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449호 표지 이미지
“비가 오면 굴뚝에서 나온 연기가 바닥에 낮게 깔리곤 했어. 연기가 많은 날은 마을에 햇볕도 잘 안 비치고.”
25년 전 기억이 흐릿해서, 그때 같이 갔던 이에게 물었다. “그때 그 소각장 기억나?” 내 기억 속엔 단편적인 몇몇 단어와 뭉텅뭉텅 잘린 기억의 조각들만 남아 있어서다. 1997~1998년, 경기도 포천, 환경현장활동, 소각장, 의료폐기물, 피 묻은 붕대, 인체적출물… 물론 좀더 생생한 다른 기억도 있다. 쏟아지는 비를 맞으며 소똥을 치우다가 얼굴에 소똥이 튀었다며 낄낄대고, 한증막 같은 옥수수밭에서 낫질하다가 지쳐 밭고랑에 뻗어버리고.
대학생이던 우리는 경기도 포천 창수면의 한 마을에 환경현장활동(환활)이라는 걸 다녀왔다. 농민과의 연대활동을 하겠다며 대부분 가던 농활(농촌현장활동)을 대신해 소각장이나 골프장, 화력발전소 건설 등을 둘러싼 갈등을 겪는 지역을 찾았다. 포천은 의료폐기물 소각장을 짓는 것에 반발해, 인근 마을 주민이 자결할 정도로 갈등이 극심한 곳이었다. 기억을 더듬느라 예전 언론 보도를 찾다보니 ‘인체적출물’이 왜 생각났는지 그제야 기억의 조각이 맞춰진다. 이 의료폐기물 처리 시설을 운영하던 업체가 붕대·거즈·주사기 같은 의료기구뿐만 아니라 수술 과정에서 나온 인체적출물까지 소각하다가 주민들에게 발각됐던 사실. 하지만 이런 지역주민들의 반발에도 소각장 건설과 가동을 멈추진 못했다.
며칠 전 ‘그 후’ 이야기를 찾아보다가 깜짝 놀랐다. 그로부터 10여 년이 지난 2008년엔 가동을 중단했던 소각장을 재가동하겠다고 해서, 2014년 이 소각장에서 1㎞ 떨어진 곳에 또 다른 의료폐기물 소각장을 짓겠다고 해서 시끄러웠다는 지역언론 보도를 봤다.
현재 의료폐기물 소각장은 전국에 13곳이 있다(경기 연천·용인·포천, 충청 논산·진천·천안, 경남 진주·함안, 울산, 경북 경산·고령(2곳), 전남 장흥). 이들 지역엔 병원이 많아서, 의료폐기물도 많은 걸까? 아니, 오히려 응급의료 취약지, 분만 취약지인 곳이 포함돼 있다. 이 지역의 주민들은 병원 진료도 받기 어려운 형편인데, 도시에 밀집한 병원에서 나온 의료폐기물까지 떠안아야 하는 셈이다.
이번호 표지이야기로 쓰레기 소각장 문제를 다루면서 취재한 지역들 역시 다르지 않았다. 김양진 기자가 만난 서울 마포구 상암동의 한 주민은 묻는다. “왜 이 무거운 짐을 우리만 한꺼번에 져야 하나요?” 이미 상암동에 있는 하루 처리량 750t 규모의 소각장 바로 옆에 1천t 규모의 소각장을 또 짓겠다고 서울시가 발표했기 때문이다. 이곳은 과거 ‘난지도 매립지’가 있던 자리다. 류석우 기자가 찾아간 전북 고창군 아산면 계산리에도 이미 분뇨처리장, 쓰레기매립장이 들어섰던 곳에 다시 쓰레기소각장이 생겼다. 김규원 선임기자가 기사를 쓴 경기도 화성시 일대에는 칠곡리, 주곡리에 이어 석포리까지 산업폐기물 매립장이 들어설 예정이다. 이쯤 되면 쓰레기 처리 시설 ‘몰아주기’ 아닌가.
소득에 따라, 사는 지역에 따라, 성별이나 연령에 따라 깨끗하고 안전한 환경에서 살 권리를 침해받지 않도록 하자는 것이 ‘환경정의’의 취지다. 쓰레기 문제에서 공평한 배분, 정의란 무엇인가. 이번호 ‘쓰레기 정의’라는 제목을 단 표지이야기를 통해 제기하고 싶었던 질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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