 증설 관련 실시계획인가에 대해 미승인 결정을 내렸다. ‘10년 시민 저항 운동의 승리’였다.
그런데 2024년 3월 골프장 쪽이 다시 환경영향평가 초안을 제출했다. 고양시는 “법대로 한다”는 방침이다. 시계는 10년 전으로 되돌려졌다. “여기가 그린벨트(개발제한구역)예요. 개발이 엄격하게 제한된 곳이잖아요. 그런데도 어떻게 숲을 없애고 골프장 공사를 한다는 줄 아세요?” 조정 의장이 이어 말했다. “산황산이 훼손돼 보존 가치가 낮아서 그린벨트 역할을 못하기 때문에 골프장을 만들어서 ‘도시 내 녹지기능 유지 및 훼손된 기존 자연경관 복원’(골프장 쪽이 2024년 3월 제출한 ‘환경영향평가 초안’ 중)을 한다는 거예요. 그게 골프장 쪽이 밝힌 사업 목적이에요. 이 숲이 골프장을 만들어야 할 만큼 훼손됐다고 보이세요?”
안정적으로 발달한 숲이라는 증표인 참나무류가 무리 지어 자라 하늘을 덮었다. 방석처럼 폭신한 낙엽층이 바닥을 덮었다. 그 아래 곤충과 곰팡이가 살아 숨 쉬는 비옥한 부식토가 어린 풀과 나무를 부지런히 키워낸다. 기초가 탄탄하니 최상위 포식자인 솔부엉이·황조롱이·새매가 산황산을 찾아준다. 이날 가슴높이 둘레가 2m를 훌쩍 넘는 상수리나무 등 ‘어머니 나무’들도 중간중간 확인할 수 있었다. ‘훼손됐다’는 서류상의 활자가 발붙일 곳은 없었다. 골프장 쪽 서류에 도장을 찍어준 관료들은 이 숲을 다녀봤을까.
홍석환 부산대 조경학과 교수와 최진우 서울환경연합 전문위원은 ‘범대위 의견서’를 통해 “산황산 계곡부 등에 분포한 갈참나무·상수리나무 군락은 자연성이 매우 높은 30∼50년 된 식생이다. 함부로 길을 내거나 일부러 나무를 베어낸 흔적이 있지만 이런 훼손된 부분은 극히 일부분에 지나지 않고 대부분 지역은 좋은 토양을 기반으로 빠르게 회복되고 있는 우수한 도시 숲으로 판단된다. 이런 곳을 거의 잔디로만 이뤄진 골프장으로 개발하도록 용인하는 건 고양시장이 개발제한구역법을 위반하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개발제한구역법은 ‘도시의 무질서한 확산을 방지하고 도시 주변의 자연환경을 보전해 도시민의 건전한 생활환경을 확보’하기 위해 존재한다. 이 의견서 말고도 골프장 건설에 반대하는 700여 명의 시민이 각자 의견서를 써서 힘을 보탰다. 별다른 알림도 없이 동사무소 한편에 비치해 놓은 환경영향평가서 초안을 시민들이 알음알음 찾아와 보고 골프장 건설의 문제점을 한땀 한땀 적어서 범대위로 보내왔다.
하지만 골프장 공사의 시작점이었던 ‘훼손된 그린벨트’라는 꼬리표는 10년째 떨어지지 않고 있다. 서류와 행정의 힘이다. 핵심 근거는 무덤들이었다. 국토교통부 중앙도시계획위원회가 개발제한구역 관리계획 변경에 대해 2013년 6월 “양호한 산림”(불승인)이라고 판단했다가 6개월 뒤 “훼손된 산림”(승인)이라고 결정을 바꾼 핵심 근거 중 하나가 골프장 쪽이 낸 ‘산황산에 약 700개의 무덤이 있다’고 한 의견서였다.
“원점부터 잘못됐어요. 범대위와 주민들이 산황산을 샅샅이 뒤져서 무덤을 셌어요. 모두 127개가 있고 대부분 산자락에 있어서 산림훼손과 관계없는 문중묘들을 제외하면 대개 지금 보신 것처럼 30∼50살 된 나무가 자라는 등 재자연화되고 있는 무연고 무덤이었어요. 자손들이 돌보는 묘는 20여 기밖에 안 되더라고요.” 조정 의장이 말했다.
산황산 중턱에 1.5m가량 높게 돋아놓은 무덤 6기가 모인 한 가족 묘터 앞이다. 상석에 지금의 차관급 정도에 해당하는 조선시대 동중추(同中樞·종2품) 벼슬을 지낸 사대부 집안이었다는 내용이 적혀 있었다. 상수리·신갈·산벚·단풍나무가 어우러진 숲의 일부분이었다. “귀족 가문 같은데 자손이 끊겼는지 어떤 사정이 있는진 모르지만, 참 무상하죠. 이런 어린나무들(둘레 20∼30㎝ 정도)은 10년 전에 왔을 땐 안 보였는데, 이렇게 컸어요.”
