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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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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쩔 수 없는 일은 없어야 한다

등록 2022-09-28 11:17 수정 2022-09-28 23:28
일러스트레이션 이우만

일러스트레이션 이우만

여름이면 쪽방 주민들은 창문도 없는 방에서의 더위를 이기지 못해 길가에 나온다. 고시원이나 여인숙에 월세를 내지만 아예 거리에서 잠자는 경우도 있다. 어떤 고시원의 원장은 저녁 8시면 에어컨을 꺼버리고, 어떤 쪽방 관리자는 선풍기 켜는 것도 타박한단다.

여름의 무더위나 겨울의 혹한이 빈곤층에게 더 큰 영향을 주리라는 사실을 짐작하기는 어렵지 않다. 그런데 정작 본인들은 심드렁할 때가 많다. 여름? 원래 덥지. 겨울? 맨날 춥지, 어쩔 수 있나. 난 요즘 옆방 사람이 시끄러워서 그게 더 골치야.

빈곤한 이들에게 기후위기는 이미 현실

이들의 심드렁함을 곰곰이 생각해보면 일리가 있다. 더위와 추위로부터 안전하던 사람들은 새로운 더위와 추위가 닥쳐오는 것에 반응하지만, 언제나 이를 온몸으로 겪어온 사람들은 긴급한 문제로 받아들이기 어렵다. 빈곤이라는 예외 상태에 놓인 이들에게 기후위기는 불평등, 주거권 박탈로 이미 현실이었다.

이 심드렁함은 쪽방 주민만의 것은 아닌 듯하다. 오늘의 지구적 변화는 기온 상승이라는 한 방향으로 드러나는 것이 아니라 산발적인 기상이변, 혹은 새로운 정치 갈등으로 나타난다. 본질적 원인이 기후위기에 있다고 하더라도 문제점과 해결책을 잘 연결하기란 쉽지 않다. ‘이웃 국가 때문이다’ ‘이주민에게 허용적인 정부 때문이다’와 같이 문제의 본질을 호도하는 목소리도 많다.

게다가 개인들의 각성에 비해 사회 변화가 더딘 탓에 어떤 사람들은 벌써 회의감을 호소하고 있다. 에코백과 텀블러를 사용하는 등 일상적인 실천에 동참하는 사람이 늘고 있지만, 멀쩡한 건물을 부수고 새로 짓거나 단지 소비를 위한 신상품을 개발하고, 수십만t의 새 옷을 폐기 처분하는 일은 누구의 제지도 받지 않는다.

지구 지표면의 매달 평균온도는 1985년 이후 20세기 평균보다 낮아진 적이 없다고 한다. 1985년생인 나는 20세기 평균 이하 기온에서 한 번도 살아보지 못한 셈이다. 우리가 지금 마주하는 위협이 새로 나타났다기보다 우리가 살아온 현실에 가깝다는 사실을 인정할 수밖에 없다. 기후재앙, 인류 절멸이라는 경고에도 과잉생산과 과잉소비로 굴러가는 자본주의라는 비상사태를 무덤덤하게 살아왔다. 기후위기의 결과는 몰라도 원인만큼은 너무나 익숙한 것이다.

2021년 10월17일 ‘빈곤철폐의 날’을 맞아 코로나19 대유행 아래서 주거권을 박탈당한 이들의 삶은 무엇인가 말하는 자리를 가졌다. 여기 참여했던 한 쪽방 주민은 코로나19 시기 방역 지침을 지킬 수 없는 쪽방의 상황과 요구안을 밝혔다. “마지막으로 하고 싶은 이야기를 자유롭게 하시라” 청하자 쪽방 주민 길아무개씨는 다음과 같이 말했다.

“10월이지만 벌써 날씨가 춥거든요. 따뜻한 물을 아침에 안 틀어주니까 아침 일찍 일 나가는 사람들이 제대로 씻지도 못하고 가요. 따뜻한 물을 틀어주면 좋겠어요.”

너무나 익숙한 기후위기의 원인

기후위기는 영화 속 혜성 충돌처럼 모두에게 같은 수준의 위태로움을 한 번에 안기지 않을 것이다. 일상적인 불평등을 타고 남반구·빈곤층·소수자부터 갉아먹을 변화 속에 우리가 진정 염려해야 하는 것은 약자를 버리고 가자는 유혹, 어쩔 수 없으니 살던 대로 살자는 익숙함이 아닐까. 온도 변화라는 결과뿐만 아니라 지금까지 세계가 운영된 방식에 주목해야 한다. 모든 것을 착취해 이윤을 달성하는 자본주의를 어떻게 극복할 수 있을까? 기후위기가 요구하는 변화를 고려하면 자본주의도 어쩔 수 없는 일이어서는 안 된다.

김윤영 빈곤사회연대 활동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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