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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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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기 기후소송에 정부 “할 만큼 했잖아”

윤석열 정부 최초 한화진 장관 명의의 ‘아기 기후소송’ 답변서… 다른 나라에선 ‘세대 간 차별’ 판결 잇따르는데 헌재는 3년간 묵묵부답
등록 2023-04-29 11:31 수정 2023-05-04 11:29
2022년 6월13일 서울 종로구 재동 헌법재판소 앞에서 ‘2018년 대비 2030년까지 국가 온실가스를 40% 감축하는 목표(NDC)가 위헌’이라는 내용의 헌법소원 청구 기자회견을 하고 난 아이들이 지구본 모형에 초록 잎을 붙이고 있다. 한겨레 김명진 기자

2022년 6월13일 서울 종로구 재동 헌법재판소 앞에서 ‘2018년 대비 2030년까지 국가 온실가스를 40% 감축하는 목표(NDC)가 위헌’이라는 내용의 헌법소원 청구 기자회견을 하고 난 아이들이 지구본 모형에 초록 잎을 붙이고 있다. 한겨레 김명진 기자

“지아야 안녕?” 기자의 어색한 인사를 가볍게 무시하고 지아(7)는 바로 본론으로 들어갔다.

“기후위기가 오며는(오면은) 먹을 게 없어지고 동물들이 살아가기 힘들어요.”

(놀란 기자) “지아는 그런 걸 어떻게 알아?”

“학교에서 배웠어요.”

(오 학교~) “그럼 우린 어떻게 해야 해?”

“그게… 쓰레기를 쓰지(버리지) 않는 게 좋고, 재활용품을 (분리배출)하고, 음식은 먹을 만큼 조리(하)고, 버스를 타고 출근하는 게 좋아요.”

(와우) “지아는 정말 훌륭하게 잘 알고 있구나.”

초등학생도 안다 기후위기 심각한 거

2023년에 초등학교 1학년인 지아도 안다. 기후위기를 막으려면 무얼 해야 하는지. 4월25일 <한겨레21>과 통화한 지아는 2022년 6월 현 정부를 상대로 헌법소원을 제기했다. 당시 20주 태아이던 동생 희우(태명 딱따구리)와, 또 5살 이하 아기 40명 등 어린이 62명이 함께했다. 정부의 기후위기 대응이 미래세대의 기본권을 침해했다는 취지였다.

탄소중립기본법(기후위기 대응을 위한 탄소중립·녹색성장 기본법)의 시행령 제3조 1항은 ‘2030년까지 국가 온실가스 감축 목표(NDC)를 2018년 대비 40% 줄인다’고 규정한다. 지아와 친구들은 40%로는 파리기후변화협약이 제시한 지구 온도 상승폭 1.5도 목표를 달성할 수 없고, 이는 곧 미래세대에 극심한 부담을 전가한다고 주장했다. 세대 간 차별이라는 것이다.

지아와 희우는 2050년이면 각각 34살, 27살이다. 둘은 까마득하게 느껴지는 2100년에도 살아 있을 가능성이 크다. 기성세대가 막연히 상상하는 ‘기후 파국’을 이들은 고스란히 겪는다. 기후위기를 대하는 태도와 시각이 다를 수밖에 없다. 한데 현 정부는 이들에게 “미래는 불확실하니 차별은 아니”라고 했다. 지아와 친구들은 답답해졌다.

가톨릭기후행동과 녹색당, 대안교육연대, 두레생협, 정치하는엄마들, 팔당두레생협 등이 추진한 ‘아기 기후소송’에 대한 정부 의견서가 2023년 1월 제출됐다. 헌법재판소에 제기된 기후소송은 2020년 3월 청소년기후행동의 소송을 시작으로 ‘아기 기후소송’까지 모두 4건이다. 문재인 정부에서 두 차례 의견서가 헌재로 제출됐고, 윤석열 정부가 제출한 건 처음이다. 청소년기후행동은 국회를 상대로도 소 제기를 했지만 아직 답을 받지 못했다.

“기후위기 생명권 침해? ‘비약’”

한화진 환경부 장관 명의로 정부법무공단이 작성한 의견서를 보면, 정부는 한마디로 ‘그간 필요한 일을 다 해왔고, 미래세대를 특별히 차별하지 않았다’고 주장했다. “정부는 저탄소 녹색성장 기본법(2010년 4월 시행)에 부응해 녹색성장위원회를 설치하고, 온실가스 종합정보관리체계를 구축하는 한편 (중략) 파리협정 당사국으로서의 책임을 다하기 위한 각고의 노력을 경주하고 있다”고 했다. 할 만큼 했다는 것이다.