산황산의 북쪽·서쪽 일대는 대규모 아파트 단지가 즐비하다. 가까운 단지는 불과 600m 거리다. 병원·학교 등 공공시설이 밀집해 있는 중앙로(일산동구)와도 1.8㎞ 거리다. 특히 남동쪽에는 고양·파주시민들의 마실 물을 제공하는 ‘노천’ 고양정수장이 있다. 계획된 골프장까지 거리는 불과 296m. 시민들이 가장 우려하는 대목이다. 이에 대해 골프장 쪽 관계자는 <한겨레21>과 한 통화에서 “50㎝ 높이 아래로 뿌리는 농약이 어떻게 그렇게 멀리 날아가나. 그 사이에 고속도로(수도권제1순환도로)까지 있다. (범대위가) 억지 쓰는 것”이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전문가 설명은 다르다. 독성생태학 권위자인 한광용 박사가 설명했다. “설사 농약을 물에 섞지 않고 고체로 써도 휘발되기 때문에 분산되기 쉬워요. 건조할 땐 기포 형태가, 습할 땐 물방울 형태가 만들어져서 공기 중을 떠다니다 내려앉게 됩니다. 정수장은 밀봉된 상태가 아니잖아요. 특히 이 지역은 하천(도촌천)과도 가까워 안개가 자주 끼기 때문에 아주 안 좋습니다. 더욱이 도로들이 이 지역을 포위하듯 돼 있어 공기가 돌면서 정수장으로 농약 성분이 떨어지기 아주 좋은 조건이에요. 가까이 사는 주민들은 매일 이런 성분을 들이마시거나 빨래를 밖에 널면 침전된 성분이 피부를 통해 흡수될 수 있어요. (이미 지어진 골프장이 있으니) 인근 주민들 조사해보세요. 골프장이 들어서고 암 발생, 기관지염, 소화기 문제, 피부 쪽 질환, 심혈관 쪽 문제 등이 늘었을 겁니다.”
한 박사는 골프장을 “녹색 사막을 만드는 일”이라고 표현했다. “전세계적으로 기후 문제에 어떻게 접근할지 놓고 고민하면서 자연만이 할 수 있는 역량을 키워서 생물 다양성을 높이는 것이 가장 중요한 문제로 떠올랐습니다. 가장 나쁜 것이 잔디 같은 모노톤(Monoton)으로 한 가지 식물만 키우는 거예요. 우리나라 기후·토양과 안 맞는 외국 잔디를 키우려면 비료 주고 농약 듬뿍 뿌릴 수밖에 없어요. 바닥에 초록색 페인트를 칠하는 것보다 못하죠.” 스프링힐스는 2020년 기준 전국에서 가장 농약을 많이 치는 골프장으로 지적되기도 했다.(2022년 9월 김영진 더불어민주당 의원 발표 자료)
골프장의 사업적 가치는 지나치게 높게 계산하면서 숲의 공익적 가치는 제대로 평가하지 않는 법·제도적 문제점도 지적됐다. 윤여창 서울대 명예교수(산림과학)가 말했다. “도심에 녹지가 많지 않은 고양시의 경우 산황산을 그냥 뒀을 때의 가치는 골프장으로 얻는 가치보다 훨씬 높다고 봐야 합니다. 나무의 뿌리가 발달해 있는 숲은 토양 속에 물을 저장했다가 도심 열섬 등 기후를 조절하는 기능을 합니다. 생물 다양성 보존 기능과 교육 기능도 중요합니다. 도심 가까이 있는 숲속에서 체험을 통해 생태적으로 살아가는 기회를 배울 수 있는 건 큰 가치가 있습니다. 고양시에서 산황산을 살려서 생태 도시를 만들기 위해 그 가치를 연구하고 그에 맞는 토지이용계획을 세워야 하죠.” 산림청 산림과학원도 산림의 공익기능 가치를 “2020년 기준 1인당 연간 499만원”으로 추정한다.
이런 생태·윤리적 우려 때문에 범대위는 이동환 고양시장에게 “골프장 건설이 가능하도록 한 고양시 도시관리계획을 직권 취소하라”고 요구하고 있다. 골프장 인근 중앙하이츠아파트 동대표 윤판중(69)씨는 이렇게 말했다. “숲을 밖에서 봐도 그렇고, 들어가 봐도 알게 됩니다. 산황산은 고양시 한복판에서 허파 같은 역할을 하는 곳입니다. 스프링힐스는 산을 없애고 골프장을 짓는 게 공익시설인 것처럼 포장하는데, 정수장 문제가 공익 아닌가요? 아무리 골프 하는 사람이 늘었다 해도 고양시에는 이미 골프장이 11개나 됩니다. 이런 숲은 일부러 만들 수도 없는 거잖아요. 고양시장은 신규 골프장뿐 아니라 나아가 기존 골프장도 취소해야 마땅하다고 생각합니다.” 이런 주장에 고양시는 “적법하게 하겠다”는 원칙만 강조한다.