정부는 아울러 기후재난 가능성을 생명권 침해로 보긴 어렵다고 주장했다. 생명권 침해의 유형은 살인이나 사형, 낙태, 안락사, 자살 방조 등 구체적이고 직접적인 것이라, 불확실한 기후위기 상황을 이런 구체적이고 직접적인 생명권 침해로 보는 건 ‘지나친 비약’이라는 태도다.

‘세대 간 불평등이 발생한다’는 주장에는 “시간을 초월하여 ‘현재 상황’과 ‘(불확실한) 미래 상황’을 동일한 비교 대상으로 볼 수는 없다”고 반박했다. “미래의 불확실성을 고려할 때 차별적인 미래의 모습을 현 단계에서 구체적으로 상정하기도 어렵거니와, 기성세대(내지 정부)가 현재 차별 행위를 하는 중이라고 단정할 수도 없다”고 했다. 요컨대 미래는 어찌 될 지 알 수 없는 미지의 영역이니 지금 상황과 비교할 수 없고, 그래서 차별이라 할 수 없다는 것이다. 법무공단은 앞서 청소년기후행동에 대한 의견서에서도 같은 주장을 했다.

지아 엄마 이동현(40)씨는 “정부의 탄소중립계획은 대입을 앞두고 수험 계획을 짜면서 ‘고3 6월부터 열심히 하면 된다’는 것”이라며 “지아와 친구들이 문제 제기한 건 정부 감축 목표를 상향 조정해야 한다는 것인데, 지금 정부의 행태를 봐선 기존 목표 달성도 불가능해 보인다. 실현 의지가 전혀 없고, 심지어 기후위기 인식이 있기나 한지 의심스럽다. 태만과 무능함에 분노하게 된다”고 했다.

아이 두리(초2)가 소송에 참여한 장하나 정치하는엄마들의 활동가도 “기후재앙은 이미 진행 중이고, 어린이들의 미래는 확실하다. 개인적으로 2100년까지 1.5도 억제는 불가능하다고 생각한다. 내 딸을 비롯한 세계의 어린이들은 미래에 큰 고통을 받을 것이 확실하다”며 “지구가 처한 상황이 불확실하다고 생각한다면 환경부 장관은 무책임한 것이 아니라, 무지한 것이다. 이래서 정부를 신뢰할 수 없다”고했다.

‘아기 기후소송’에 대한 한화진 환경부 장관 명의의 답변서 표지.

‘아기 기후소송’에 대한 한화진 환경부 장관 명의의 답변서 표지.

증거와 판결이 넘쳐나는 소송

첫 소 제기 이후 3년이 지났지만 헌재는 아직 별다른 결론을 내지 않고 있다. 한국의 헌재가 침묵하는 동안 다른 나라에선 기후위기를 세대 간 차별이라 본 판결이 잇따른다. 2019년 국가의 기후변화 대응이 위법하다고 판결한 네덜란드 대법원의 ‘위르헨다 판결’을 시작으로, 최근(2023년 3월) “1.5도 목표는 기본권을 보호할 기준이 못 된다”는 의견이 포함된 미국 하와이주 대법원의 ‘후 호누아’ 판결까지.

특히 2021년 4월 독일 연방헌법재판소의 결정은 ‘세대 간 정의’와 관련한 직접적인 메시지 덕에 널리 인용된다. 독일 정부가 2030년 이후 온실가스 감축 목표와 관련해 별도 규정을 두지 않은 것을 두고 독일 헌재는, 2030년 이후 감축 부담이 커질 가능성이 있다며 이런 조치가 “미래세대 자유권에 대한 침해가 생길 수 있고 비례성의 원칙에 반한다(차별)”며 위헌이라고 봤다.

기후활동가단체 ‘플랜1.5’의 윤세종 변호사는 “독일 헌재가 ‘미래세대를 위한 자연적 삶의 여건 보호’ 조항을 위헌 판결의 근거로 삼았다면, 우리 헌법엔 평등권 조항(제11조)이 있다. 우리 헌법상의 평등 원칙에 따르더라도 기후변화로 인한 세대 간 불평등은 허용될 수 없는 차별로 봐야 한다”고 말했다.

헌법소원은 소송 진행 절차를 정한 별다른 규정이 없다. 심판기간을 180일로 정하고는 있지만 이를 어겨도 제재가 없는 ‘훈시규정’에 불과해 사실상 헌재 마음이다. ‘아기 기후소송’을 대리한 김영희 탈핵법률가모임 ‘해바라기’ 대표는 “기후위기와 관련한 객관적 증거나 판결은 넘쳐난다. 현 정부 계획이 1.5도 목표를 달성할 수 없다는 과학적 근거와 기후위기 관련 전세계 판결 동향, 관련한 국내외 논문과 보고서를 조만간 정리해 제출할 계획”이라며 “공개변론도 추진하려 한다”고 했다.

박기용 기자 xeno@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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