도시관리계획 변경은 가능하다. 국토부 도시계획 파트 담당자는 ‘일반론’이라고 전제한 뒤 “고양시가 생태적 가치가 바뀌었다는 등의 이유로 심의를 요청하면 내용에 따라 중앙도시계획위원회에서 얼마든지 심의할 수 있다. 계획을 세우는 주체는 지방자치단체”라고 말했다. 직권 취소도 가능하다. 2012년 송영길 인천시장은 생태적 가치 등 공익을 근거로 롯데건설의 계양산 골프장 공사 관련 도시관리계획을 직권 취소하기도 했다. 이에 대해 롯데 쪽이 소송을 제기했지만 2019년 대법원은 인천시의 손을 들어줬다.
이날 숲을 빠져나오고 보니 상수리·갈참·신갈 등 참나무류의 노란 꽃가루가 붙어 노랗게 물든 구두가 눈에 들어왔다. 마침 하이킹 나온 서울 주민들을 만났다. 김순조(80)·손재순(76)씨다. “산황산은 역(곡산역)하고 가깝고 북한산처럼 사람이 많지도 않은데 숲이 좋아요. 자주 와요. 여기에 왜 골프장을 세워요?”(김씨) “어휴, 농약 많이 칠 거 같은데….”(손씨)
산황산(山黃山)이라는 이름의 연원은 정확하지 않다. 다만 참나무 일가 중에서 단풍이 유독 노랗게 멋스러운 갈참나무가 많은 이 산의 가을 색을 표현한 게 아닌가 짐작된다. 한 가지 확실한 건 아주 오랫동안 주민들은 산황산에 신이 산다고 여겼다. 산황산 서쪽 입구에는 당젯말(당점말)이라는 마을이 있다. 음력 시월 보름 산황산 산신에게 당제(마을신에게 지내는 제사)를 모시는 마을이라 붙은 이름이다. 690살 된 웅장한 느티나무도 이 마을에 버티고 있다. 조선조 개국 때 무학대사의 지팡이가 변해서 된 나무라는 전설이 전해진다. 굽이치며 가지를 뻗은 모양이 용의 뿔을 닮았다고 해서 ‘용뿔나무’로 불린다. 산황산과 함께 이 마을을 지키는 수호신이다. 가슴높이 둘레 11m에 키 11m. 수관(가지와 잎)은 남북으로 30여m 뻗어 있다. 60년 전 결혼해 당젯말에 온 이옥순(78)씨는 이렇게 돌이킨다. “그때는 뭐 산에 나무도 많고 동네는 조금 작아도 사람들 인심이 좋았죠. 지금은 골프장 문제로 갈려서 옛날하고는 딴판이지. 산한테 양보해야지….”
‘산황산 지키기 운동’ 10년간 가장 달라진 건 주민들이 산황산을 다시 보고 더 아끼고 존중하게 됐다는 점이다. 이날 산황산 ‘사람길’ 곳곳에서 명찰을 단 산딸나무·주목·라일락 등과 마주쳤다. 마구잡이로 나 있어 숲을 훼손하는 ‘사람길’을 좁히고 줄이고자 해마다 시민들이 심은 나무들이다. 함께 운동을 벌여온 일산나들목교회의 유형석 목사가 말했다.
“어린아이들에게 좋은 지구 환경을 물려주는 건 절실한 문제지요. 주변의 작은 산 하나를 지키는 것부터 시작하려고 교인들과 소통하고 있습니다. 개발로 생명을 죽이는 일에 반대하고, 나무를 훼손해 숲의 가치를 떨어뜨리며 이익을 얻는 일에 저항하기 위해 나무를 심고 있습니다. 골프장을 만드는 건 숲에 깃든 모든 생물을 전부 죽이는 일임이 명약관화하잖아요. 10년 가까이 걸린 싸움을 다시 시작하게 된 셈인데, 그리스도인의 사명이라 생각하고 시민과 다른 교회와 연대하려 합니다.”
‘마른 가지마다 새의 혀처럼 켜지는 연둣빛 불꽃들아 오라 (…) 봄아, 죽기로 이 산을 살려보자!’(조정 시인, ‘춘분의 갈채’ 중)
고양(경기)=김양진 기자 ky0295@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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